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거미줄 걷어 내기
다시 땅바닥을 예의주시한 채로 다녀야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숨을 더 오래 참아야 하고, 방충망에 무당벌레가 붙어 있고, 화장실 청소를 미루면 초파리가 기어 나온다는 뜻이다. 무시무시한 5월이다.
마지막 발행일이 23년도 11월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서 다시 한번 내가 무언갈 꾸준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뭐, 다른 채널을 통해 간간이 글을 발행해 오긴 했으나 선보일 수가 없고. 25년에는 책을 썼다. 모르는 사람들과 매주 만나 글을 공유하다 보니 아는 사이가 됐다. 잃는 게 있음 얻는 게 생긴다는 불변의 법칙에 따라 책이 발행된 이후에도 근황을 공유하자고 약속했다.
숙제 같은 글쓰기를 해내는 과정에서 풋살팀이 해체됐고, 긴 연애가 끝났고, 다시 새로운 풋살 모임을 시작하고, 농구도 다니고, 영어 학원도 다니고, 이직에 실패해 붙잡혔고, 클라이밍도 하고, 아무튼 오만 인간군상이 모여있는 모든 곳을 다녔다. 그럼에도 성에 차는 게 없다. 멘탈이 안온하기 힘들었지만 그 틈에 브런치가 떠오른 걸 보면 소멸해 버린 창작 기능에 기름칠할 때인가 보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마케터 관두고 에디터 하고 싶다. 콤플렉스를 없애고 싶다. 더 가꾸고 싶지만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잘하는 게 하도 없어서 1만 시간의 법칙을 믿어 보기로 한다. 글쓰기라면 재능이 아예 없지는 않으니까 8천 시간 정도로 에누리 후하게 쳐서. 여지껏 글 쓰는 데에 할애한 시간을 환산해 보면 2천4백 시간 정도 썼을 테니까 5천6백 시간 정도만 더 써 보면 될라나.
하나는 알겠다. 이딴 정신머리로는 1만 시간 못 채울 듯.
그간 완벽한 기승전결 구상에 반나절 정도 할애했지만 글모임 이후 달라졌다. 가볍게 쓰는 연습을 조금 더 해 봐야지. 과거에 누가 또 그랬었는데. 도나야, 글을 자꾸 수정하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일단 써. 다 써. 판단은 사람들이 할 거야. 네가 쓴 글은 다 괜찮아.
그래서 더 열심히 수정하고, 퇴고하고, 숨겨뒀다. 완벽주의 놀이를 하고 싶었나 보다. 사람들이 판단할 문제면 더욱 아무 말 지끼기 곤란한 거잖아.
근래 그 속뜻을 알았다. 판단하는 사람들도 정작 제멋대로 생각하고 아무 말 짓거린다. 노력이 쌍방이면 핑퐁이 될 텐데 랠리가 안 된다. 자꾸 그러니까 나도 서브를 개떡같이 주고 싶어진다. 에너지를 과하게 쏟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사는 동안 측근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세어보지 않아도 '사람 너무 좋아해서 그래' 같다. 사람 너무 좋아해, 사람 너무 잘 믿어, 너무 좋게 말해.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너도 그래서 나 좋아하는 거 아니야?라고. 한번 입 밖으로 꺼냈을 때 지현이는 크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해. 나는 니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아도 사랑하는데.
맞지. 뭘 해도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할 사람은 싫어하더라. 아껴주는 이에게는 상처 되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 두 번 못 뱉었다. 그날부터 남들이 정한 기대치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 말고 스스로를 위해 무얼 했던가 복기해 보았으나, 아무리 곱씹어도 그 틀에 나를 예쁘게 구겨 넣음으로써 기특해하던 모습이 전부 같았다.
그러니 접객도 호객도 할 줄을 몰라서 '책을 왜 내? 아무나 낼 수 있는 건가?'따위의 질문에 눈만 꿈뻑거렸지. 아직도 사람 사는 이야기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모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답하지 못한 걸 후회한다. 은비는 제가 세상에서 글을 가장 잘 쓴다대요. 저 아무나 아닌데요.
각설하고, 모종의 연유로 한동안 쪼대로 살기를 연습해 보려고 한다. 그걸 1만 시간 해 봐야겠다. 뭘 해도 완벽할 수 없고, 이해받지 못하는 거라면 늘 되새기는 말처럼 자가당착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자. 애당초 글쓰기는 나를 위한 거지 남을 위한 게 아닌데. 이야기를 맛깔나게 전달하고 싶었던 처음의 목적성에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다.
예, 독자님. 무시 안 하고 열심히 써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