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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적 Dec 31. 2022

그나마 다행, 그래서 다행

그다지 봄과 가을을 타지도 않는 내가 유난히 감정적인 시기가 있다면 바로 지금처럼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맘때인 것 같다. 해마다 그 끝에 다다르면 느껴지는 이 기분은 아쉬움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12월 31일이라는 정해진 마지막 숫자와의 거리가 줄어들고 있음을 급격하게 체감할 때면 올해도 나는 미루고 미뤘던 일에 끝내 도전하지 않았고, 바라고 바랐던 것을 역시나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깨닫는다.


특히 지금 지나고 있는 올해의 연말은 올 한 해뿐만 아니라 이제 저물 나의 이십 대를 냉정히 돌아보고 평가하기를 요구한다. 오랫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나의 실패를, 혹은 실패라는 결과에 조차 닿지 못하도록 한 나의 게으름을 마주하게 한다. 이런 불편한 사실을 직면하는 그 끝에 내가 인정해야 할 사실은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했음과,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거다.




나의 이십 대는 실패다. 흔히 가장 빛나고 설레며 아름다운 시간이라 말하는 이십대지만 이런 긍정적인 표현에 부합하는 순간이 딱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부인하고 싶지만 오히려 상실, 무기력, 위태로움, 질투, 자기혐오등의 단어들이 나의 지나온 순간을 더 잘 담아낸다.


서로를 가장 친하다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친구로부터 관계의 손절을 당했다. 묵묵히 자신이 계획한 길을 걸으며 하나씩 무엇인가 이루어가는 친구를 보며 조급함을 가졌고, 꽤 자주 있던 다툼의 순간에는 그 친구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건 어떻든 간에 내가 이기고 봐야 했다. 결국 그 친구는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현명한 선택을 내리며 나는 그 친구로부터 정리되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다양한 생각과 사람을 만나는 감사한 경험을 했지만 이는 나를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떠나갈 사람'이도록 했다. 어디 하나 깊숙이 소속되지 못하고 그렇게 스스로도 갈피를 못 잡는 마음으로 상황과 사람을 대했다. 그런 마음으로 내린 뿌리가 단단하고 의지될 리 만무했다.


나이의 앞자리가 3으로 변하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직이다. 나 스스로가 나를 처량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러한 마음은 손에 꼽는 적지만 깊은 사이라 자부했던 또 다른 친구에게 연락하는 일조차 망설여지게 한다.


돌아본 10년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대략 이런 기억들이 여러 순간을 채우고 있다.





스스로에게 감사를 느끼도록 하는 선택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그 적은 선택 가운데 글을 쓰기로 결정한 몇 개월 전에 나에게는 정말로 큰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 그 선택은 그저 하나의 감정덩어리로 뭉뚱그려져 기억될 지나온 사건이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와 그것이 나에게 어떤 결심을 하도록 했는지를 다시 떠올려보도록 했으며, 닿지 못한 결론이 있다면 그날의 감정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결론에 도달하도록 해주었고, 위태로운 나에게 한없이 특별한 사건들이 아주 많이 있었음을 알도록 해주었다.


글을 쓰며 존재자체가 응원이며 나를 버티게 해 주는 할머니와 우리 집 강아지 토토를 동정의 시선이 아닌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글을 쓰며 미국에서 만난 인연과 그때를 지나며 가졌던 나의 생각이 나쁘지 않았다며 오랜만에 스스로에게 칭찬을 건넬 수 있었다.


글을 쓰며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왜 그 잘못을 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볼 수 있었다.


글을 쓰며 어린 그때의 마음으로 닿지 못한 결론을 스물아홉 살의 나로서 맺을 수 있었다.





실패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나의 이십 대의 끝자락에서 글을 쓰기로 했던 그 선택이 있어 그나마 참 다행이었다.


삼십 대를 마무리하는 글을 쓸 때면 사건이든 인연이든 그것을 통해 나의 지난 10년을 그래서 다행이다라고 말하며 마무리 지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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