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은 상대적
서울역에서 집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나? 특유의 혼잡함이 생경해 판단력을 상실할 뻔했지만 약 이 년 전 이 근방에서 귀가했던 경험을 떠올려냈다. 402번 버스 타면 된다. 비록 1시간 40분이 걸리지만 고작 삼십 분 일찍 가자고 두 번이나 환승할 자신이 없었다. 여행 떠나는 마음으로 귀가하지, 뭐.
바위 같은 백팩을 필로우 삼아 끌어안고 기댄 채 잠을 청해 본다. 날씨가 참 좋구나 생각하며 눈감으니, 문득 이대로 소멸될 풍경들이 아깝게 느껴졌다. 아, 안 돼! 악몽에서 깨어나듯 번쩍 눈을 떠 창밖을 응시했다. 그래,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기자. 부산에서만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말하던 야유해 말처럼.
백범광장부터 남산예술원까지 펼쳐진 가로수는 짙은 녹음으로 계절의 맛을 떠먹여 줬다. 그 아래 느긋한 걸음의 노인이, 아이를 품에 안은 부부가, 정면보다 서로를 응시하던 젊은 연인이 오갔다. 다들 어디서 뭘 하다가 돌아가는 건지.
나도 걷고 싶다. 이렇게 예쁜 길을 걸었던 게 언제였지. 잠깐 내려서 사진 찍고, 경치 구경하면서 두 정거장만 걸을까.
그대로 내렸다면 좋았겠지만, 역시 충동에 비해 즉흥적으로 해내는 재능이 부족하다. 그때는 이미 일요일 밤 일곱 시였고, 낭만을 좇으려 지체하는 것보다 현실과 타협하는 게 정답 같았다. 울창한 길 아래 울적해질 내가 걱정돼서가 아니고 집 가면 이미 아홉 시니까, 하면서.
부산이 너무 즐거웠나. 행복이 너무 컸나. 오락가락 뒤흔드는 공허함의 근원을 찾고 싶었다. 어쩌면 여태까지도 혼자 돌아가는 길에 적응하지 못한 걸까. 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다.
전화를 걸고 싶었다. 그런데 어디에 걸어야 할지 몰라서 냅다 글을 썼다. 굳이 '윤승아한테 취중 고백 날린 김무열처럼' 같은 표현을 남긴 건 전할 수 없다는 데에서 일맥상통할지도 모른다. 노이즈가 사라지니 콘서트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슈퍼 스타의 기분을 0.001%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알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정정하자.
멜로디가 좋아 마냥 흥얼거렸던 노래가 떠올랐다. 가사가 귀에 꽂힌 뒤 입에 감기지 않아 멈칫거렸다.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았나 보다. 나는 이 곡을 이해하는 데 3년이 걸린 셈인가? 아, 이 노래 이제 안 부를래.
일주일 후 다시 부산에 내려갔다. 직장 동료의 결혼식. 가장 공적인 관계와 동행했으나 가장 사적인 관계들과의 날것 같은 에피소드가 소멸되지 않은 덕분에 어떤 지점에서는 혼자 웃기도 했다.
예를 들면 스우파에 빠진 희재가 사정사정해서 방문한 DDR 있는 오락실, 뙤약볕이 싫은 영은이가 태양을 피하기 위해 차에 치어도 좋다며 횡단보도에 서 있던 국밥 맛집을 지나갈 때? 추억의 힘이 이렇게나 크다.
수서로 가는 SRT를 예약하지 못해 서울역에 떨어지는 건 그때와 똑같았다. 그날은 새벽 다섯 시에 먼저 떠나야 하는 대리님이 (자고)있었고, 두 시 기차를 타기로 한 사람들만이 새벽 네 시까지 남아서 맥주와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때, 한 대리님이 '가는 시간을 조금 더 당겨볼까요?' 말했다. '우리도 그냥 다섯 시에 갈까?'라는 의견이 바로 따라붙었고, 기회를 귀신같이 눈치챈 나는 '그럼 저 SRT로 가도 될까요?' 답했다. 그렇게 다섯 시 출발하는 수서행 SRT를 쟁취했다.
그때부터 집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나 어쩌면 효율주의일지도?
홀로 탑승하자마자 눈을 붙였다. 아니, 뻗어 버렸다. 도중에 몇 번 뒤척이며 깨어났으나 그것 치고도 꽤 깊은 잠을 잤다. 긴장도가 높았나 보다.
개운해진 몸으로 수서역을 나왔을 때 부산의 흐린 날씨와 상반되는 청명함이 나를 반겼다. 아, 이 편안함.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이런 거구나. 집 가고 싶다는 꿈이 실현되고 있다.
뻐근한 몸은 천근만근이었으나 발걸음이 깃털 같았다. 매일 보던 동네가 유난히 사랑스럽다. 익숙한 풍경이 작품 같다. 모든 게 순조로워서 들뜨지 않을 수 없다. 아침 산책 나온 주민들 눈치를 살피며 괜히 이곳저곳 사진을 남겨 본다. 백범광장도 남산예술원 가로수도 아닌 게 말이야.
길게 늘어선 그림자가 그려 준 나의 실루엣은 형상조차 초췌했지만, 자랑할 것도 아닌 결과물을 더 예쁘게 담아 보려는 욕심까지 생겼다. 버스 하차 벨은 못 눌렀어도 사거리 복판에서 셔터 누르는 것쯤은 만만하니까. 날씨라는 게 그렇다. 맑은 날엔 사람이 맑아진다. 더군다나 나처럼 외부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사람은.
이런 기록은 단순함의 책갈피. 사소함만으로 충분히 뽀송해질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모든 순간은 상대적. 돌아가는 길이 외로운 건 함께일 때의 행복이 컸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