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나의 재능, 착한 며느리, 신데렐라병 증후군)
나는 과도하게 마음 씀씀이가 좋다. 한 마디로 손이 크고 인심이 좋아 가족이나 주변 지인에게 주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한다. 뭔가 좋은 물건을 살때면 엄마, 시어머니, 시누이까지 다 사서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남편에게서 항상 싫은 소리를 듣는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고쳐지지 않는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하지 않겠다고 애써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러다보니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이용당하면서 하면서 뼈져리게 느끼고 결심을 거듭했지만 금새 잊어 버리고 또 반복한다.
난 어떤 사람도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당하고 나서야 알게된다. 심지어 가족들도 나를 호구로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가족이니까 조건없이 당해준다. 아니 당하는 것이 아니라 베푼다. 그런데 남은 분명히 남이다. 본인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내게 왜 선심을 베풀겠는가 의심해야 한다. 남에게는 이렇게 조언을 잘도 하면서 나는 왜 못하는 걸까. 왜?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주기적으로 상기해야 한다.
최근에 부동산 투자를 권유하는 사촌 언니에게 절대 말하고 싶지 않는 비밀까지 얘기해가며 도와달라고 했다. 언니도 사정을 듣고 선뜻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큰 기대는 않했지만 '가족이니까' 라고 말하는 언니의 말에 희망이 생기는것 같았다. 그 말을 믿고 이후 나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투자한 것이 몇배로 올라가는 상상을. 그렇게 혼자만의 상상으로 행복해 하던 나에게 돌아온 말은 "나도 투자를 해야 해서, 부모님께 말씀드려보라"고. 역시 또 뒷통수를 맞았다. 아니 생각해보니 언니가 그냥 던진 말을 나는 진심으로 들었던 것 같다.
나의 불필요한 재능이 발휘된 것이다. 나의 힘듦을 알아주고 도와주려는 구나 하는 착각하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이렇게 대출도 받지 못해 남에게 도와달라고 구걸해야 하는 처지가 화가 났다. 분명히 문제는 내게 있다. 남편의 허세와 그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만들어진 빚을 오로지 내가 떠안았기 때문이고, 사기꾼 친구에게 단돈 1원의 이익도 바라지 않고 명의를 빌려주어 제 2금융권 빚까지 지게 되면서 발생한 문제이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채워주기 바라는 마음이 있었는지 남편에게 짜증이 나는게 아닌가?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내게 써야하는 말이리라. 그래서 잠깐 짜증이 났고 이유로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아 잠깐 냉전상태를 만들었다. 즉 대화를 하지 않은 것.
다음날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나는 나의 문제를 인정하고 또 반성했다. 언제까지 이런 것을 반복하려는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도 사기꾼 친구 차량 할부금 납부 문자를 받아 사기꾼에게 전달하면서 소심한 독촉을 했다. 나도 정말 현실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잘 안된다. 착한 며느리병, 신데렐라병이라는 정신병에 걸린건 아닌가 의심이 된다. 남은 남이다. 남은 남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되내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