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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A Feb 23. 2023

경칩을 기다리는 자세

아무 생각 아무 말



 실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안팎이 요란스러웠으나 피하는 법을 몰라 소음에 노출 당하기를 택했다. 그런 시기였다.


  봄 같은 게 오려는지, 바람이 일면 맡아지는 매캐한 먼지 냄새가 꼭 군내 같다. 저번까지는 추운 냄새가 났는데.

  나는 아직도 두 자릿수까지 떨어진 기온에 살고 있다. 둔하게 껴입고 땀을 삘삘 흘리면서 한파 속에 있다. 아, 이제는 차림을 가볍게 할 필요가 있겠다.




 01

  어느 뜻과 교리처럼 중도의 길을 걷고 싶다. 누군가를 열렬히 미워하는 고행도, 일시적인 극약 처방과의 유희도 하고 싶지 않다. 시간은 시간대로, 강물은 강물대로 표류한다. 나는 나로서 세상에 표류한다.


  무언가 성취해야 증명되는 것만이 가치라면, 평범으로 안위하는 사람들은 폄하되어 마땅한 건지 묻고 싶다. 그 누구도 남을 해하거나, 짓밟거나, 괴롭혀서는 안 된다. 흐르지 못하게 막아서면 안 된다.

 

  이제는 기본값이 되어버린 경쟁 사회의 고군분투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달리지 않는 당신을 '패배자'라고 불러 주었던가.

  타인은 지옥이 아니다. 타인은 타인이다.  


  잣대는 흐름의 방향일 뿐. 절대적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02

  애초에 '남'은 이기는 것인지 돕는 것인지 정해 줬어야 한다. 자가당착에 빠져 추태를 보이니 진절머리가 난다.


  모든 것은 결코 혼자 자랄 수 없다. 잡초에게도 터와 흙은 있다. 온 마을이 나를 키웠고, 눈길 닿는 모든 것들이 나를 도왔다. 걷고, 먹고, 웃었던 모든 날에 그랬다. 간과하면 당연해진다.


  상생이나 자비 같은 건 깨우치는 것보다 밟고 일어서는 게 쉽다. 연민은 진보보다 후퇴에 가까운가.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고 싶다. 타인의 표류를 훼방하지 않고, 그의 인생에 함께 휩쓸려가 주는 작은 모래여야 한다. 그도 그렇게 나라는 물살과 동행하며 단단한 물길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위해를 끼치지 않는 것만으로, 소음을 더하지 않는 것만으로 온전한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03

  내가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어쩌면 경칩(驚蟄) 일 듯하다. 녹은 땅 위에서 삼라만상이 꿈틀거린다. 탄생이 아닌 깨어남. 마침내 절기는 돌아오고, 기꺼이 깨어날 기회를 준다. 모든 새로움은 봄에서 시작된다.


  깨어날 수 없는 긴 겨울잠에도 기어코 봄은 온다. 창 너머로 개구리 우는 소리,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면 그때 이부자리를 털어 보자. 순환은 자연적이나 이용하는 것은 고유함의 몫이다.


  의식하지 않는 의식으로. 태초가 나에게 바란 것은 없었으므로 빠듯하지 말아야겠다. 몸과 마음의 건강,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만큼의 잠재만을 품고 살아야겠다.


  무력감은 애초부터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자질이었다.




  미워하기보다 미소 짓는 법을 깨우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줄기차게 흘러가고 있는 나의 겨울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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