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에어컨 먼지는 필터에서 나오는게 아니었다.

by 청귤

추웠다가 더웠다가 추웠다가 더웠던 5월. 분명 작년 같은 달에는 봄 옷들을 모두 집어 넣었던 것 같은데. 아직 넣으면 춥고, 꺼내면 더워서 괜히 자리를 차지한다. 약속이라도 한 건지 금요일이 되면 내리는 비는 항상 주말을 춥게 만들었다. 월요일이 되면 힘찬 일주일을 보내라는 하늘의 뜻인지 반팔을 꺼내입는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아직 후리스를 완전히 집어 넣지 못했다.


아침 햇살이 바닥에 비치는 남향의 집은 쉽게 더워진다. 집에 혼자 가만히- 있으면 시원한데, 한 명이라도 더 오면 확! 더워지는 느낌. 더위를 타는 남자친구도 있겠다, 딸기가 끝무렵인 여름이겠다, 에어컨를 틀어야겠다 떠올린다.


입주 청소에 에어컨 청소는 포함되어 있으므로 작년에는 틀고 말았는데, 올해는 아니다. 작년동안 쌓아온 검은 먼지들을 내 폐로 넣을 수 없다!

살면서 에어컨 내부를 직접 뜯어 본 적이 없는데 에어컨 온갖 곳을 이리저리 더듬거리다가 양 옆의 홈을 발견했다. 왠지 에어컨 상단에 있을 것 같아서 먼지 가득한 위를 만지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필터란 바람이 나오는 곳에 위치하는게 정상이었다.


막상 필터를 꺼내보면 육안으로는 먼지가 많이 없어보인다. 엄마는 이 촘촘하고 얇은 필터를 안쓰는 칫솔로 박박 문지르라는데, 왠지 그대로 따르면 필터가 찢어지거나 상처날 것 같았다. 결국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수돗물을 틀어, 손으로 조심스레 문질렀다. 자식 키워둬도 말을 듣지 않는다. 어쩌겠어.. 생각하는 스물셋인걸..

육안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검은 먼지들이 때처럼 밀려나왔다. 이래서 칫솔로 문지르라고 했나보다. 얇고 촘촘한 만큼 사이사이에 작은 때들이 끼어 있었나보다. 그럼에도 칫솔은 쓰지 않았다. 사이사이 먼지가 모두사라졌을지 알 수 없지만..


필터를 바싹 말리지 않고 꽂으면 내부에 잔뜩 곰팡이가 슬어 곰팡이 공기를 마시게 된다는 쇼츠를 봤다. 쇼츠는 유익할 때도, 유해할 때도 있지만. 찾아보니 맞는 말 같아 베란다에 널어두었다. 엄마 말은 안 듣고 쇼츠와 구글 말을 듣는 아이러니.


필터를 꺼낼 때부터 든 생각인데, 필터보다 에어컨 내부가 훨씬 지저분 했다. 먼지 폭격을 맞은 느낌. 이대로 필터를 씌워 흐린 눈으로 여름을 보내도 괜찮을까 건강에 대해 심각한 염려가 됐다. 다이소에 에어컨 필터 청소하는 스프레이를 깊숙한 곳까지 뿌려, 밑에 큰 봉다리를 두고 에어컨을 작동시켜두면 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스프레이를 추천받아 집으로 가져왔다.

그치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귀찮고 큰일이었다. 하루하루 등교하기도 바쁜데 말이다.

이미 성수기인 지금 견적은 7평의 집에도 8만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엄마 그래서 어떡하지"

"어차피 1년 더 살고 나갈 집인데, 그냥 1년만 살아. 필터가 걸러줘서 괜찮아"

"넹"


이번만큼은 엄마 말씀을 잘 듣기로 했다!

keyword
이전 10화10.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데 옷은 꿉꿉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