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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A Aug 12. 2023

풋살? 그런 운동을 왜 해요? 3

팀 운동을 통해 배운 것들



 난생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만들어 낸 골은 평생 느껴본 적 없는 절대적인 희열이었으나, 이내 씨앗이 마음에 틔운 건 '불행'이었다.



 팀원들은 '오른발로 슈팅했는데 디딤발 맞고 들어갔다'며 놀리다가도, '어찌 됐든 거기 서 있었으니 골이 들어간 것도 맞다' 며 칭찬했다. 다소 오락가락 기특해했지만 사실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누구든 발만 대면 들어갈 수 있도록 정확히 찔러 준 '팀원들의 실력'이었다.


 심지어 영상을 계속 보다 보니 정말로 내가 없어도 골 포스트 맞고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각도였다. 단순하게 자랑하고 마냥 뻗대지 못하는 성격 탓에 별안간 '골 갈취범'이 된 기분이었다.



 이후부터야 뻔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머리 좀 커지니 되레 득점률이 바닥을 쳤다. 전처럼 패스 아무 데나 뿌리고 골대까지 냅다 뛰어가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내달릴 줄도 알고, 공을 굴릴 줄도 아는데 공이랑 같이 무언가를 하는 건 죽어라 죽어라 안 됐다.


 박살 나 버린 자신감은 잘한 것보다 실책을 먼저 떠올리게 했고, 겁을 한가득 집어먹으니 평소라면 곧잘 해낼 것도 발휘되지 않았다.

 나만 빠지면 득점 서너 개쯤 빵빵 거뜬할 텐데. 글러먹은 몸뚱아리가 미워 잔뜩 구겨져 버렸다. 연습을 해도 드러나지 않으니 땀을 흘릴수록 더욱 눅눅해졌다.






 개인 운동일 경우 저마다 본인의 목표가 있다. 그 목표는 스스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장치가 되고, 컨디션의 영향을 받더라도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기량일 뿐이다.


 하지만 팀으로 움직일 땐 ‘팀 플레이’가 승패를 좌우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선수가 있대도 손발이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초보자든 실력자든 어떤 패로써 적재적소에 활용할 것인지 전략을 갖춰 원팀이 되어야만 한다.



 나의 깊고 짧은 슬럼프는 그 기본적인 특징을 이해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주장 언니가 말했다. 팀 운동이라는 게 누구 하나 잘해서 이기는 것도 아니고, 누구 하나 못해서 지는 게 아니라고.


 다른 언니는 또 그랬다. 그 경기가 정말 너 하나 없었다고 잘 풀렸을 것처럼 보이냐고. 그런 거면 메시가 뛰는 팀은 항상 이겨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 못 해서 그렇지, 속으로 전부 자책하고 있을 거라고.


 팀원들은 항상 잘한다 잘한다 박수 쳐 주며 나를 '눈물 자국 없는 말티즈'로 키웠다. 나가서 기죽지 않게 하려고. 정작 나는 팀원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나 되뇌어 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디게 오르는 내 실력을 핑계 삼아 패배 요인을 단정 지어 버렸다.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핑계로 '패배 요인'이 아닌 '원인 제공자'를 들쑤신 꼴이 됐다. 이걸 자명한 근거로 납득하는 순간 원인 분석보다 남 탓이 쉬운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승리한 경기라도 부진했다 느끼면 '겸손'으로 포장된 '부정'을 앞세웠다. 주는 사람만 있는 격려와 칭찬일 뿐, 받지 못하니 내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원팀'이라는 거창하지 않은 이유로 무조건 같은 조건부 관계를 형성한 것임에도, 처음부터 나를 받아주고 이끌어 준 팀원들의 판단이 마치 틀렸다는 양, 본인조차 믿지 않는 실력에 뭘 바랐느냐 탓하는 모습이 아주 저열했다.






 더러 한 명의 실책으로 패배하거나 한 명의 활약으로 승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매 경기가 그리 독자적으로 흘러가는가? 어떤 전쟁터도 장군 홀로 돌격하는 경우는 없다.


 왜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를까. 뻔하고 뻔한 클리셰 속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 아닐까.


 에이스가 부재하면 또 다른 플레이 메이커가 등장한다. 개개인의 기량이 낮더라도 빌드업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러니 '팀'이라고 부른다.



 나는 풋살을 통해 사는 것을 배웠다. 인생이라고 말하기에는 거창하고, 애매하나 이게 맥이 맞다.

 나 하나 끼워 넣으면 보잘것없지만, 우리가 되면 강해진다. 그건 인간이 유대하고 사는 아주 기본적인 바탕이었다.


 세상에서 오직 나만 잘나기를 간절히 기도하다가도 구장에 가면 티끌 같은 ‘나’는 사라지고 ‘우리’라는 덩어리가 툭 떨어진다.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모두가 ‘나’다. 그러니까, 골을 누가 넣은 건지 같은 건 논쟁거리조차 아니었다.

 이 덩어리의 부속품이 되어 삐걱이는 건 상당한 성취가 느껴진다. 성취는 완벽한 타인들이 주는 도파민이고, 원동력이 된다. 한 주를 살게 한다. 그러니 이 팀은 곧 나의 원동력이다.



 괜찮아, 자신감 가져, 우리는 절대 단 한 명 때문에 패배하지도 승리하지도 않는다.

 살면서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맹목적인 응원과 지지. 이렇게 돈 안 들고 쉬운 일 덕분에 또 한 사람이 성장한다. 온몸을 삐걱이며 성취를 좇게 된다.



 풋살 왜 해요?

 팀원들이 나오니까, 그냥 가서 해요.


 도나 씨 풋살 잘해요?

 저는 못하는데, 우리 팀은 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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