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없다면

소속이 없으면 불안해진다. 그럼 취준생은 뭐라고 할 수 있는거지.

by 청귤

요즘 뉴스기사를 보면 오랜 기간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청년들을 '쉬었음 청년'이라고 지칭한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쉬었음 청년'이 된다. 소속되어 있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는 20대 중반을 지나칠 수록 점차 크게 다가온다. 다른 사람들도 소속되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을지 궁금하다. 일반적으로 20살쯤 의무교육을 마친 후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 펼쳐진다. 대학교 졸업 후를 가정하면 20대 초중반, 처음으로 학교라는 소속을 잃는 경험을 겪는다. 그리고 각자의 소속을 찾아 떠난다.


나를 소속이라는 수식 없이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학교에 다니지 않고 회사나 특정 자리에서 돈을 벌고 있지 않다면 나를 '취준생' 외에 설명할 길이 있을까.

제목이 '수식어가 없다면' 에서 끝난 이유는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안할 대답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수식하는 방법'이라고 적었을테다. 졸업 이후 나를 소개할 자리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가 가장 앞선 설명이 될 확률이 높다. 졸업을 앞두고 회사에 소속되지 못할까봐 불안을 느껴 이런 주제를 택하게 되었다.

점차 수식어의 중요성을 체감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이름 석자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회사와 직급, 학교와 학과, 아빠와 엄마 그리고 자식 등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 이름 앞뒤로 수식어가 변화하고 늘어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원하는 수식어를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일까. 사회적 명예나 지위로 보이는 것들이 아닌 스스로 원하는 수식을 추구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지만, 반대로 자신 한 명을 꾸미는 고유한 수식이 아니라 더욱 유명세 있고 선망 받는 곳에 소속하여 자신을 설명하고 싶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옳고 그름 없이 추구하는 바가 다를 뿐이다. 그러나 이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자신을 설명하는 무언가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난 아닌데' 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에 존재하는한 높은 확률로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 어느 곳에도 포함되지 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번외로


'나를 수식할 말이 많다.'라는 것은 자신을 지켜주는 방파제가 많다는 의미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수식하는 것에는 앞서 말했 듯이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눌 수 있다.

- 소속된 집단

- 나의 특성/특징


첫 번째, 소속된 집단이 개인에게 적절한 수준 내에서 다양하다고 가정하면, 한 개인 혹은 주거집단에서 부정적 충격을 받아도 모든 관계가 무너지지 않으며, 회복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살아오며 느낀 점 중 하나를 설명하자면, 자신의 모든 걸 바칠 듯이 깊은 관계(한 사람, 한 집단) 보다는 깊은 신뢰관계인 개인 혹은 주거집단이 당연히 주를 이루어도 보다 얕지만 적절한 신뢰와 정을 공유하는 여럿 관계가 지탱해 주는 것이 살아가는 데 편안한 인간관계 구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자아에 확신이 있는 사람들이 비교적 정서적으로 건강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꼭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곳과 많은 곳에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스스로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일 등을 파악하고 있다면, 자신에 대한 정보들이 여러 혼란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선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국회의원에 지원하는 사람 중에서도 무소속이 있다. 그들은 각자의 주장과 가치를 내세운다. 비슷하지 않을까. 한 분야에서 무소속이더라도, 자신을 알고 확고하다면 소속되지 않아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의 꼬리가 길었다. 글로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 좋다. AI를 이용하지 않고 단어 하나라도 신중히 고르며 딱 맞는 표현을 찾았을 때의 쾌감에 중독되어 있다. 글을 쓰며 나에 대해 파악한다. 나의 소속에 '글'이 들어오는 날도 있을지, 상상하며.


260210 청귤

이미지 : 게티이미지 공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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