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기를 준비하는 자세
서른이라는 별 거 없는 나이에 대해 나는 꽤나 큰 의미부여를 했다. 그래서 스물아홉의 끝에 나는 이십 대의 마무리를 지을 계획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십 대와 다른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찾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고, 나는 삼십 대의 시작에 이뤄낼 세 개의 목표를 만들었다.
1. 브런치북 한 권 만들어내기
2. 수영 접영 마스터하기
3. 하프마라톤 완주하기
별 거 아니지만 항상 미뤄두고 해내지 못했던 것들을 올해엔 꼭 이뤄보자 싶었다.
물론 막상 서른이 되니 스물아홉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갑자기 폭싹 늙는 것도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것도 아닌, 그저 남들과 동일하게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하나 다른 게 있었다. 나는 해내야 할 목표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는 정말 다양하고 많지만, 가장 크고 유명한 대회 3개가 있다. 동아일보의 동아마라톤, JTBC주최 JTBC마라톤, 마지막으로 조선일보의 춘천마라톤. 처음에는 위 세 개의 대회에 도전을 할까 했는데 시기적으로 동아마라톤은 겨울의 끝이어서 연습이 부족할 것 같았고 춘천마라톤은 거리적으로 너무 멀었다.
이 중 내가 도전할 수 있는 건 JTBC의 일명 '제마'. 연예인들이 많이들 참가하기로 유명한 제마는 시기적으로나 위치적으로나 접근성이 좋아 인기가 많다. 그래서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추첨제로 참가인원을 모집하며, 경쟁률이 매우 치열해 만약 접수에 실패하면 나는 올해 마라톤을 뛰지 못할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그래서 다른 마라톤 대회를 찾아보았는데 마라톤은 일단 '기록측정'을 해주는지 여부에 따라 그 대회의 전문성이 갈렸다. 그래서 위 세 개의 메이저 대회 외에 또 인기가 많은 대회는 나이키우먼즈런, 빵빵런, 뉴발마라톤 등이 있었다. 나는 이 모두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다행히도 뉴발란스 하프 대회 신청에 성공을 했다!
신청에 성공한 뒤 알아본 마라톤은 참 재밌는 대회였다. 신청 또한 경쟁이며, 참가하고 나서도 경쟁 속에서 달린다. 하지만 그 경쟁이 누군가를 패배시키기 위해 하는 경쟁과는 성격이 다르다. 나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고 두 다리를 믿고 견디며 달려 나간다. 함께 뛰는 러너들의 응원을 받으며 서로를 격려한다. 포기하지 않기를 응원하며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등을 바라보면, 그들의 뒤를 따라갈 용기가 생긴다. 무언 속의 공존이랄까. 다정하면서도 열정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이나 이기적이지 않은 경쟁이다.
뉴발란스하프마라톤 대회 접수는 1월 16일이었다. 11월부터 달리기를 했지만 이제 막 10km 주파에 용기가 생긴 내게 21km라는 까마득한 길이는 나를 겁먹게 했으나, 너무 원대한 거리가 눈앞에 닥쳐서 그런가 객기가 생겼다. 해내면 되지 뭐. 매주 달리면 되지 뭐. 안되면 한 번 더 달리지 뭐!
그리고 나는 매주 10km씩은 달리기 시작했다. 4월 13일이라는 대회를 앞두고 현재는 주에 20km씩은 뛰고 있는 것 같다. 심박수가 높고 케이던스가 낮으면 달릴 때 부상의 위험이 크다고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러닝을 자주 뛰며 뛰는 모습을 체크해 나가야 한다. 힘이 아닌 탄성으로 뛸 줄 알아야 무릎 부상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서 준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내가 뛰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니 많이 뛰고 나면 무릎이 부어있기도 하고 골반이 아픈 날이 생기기도 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유튜브에 나오는 영상을 아무리 많이 본다고 해도 헬스장처럼 눈앞에 거울이 있는 게 아니니 내가 잘못 뛰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를 타파할 방법이 필요했다. 나는 커뮤니티도 하지 않고 그저 홀로 운동을 오래 해왔던 사람이기에, 사람들이 운동을 어떻게 하는지 알지 못했다. 검색이 필요했다. 이것저것 찾는 도중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알게 된 정보는 정말 다양했다. 일단 러닝스쿨. 많은 사람들이 러닝코칭을 받기 위해 러닝스쿨 등을 등록한다. 하지만 러닝스쿨의 인기는 하늘을 찔러, 이미 신청이 마감된 상태였다. 그 외에도 많은 전직 국대 선수들이 운영하는 러닝클래스 등도 있었고, 나이키나 뉴발란스 등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러닝클래스도 있었다. 그러나 내 눈에 좋아 보이는 클래스와 스쿨은 이미 모집이 마감이 됐거나, 추첨제로 들어가기 어려운 곳들이었다.
결국 일반적인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러닝크루가 가장 접근하기 쉬운 곳들이었다. 러닝크루에도 다양한 종류의 모임이 있었다. 가볍게 걷는 걸 즐기는 모임, 천천히 뛰는 걸 지향하는 모임 등도 있었으나 내게 필요한 건 보다 전문적인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그렇게 찾게 된 크루는 페이스 500에서 630 사이로 매주 1회씩 달리기를 하는 정기모임을 가진 곳이었는데, 이곳의 최고 장점은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달리기 자세를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덕에 세상에는 참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고 건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건강에 선의의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맞는 자세를 배우고 매주 개인연습을 하고 있는 현재, 심박수가 많이 떨어졌고 더 이상 통증은 거의 느끼는 일이 없어졌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음 주의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나는 대회가 끝난 뒤에 내가 계속 러닝을 뛸지 궁금해졌다. 과연 나는 계속 뛸 수 있을까? 아마도 그 답은 yes일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