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이상 인간의 욕심과 실수로 재난을 만들면 안되요. )
내 차량 보조석에는 생수 2병, 하루견과 3봉, 과자 1봉, 물티슈, 휴지, 무릎담요가 담겨진 조그만 가방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항상 휴대하는 가방 속에는 충전된 휴대폰 보조배터리가 들어있다. 나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못한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 나름대로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준비한 것이다.
사실 40여년을 넘게 살면서 재난이나 안전이라는 단어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쩌면 신경 자체를 쓰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주변의 숱한 재해와 재난, 사고, 갖가지 위험으로 인한 불행들이 모두 남의 일이라고 여겼고, 뉴스기사 소재이거나 잠깐의 이야기꺼리로 이 사람 저 사람 입에서‘아이고 어쩌나'며 안타까움의 표현을 연발하게 하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사건일 뿐이었다. 하지만 재난이라고 할 것도 아닌 교통사고를 경험하고 나서부터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5년 전쯤 3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두 번의 교통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물론 나의 과실이 아닌 상대방의 전적인 과오로 인한 사고였고 이렇다할 부상도 입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운전면허를 취득했고, 40년 넘게 운전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오신 아버지의 영향에서 인지 겁을 먹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없어‘여자치고 운전 잘하네’라는 소리를 들었다.‘방어운전’을 강조하시는 아버지의 교육 덕분에 20년 무사고 경력을 가진 나였다.
어느 날 세 아이를 뒷좌석에 설치한 카시트에 태우고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카시트는 차량 안전벨트와 결합을 해 고정을 하였지만 카시트에 달린 벨트를 아이들이 답답하다고 싫어해서 메지 않고 다녔었다. 추월차선에서 주행하던 중 앞차가 급작스럽게 정지를 했고, 평소 아이들이 티고 있어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달렸기 때문에 조금씩 속도를 줄일 수 있었지만 내 뒤에 바짝 붙어 달리던 차는 급제동에도 브레이크가 밀리면서 내 차의 후미를 추돌하였다. 카시트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모두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큰 외상은 없었다. 하지만 사고가 나던 순간 무서운 생각이 스쳤고, 지금도 그 때를 잊지 못한다. 그 사고의 트라우마가 채 가시기도 전에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날 중앙선을 넘어 운전중인 나를 향해 돌진한 차량에 의해 두 번째 사고가 발생했다. 문이 심하게 구겨졌지만 천만다행히도 내 다리에까지 닫지 않았지만 순간 죽음을 경험한 것처럼 놀랐다. 비로 인해 시야 확보가 되지 않은 초보운전자의 실수로 인한 사고였다. 그 때부터였다. 운전대를 잡으면 긴장이 되고, 특히 비가 오면 양손으로 핸들을 꼭 붙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운전을 하게 되었다. 운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던 내가 운전을 꺼리게 된 것이다.
남들에게 모두 일어나도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명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이 몰려왔다. 안전을 생각하면서 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조심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티브이에서 우연히 접한 영화 한 편이 나를 움직이게 하였다.
한 달여 전 쯤인가 티브이를 보던 중 ‘터널'이라는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개봉한지 몇 년이 지나서인지 별도의 비용 지불 없이 볼 수 있었지만 처음에는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릴지 말지를 고민했었다. 터널을 주제로 한 영화가 그리 흥미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집어들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내용인 즉 무너져내린 터널 속 생존기를 다룬 재난영화라고 기록되어 있다. 반신반의하다 보게 된 영화로 인해 나의 생각에 큰 변화가 생겼다.
붕괴된 터널 속 차량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버티는 모습, 그런 사고자가 살아있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가족, 변덕스러운 날씨 속 더디 진행되는 구조 현장 등 다양한 각도에서 각자의 입장을 잘 표현하고 있었고, 마치 내가 주인공인 된 듯 착각에 빠져 영화에 몰입하였다. 유일한 통신수단인 핸드폰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구조반과 대화를 하고, 생수병에 줄을 그어 목만 적셔가며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러던 중 다른 생존자가 있음을 알게 되고, 목숨과도 같은 생수를 나누어 주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고민하던 모습 등 모든 것이 실제 상황인 것만 같았고, 영화를 보는 내내‘과연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를 상상해보게 되었다.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 사고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으로 구조장비를 투입하였으나 설계도와 다르게 시공된 탓에 허사로 돌아갔을 때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올 만큼 분개하였고, 주인공과 함께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좌절감과 절망감이 밀려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확신이 되어갔다.
나의 경우 집과 직장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차량이다. 결국 차량으로 인한 사고의 확률이 가장 높을 수 밖에 없다. 자의든 타의든 일반 교통사고 외에도 교각이나 터널 등의 붕괴로 인한 차량내 고립 등 갖가지 상황을 생각해야 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차량에 불가피하게 갇히게 되는 상황이 생겼을 경우를 대비해야 겠다는 생각과 함께 영화에서 얻은 팁으로 생존박스를 놓게 된 것이다.
재난, 재해, 사고’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나를 포함한 가족, 가까운 사람 중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은 경험이 없었다. 또한, 안전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정도의 위험한 일을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방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2년 전쯤 나의 직장에도‘안전’을 다루는 부서가 신설되었고, 우연히 그곳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평소 ‘나는 항상 안전하다’라는 생각과 ‘안전 안전하다가는 일 못한다'는 생각이 공존해 있던 나로서는 신설된 부서가 생소했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일을 하면서 나의 중대한 생각의 오류를 깨닫게 되었다.‘아는 만큼 보인다’는 옛말을 증명이나 하듯 관심을 갖고 바라본 나의 일터와 사회, 나아가 집도 달리 보였다. 어디가 어떻게 위험한지, 그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길을 가면서도 기존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뉴스를 통해 전달되는 재해, 재난, 사고 등을 접하면서도 나와 무관한 일이라 여겼던 나는 내면과 의식 속 반성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부터 직장에 이르기까지 수 회 지진대피 훈련, 소방훈련을 받고 실습도 하였지만 단 한번도 목적과 취지를 되새긴 바가 없었다.
흔히 말하는 안전불감증이 바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일컫는 말일 것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에서‘한강의 기적’이라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내기 위해 ‘빨리빨리’를 외치면서 ‘사상누각’을 추구했던 것은 아닐까? 기초와 기본이 바탕이 되지 않은 빈 깡통 위에 세워진 화려한 모습만 바라보다 중차대한 부분을 간과하였고, 그 결과 잊혀질만 하면 발생하는 건물 붕괴, 선박 침몰, 화재 등 대형 재난사고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우리를 공포와 충격에 몰아넣고 있는‘코로나19’라는 세계적인 재난은 과연 왜 발생한 것일까? 학술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불법으로 채취한 동물에게서 전염된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인간이 자연과 생태계에 해서는 안 될 일을 자행하면서 재난을 끌어당기고 있다’는 점이다. 신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곳에 인간의 손이 닿으면서 스스로 재난을 만들어내고 있다.
안전에 대한 의식부족과 이익만을 중요시한 부실시공으로 붕괴사고를 불러오고, 끝없는 욕심으로 자연을 훼손하여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을 더 이상 계속해서는 안된다. 최근 미국의 정권 교체와 더불어 친환경 바람이 급물살을 타면서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앞에서 말한 이러한 이유가 반영된 변화일 것이다.
‘코로나19’사태로 인해 당연시 여기던 우리의 일상에 제한을 주게 되면서 인식 변화의 기폭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와 함께 새롭게 대두되는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상이 되어버린 마스크 처리 문제와 길거리에 나뒹구는 마스크를 주워먹고 죽어가는 동물들, 택배 문화 확산으로 인한 쓰레기 등 새로운 문제를 과거처럼 또 모른 척 지나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재난이 다가올 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과 친구의 생명을 앗아가는 대형사고들 뿐만 아니라 신의 영역이라고 여겼던 자연재해도 결국 우리 인간들의 욕심과 실수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