하프마라톤(21.0975km) 디데이
서른 살이 되던 올 해 나는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 브런치북 한권 완결내기. 둘, 운전면허 따기. 셋, 마라톤 완주하기. 사실 원래 매년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다. 한 해가 지나간다고 한들 366일째 되는 날 무언가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게 아니었기에 딱히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올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냐하면, 나름의 결심에 계기가 필요했달까.
30년이라는 시간을 걸어오는 동안에는 내 시간이 참 값싸게 느껴졌던 것 같다. 시간은 쓰려고하면 언제든지 그 곳에 있었고 내게는 이를 따라갈 열정과 체력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써도 괜찮을 것 처럼 느껴졌는데 언제부턴가 무언가 하나를 하려고 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이 점점 커졌다. 이렇게 낭비하다가는 곧 온 시간을 탕진해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느껴졌다. 이날부터 재테크로 자산 증식을 하려는 것처럼 시간도 증식시킬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이 시작됐다.
시간은 현금처럼 시장 안에서 순환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해서 새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소진만 할 수 있는 아주 귀한 소비재라 할 수 있다. 그럼 이를 증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이 대신 아주 조금씩 아껴쓰고 적재적소에 잘 쓸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결심했다. '30'이라는 숫자가 가슴에 와 닿았던 날, 시간 낭비를 좀 멈춰보자고.
나는 의욕은 앞서는데 스스로의 끈기를 믿지 못할 때엔 자존심을 이용한다. 동네방네에 소문을 내버리는 방법을 사용하면 누군가는 시간이 흐른 뒤 내게 물어봐준다. "너 그 때 말했던 거, 해냈어?"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아니!" 라고 대답하는 건 너무 없어보이니까 결국 울며겨지먹기로 해내는 수밖에 없어진다. 아무것도 없어도 가오는 잃지 말자가 내 신조다.
역시나 이번에도 나는 올해 이룰 목표를 세우자마자 절대 포기할 수 없도록 열심히 주변에 소문을 내고 다녔다.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 돈을 썼다. 노트북을 사고 러닝화를 사고 마라톤을 등록했다. 이제 더는 뒤로 물러날 곳이 없었다. 내 가오는 내가 지켜야하니까. 이제 앞만 보고 달릴 때가 왔다.
그렇게 글을 쓰게 된 후로 나는 꾸준히 러닝연습을 했다. 러닝기록을 남기며, 앞으로 쭉쭉 달려나갔다. 컨디션이 따라주지 않아 2km도 뛰기 려운 날도 있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해나갔다. 그러자 계기는 별볼일 없었으나 언젠가부터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꾸준히 무언가에 몰두하다보니 '나는 해내는 사람'이라 스스로에게 붙여준 워딩이 자랑스럽게 느껴졌고 가득찬 자신감은 부스터가 되어 날개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연습한지 어언 6개월. 마라톤 디데이가 다가왔다. 일주일 전에는 컨디션 관리를 하려고 나름의 플랜을 세웠다. 회복이 더딜까봐 장거리 욕심은 내지 않고 가벼운 조깅을 했다. 심폐훈련만 하려고 수영을 정말 숨가쁘게 해냈다. 대회 전 날, 마인드셋을 다시 했다. 기록을 내기보다는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2시간 30분 이내 완주만 하자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며 잠이 든 다음 날 워낙 긴장을 한 탓인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번쩍 떠졌다. 내가 이번에 신청한 대회는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뉴발란스 하프 마라톤'. 하필 대회 당일날 온종일 비예보가 있어 걱정을 엄청 하면서 잠들었는데 다행히도 날씨요정이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오전 비예보가 싹 가셨다. 아쉽게도기온은 4월 중 최하로 내려갔지만.
평균기온이 5도라는 걸 감안하고 전 날 세팅해둔 옷을 꺼냈다. 정해진 대회 싱글렛에 발목까지 오는 레깅스, 체온유지를 위해 바람막이와 일회용 우비를 챙겨입고 한 달 동안 열심히 길들여둔 러닝화를 신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엄마와 함께 대회장으로 향했다.
1시간 동안 운전해서 도착한 송도에서는 거센 바닷바람이 불어 정말 추웠다. 하지만 사람들의 열기가 대단하다 싶었던 게 행사장 부스 테이블이 뒤집힐 정도로 강한 바닷바람이 들이닥쳤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사람들은 이리저리 통통거리며 뛰어다니며 몸을 풀고 있었다. 나도 굴할 수 없어 그 대열에 섞여 같이 몸을 풀고 있으니 기분좋은 긴장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예감이 좋았다.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번 뉴발란스 하프마라톤은 4000명의 인원이 참가했다. 주최측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A,B조로 나뉘어 순서를 나눠 대회 출발시간을 분리해뒀고 나는 B조가 되어 조금 늦은 출발을 했다. 매일 혼자 뛰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여럿의 "파이팅"을 들으며 달리니 어찌나 발이 가볍게 느껴지던지, 5km지점부터 극한으로 치솟는 엔돌핀에 몸이 절제를 못하고 자꾸 속도를 내려 했다. 그렇게 속도를 내는데도 숨 한번 안 가빠지기에 점점 앞으로 치고 나가고 싶어졌으나, 계속 스스로를 다독였다. 오버는 안돼, 오버는 안돼!
사실 나는 대회 전 가장 길게 뛰어본 게 18km였다. 이 날 뛴 기록이 가장 최장거리였는데, 집 가는 길에 너무 배가 고파 평소에는 찾지도 않던 설렁탕 한 그릇을 뚝딱하고 들어갔던 기억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한 번도 도전해본 적 없는 숫자를 마주한 날에는 안하던 짓을 하면 안된다. 속도를 낸다면 10km지점쯤에서 퍼질 게 분명했다.
속력도 조절하는 스스로가 어찌나 기특하던지 실실 웃음이 나오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기분좋게 웃으며 첫 반환지점을 통과할 때 쯤에는 진짜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엔돌핀이 정말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그런 내 앞에 있던 몇몇은 멈추곤 했는데, 그 사람들을 보며 조금 더 스스로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 15km지점을 돌파하면서부터 문제가 닥쳤다. 잠시 잦아들었던 바닷바람에 비가 섞여 정말 미친 것 같은 강풍이 앞에서 불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가야하는데 나아가지를 못하고 뒤로 계속 몸이 밀렸다. 다리를 놀릴 수는 없어 몸으로 밀어부쳤더니 체력이 쭉쭉빠지기 시작했다. 나도 앞서 본 사람들처럼 걷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1시간 50분 가량이 지난 지점. 걷게 된다면 대회 시간인 2시간 반 이내에 들어갈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포기는 할 수 없었다. 이대로 포기하면 남은 6km가 너무 아쉬워 한 1년은 잠자리를 설칠 게 분명했다. 그래서 1km 지점마다 멈춰 1분씩 스트레칭을 하고 달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다리를 풀어주고 설설 달리기를 반복하자 드디어 내 최고기록인 18km지점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제 3km만 뛰면 된다는 생각에 다시 몸에 힘이 솟기 시작했다.
입에서 단내가 났다. 너무 힘들어서 침에서 신맛이 났다. 영혼이 나간 것 같은 얼굴로 무념무상으로 달리고 있자 앞에 뛰어가던 분이 눈을 마주치며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그의 외침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 나는 "할 수 있어. 해낼 수 있어. 너는 할 수 있어." 를 중얼거리며 악에 바쳐 계속 달렸다.
왼쪽 고관절과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할때쯤 피니시라인의 흰 현수막이 희끄무레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그 때 시각이 2시간 13분이 조금 지났을 때였는데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이미 달리기를 멈추고 현수막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걸어가면 골인 지점까지 30분 전에는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나는 이 곳을 십몇분 동안 걸어가고 싶지 않았다.가장 끝의 끝에까지 숨겨뒀던 힘을 꺼내 다리로 끌어모았다. 슈퍼맨이 된 것처럼 땅을 박찼고 나는 그 거리를 4분도 안되는 시간 내에 주파를 해 결국 골인 지점에 다다랐다. 빨리 달리기를 멈추고 누워서 쉬고싶어졌기 때문에 더는 질질 끌 수 없었다.
말이 된 것처럼 전속력으로 발을 굴려 골인지점에 들어가자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딸~! 딸랑구~!"라고 외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피니시라인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얼굴을 발견하니 그저 웃음이 나왔다. 내가 해냈구나. 드디어 해냈구나.
"엄마 나 해냈어! 드디어 해냈어! 나 너무 기분이 좋아. 엄마!"며 환한 미소로 엄마에게 소리쳤다. 대회를 하는 동안 느꼈던 그 어떤 기쁨도 성취한 뒤 느낀 승리감을 이길 수는 없었다. 피로도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고 고 몸은 세상 가볍게 느껴졌다. 잘 하면 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신없이 메달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고나서 집으로 향하는 길, 기록칩을 통해 기록된 온라인 기록증이 문자로 도착했다. 02:17:25 상상치못한 쾌거였다. 30분 내에만 도착하자는 목표를 훨씬 뛰어넘은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