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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Feb 14. 2023

경험론이 가진 한계

장독, 평상, 절구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여러 명의 장님을 불러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 보고 각자 코끼리에 대해 말해 보도록 했다. 배를 만진 이는 장독, 등을 만진 이는 평상, 다리를 만진 이는 절구와 같다고 제각기 다른 말을 했다. 이에 왕은 "보아라. 코끼리는 하나이거늘 저 장님들은 제각기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을 코끼리로 알고 있구나. 진리를 아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이전부터 진리를 찾는 길에 대해 철학자들은 끊임없는 연구를 하곤 했다. 그중 경험론이란 인간의 인식이나 지식의 근원을 인간의 지각, 즉 경험에서 찾는 철학적 입장을 말하는 것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지혜는 경험의 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나의 대학교 시절 모토는 무조건 '경험'이었다.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을 통해 비로소 성숙의 한 단계로 올라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남들이 직접 겪은 이야기 글을 읽어도, 내가 직접 체험을 하지 않았다면 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접촉해 보고, 접촉을 통해 생각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온전히 모든 것들을 '경험했노라.'라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아쉬운 일이지만 꽤 많은 경험을 축적하기 위해 젊은 날들을 보냈다. 동물병원, 레스토랑, 카페, 회사 등 다양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보고 아일랜드, 세부, 영국, 중국, 일본, 라오스, 코타키나발루 등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녔다. 그 경로에서 끊임없이 떠올렸던 것은 바로 경험은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마음이었다. 다행스럽게 부모님도 나와 뜻이 비슷해, 내가 원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물질적, 정신적 응원을 아끼지는 않으셨다.


생각보다 20대 때 한 경험들은 지금의 내 뿌리를 곧게 만드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때론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해, 조금만 숨을 고르기 위해 앉아 있다 보면 영영 모든 것을 깨우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 잡히기도 하나 말이다. 후회 없는 경험을 해 보았다고 생각해도 여전히 해 보지 못한 것들이 무수히 생겨나고 만다. 언젠가 내가 한 경험들이 모두 별거 아닌, 혹은 사소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1분 1초 낯선 곳에서 겪었던 내 경험들은 블록을 만들어 진리를 찾는 길에 놓이게 될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경험을 통해 비로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예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같은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다 저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로 깨우치게 되는 것들도 모두 다르다는 말. 이런 면에서 경험의 세계에는 절대적 확식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에도 동의한다.


"지식이 이성에서 비롯된다"는 합리론보다는

"우리의 모든 지식은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어 궁극적으로 경험으로부터 도출된다"는 주장에 조금 더 가까이 의미를 두며 살아왔다.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혹은 진리인 것들을 도출하는 일은 지극히 주관적인 일이 될 수 있겠으나 여전히 습득이라는 원소를 주워 담아야만 비로소 생각이라는 물질이 정의될 수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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