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낙서 ? 속마음 ?

by 글라라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두는 일기장이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

숨기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다짐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담아두는 그런 공간.

나 또한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꺼내 쓰는 나만의 이야기 보따리들이 있는데,

그 속으로 들어가면, 종종 과거의 나와 마주하게 되고,

때론 어떤 날은 쓰기 보다는 그저 읽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날의 기록들 속에는

계절의 변화,

시간의 흐름,

그 날의 나의 생각, 그 날의 사건들이 있어,

잠시나마 시간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행복의 지도..

그렇게 매일같이 마음속 지도위에 표시를 하며 나는 ,

어제의 나, 엊그제의 나, 한 달 전의 나를 만날 수 있는...

그 행복의 지도 위를 언제나 수줍게, 그러나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 날도 그랬다.

수업 시간 몇 분전 일찍 출근을 하고 아이들이 제출한 숙제 책을

채점하고 있을 때였다. 그 책들 속에는 쓰기 싫어하는 아이들, 하기 싫어서 대충 해온 아이들,

제각기 다른 개성들이 어우러져 글자들이 책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분명 한글과 영어 일 텐데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글씨체들이 난무 했고,

나는 마치 돋보기 없는, 확대를 해서 볼 수 없는 책을 펼치며 하나하나 정답을 찾아가는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정확히 맞은 것을 틀렸다 할 수도 없었고, 틀린 것을 맞았다 할 수도

없었기에.. 차근차근 찾아가며, 조심스럽게 인공눈물을 무한으로 쑤셔 넣으며 책장 위를 헤매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권의 책 한 켠에 아주 또렷한 글씨체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아주 선명하게 읽을 수 있는 글씨들, 아니 읽고 싶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읽혀지는 글자들.

‘선생님 보기 싫어. 죽어라’ 그 문장은 비밀스럽지 않게 큼직한 글씨고 적혀 있었다.

“하하하...”.그 문장을 보고 웃는 나의 모습, 그러고 문득 든 나의 생각들.

1년차의 나였더라면 무척이나 놀랐을 그런 말들이 지금은 놀라지도 않는 내 모습에 나도 모르게

더 놀라게 된 나를 발견하고 흠칫했다.

‘일단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보자’ 생각을 정리하고 아이가 오기를 기다리며 아주 자연스럽게

‘나는 괜찮아. 어른이잖아’ 하며 나만의 주문을 외우며 마음을 가다듬으며 아이를 기다리던 중

그 아이가 도착했고 나는 그 아이에게 손짓을 하며 조심스레 불렀다.

“호호호 이거 나 보라고 쓴 거지? 너무 잘 보여서 깜짝 놀랐네.” 하며 책을 펼쳐보여 주었다.

“내가 정치인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닌데 악플을 달았네?”농담을 건네며 아이의 표정을 관찰하는데,

그 아이는 지워야 할 낙서를 지우지 못하고 제출 한 것이 내심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나에게 조심스럽고 약간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쌤 이거 제가 쓴 것이 아닌데요. 학교에서 숙제를 하는데 친구가 장난으로 쓴 거예요.

정말이에요. 진짠데“ 그러고는 나에게 다시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책을 가져가 지우려 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그래 나는 이 아이 보단 어른이니 믿어보자’

“그렇구나. 그랬다면 지우고 제출하는 센스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일단 이거 지우고, 선생님 마음 상처 받을 수 있었는데 다른 친구가 그랬다고 했으니 ..

근데 친구가 썼다니까. .그럼 그 친구 데리고 와~~“농담처럼 말을 건네고 책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숙제 양에 대한 이야기를 나워 보기로 했다.

“매일 하는 숙제가 힘들어? 아니면 숙제양이 많아?” 조심스레 물어보니 그 아이는 기다렸는지

“네. 매일하기에는 숙제 양이 많아요. 조금 줄여 주실 수 있으세요?”

“그럼 조절을 해보자. 매일하는 것이 중요 하니까. 숙제를 아예 없어질 수는 없고 양을 줄여서

균형을 맞춰보자. 공부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장거리 달리기야. 너는 이제 3/10 정도 온 거야.

숨 고르기 하면서 조금씩이라도 해보자.“

“네 샘. 감사합니다.”

그렇게 작은 사건은 또 하나의 대화로 마무리 되었다.

어느 누가 욕을 먹으면 기분이 좋겠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런 말조차 감수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고, 시간들도 있으니, 그럴 때면 나는 기도를 한다.

‘저에게 인내심과 지혜를 주십시오.‘ 하고 속으로 몇 번이고 주문을 외운다.

나는 그렇게 또 한 걸음,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성장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오늘은 나의 일기 소재가 생긴 하루,

이 시간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일주일 후, 한 달 후,

1년 후에 읽을 나를 그려보며 오늘의 일기를 써야겠다.


누구나

자신이 써 내려가는 이야기들 속에

낙서 같은 이야기들이

또 다른 나의 추억이 되고

또 다른 나의 시간이 되어요.

내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들 속에

진실 같은 이야기들이

또 다른 나의 아픔이 되고

또 다른 나의 위로가 되어요.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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