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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리터리맘 Sep 23. 2021

일회용 여과지를 재활용하는 사람

더 늦지 않게 삶과 돈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바꾸려고 한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님이 계시다. 연룬도, 업무에 대한 전문성도, 재치있는 유머와 대인관계의 능숙함에 더해 남자다운 외모까지 모두 갖춘 분이다. 10살도 채 차이가 나지 않지만 아버지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는 자상한 분이다. 적어도 내 눈에는 이상적인 군인이다. 30년을 넘게 한 곳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면서 진급이라는 보답을 원하는 만큼 받지는 못해 곧 퇴직을 앞두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무슨 일이 주어지더라도 자신감있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만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선배님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군의 선배이자 때로는 삼촌같은 편안함을 느끼면서 나 또한 어떻게든 

잘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름대로는 행동으로 옮기며 생활하고 있다. 많은 부분에 있어 도움을 받는 쪽은 나이지만 새로운 물건을 소개하거나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와드리기도 한다. 최근 선배님께 핸드드립 커피를 소개했다. 물론 내가 먹기 위해 구매하면서 선배님것도 함께 마련했다. 분쇄하여 판매되는 커피와 일회용 여과지..  신문물을 소개하듯 직접 시범을 보여드렸고, '이런 것도 있냐?'며 신기한 듯이 바라보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고, 이후 한 두번 스치듯 물었을때 나의 가르침대로 잘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까.. 내가 사용할 일회용 여과지를 구매하기 위해 들렀던 가게에서 문득 선배님 생각이 났다. 선배님은 나에게 여과지를 어디서 사냐고 단 한번도 물어보지 않으셨다. 여과지가 없어서 못드시고 계신것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왜 진작 챙기지 못했을까 하며 선배님을 위한 여과지도 함께 구매를 했다.

그렇게 구매한 것을 들고 찾아간 선배님에게서 놀라운 소리를 듣게 되었다. 평소에도 절약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일회용 여과지를 재활용하고 있다는 말씀은 나에게는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일회용 여과지를 재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하지 못했다. 일회용이니까 당연히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라고 여겼다. '여과지에 구멍이 나지 않는 이상 다시 사용해도 문제 없지 않느냐?'며 사용 후 씻어 말려놓은 여과지를 보여주시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생각과 행동의 차이는 결론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여러 책과 강연을 들으면서 접해왔다. 부자들의 근검절약 정신이 바로 이런 것인가


물론 선배님은 엄청난 재력가가 아니다. 정직하게 일정한 나라의 녹을 받아 살아가는 공무원이다. 그런 우리가 부자가 되는 방법은 사실상 금수저가 아니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선배님은 늦둥이 딸을 포함한 세 자녀를 키우면서 30여년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군 생활속에서 내 집을 마련했다고 했다. 물론 대출이 대부분이지만 그렇게 라도 내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어떻게 가능할까 싶었다. 내심 

말씀은 안하시지만 부모님께 받은 것이 조금 있겠지 했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겠다 싶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나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나 또한 세자녀와 시부모님, 대가족을 부양하며 살면서 소위 말하는 통이 큰 사람이었다. 물론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찌질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있어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였다. 게다가 대출과 신용카드 긁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치스러운 시어머니와 한탕주의가 강한 남편의 영향이었을까? 난 절약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것과 모자라지 않은 것을 더 중요시하면 살았다. 내가 그래도 군에서 이 정도 위치에 있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나중을 위해 지금 절약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고 살았다. 


과연 지금 나는 어떤가? 대가족 부양을 위한 생활비 충당과 남편의 즉흥적인 투자 실패들로 인해 은행 빚만 남았다. 주변 어떤 사람도 내가 이런 상황이라는 것을 모른다. 맞벌이 부부와 나의 군에서의 직급을 유추하며 모르긴 몰라도 좀 살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나는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은 커녕 빚을 내려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목표인데.. 나는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을 내가 아닌 주변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생활속에서 절약하는 방법을 모르고 고민해 본적도 없다. 


전기세가 아까워 폭염에도 에어컨을 마음껏 켜지 못했고, 기름값이 두려워 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내가 한겨울에 집안을 따뜻하게 할 만큼 보일러를 돌리지 못했다. 그것이 절약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너무 서럽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가 했다. 망연자실한 마음과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부럽고 밉기까지 했다. 일확천금은 없다고 입이 닳도록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정작 나 또한 부족하지 않게 보이려고 과도한 지출을 일삼아왔다. 그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나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내일은 없는 것 처럼 살아가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바 없었던 것이다. 


좀 늦은감이 있지만 삶과 돈에 대한 생각을 바꾸려고 한다. 일상속에서 절약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할 것이다. 좀 부족한 듯한 삶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내일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사실은 자격지심이었던 허영심을 떨쳐내고 하루하루 조금씩이라도 채워가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전 내린 커피 여과지를 깨끗이 씻어 말려두었다. 이런 작은 실천을 시작으로 좀 가진자들의 일상을 흉내내볼 것이다. 사실은 수없이 많이 들었던 것인데 이제서야 의미를 알아챈 것이다. 이래서 인생을 배움의 연속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40대 중반을 넘어가는 지금 알았다. 많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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