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 사슬, 그리고 다시 숨을 쉬기까지
지난 1년 동안
내가 일기장에 가장 많이 쓴 문장은 아마 이거였을 거다.
“면역수치.”
숫자 하나에 매몰돼
그 숫자를 올리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좋다는 건 다 해봤고, 안 좋다는 건 다 피했다.
그런데 결론은… 꽝.
방향을 잃었다.
불안은 집중력을 앗아갔고,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다.
먹는 걸 좋아하던 내가 식욕을 잃었고,
체중은 머리카락 빠지듯 무섭게 줄었다.
손가락이 잘 구부러지지 않아 젓가락질이 힘들어졌고,
기억력엔 교란이 와서 일상에 소설을 쓰기 일쑤다.
기억 소환에 다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자괴감은 그대로였다.
잡생각을 떨치겠다는 명분으로
하루 스무 시간, 즐겨보지도 않던 로맨틱 코미디에 매달렸다.
울다 웃다, 눈이 아플 때까지 부릅뜨고 본다.
그래야만 겨우 잠에 들게 된다.
잘 먹고 잘 자던 내가,
도무지 용납되지 않는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어쩌면 '치료 중단'이라는 각오를 다지며 검사를 받았는데,
기대도 안 했던 면역 수치가 40이 올랐다.
“이게 뭐지…?”
그동안 힘들게 하던
표적치료제 키스칼리와
호르몬 억제제 페마라만의 효능?
가열차게 달렸던 날들이
숫자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다시 일어섰던 날들이
순간 억울해지며
힘이 쭉 빠졌다.
겨우 1년 차에
이러면 안 되는데…
그래도
'나아졌다'는 말에 방점을 찍고
감사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다 문득
이제 스탠스를 바꿔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기로 하자.
면역 수치에서
조금 자유롭기로.
조심은 하되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보니
꽉 막혔던 숨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았다.
그래, 이거지.
이게 사는 거지.
더 잘해보겠다고
셀프 자가격리를 하고
더 잘해보겠다고
보양식만 찾아다니는 삶.
이제 그만.
내가 스스로 매어놓은 사슬을
툭— 집어던지고
자유롭기로 했다.
힘들어지면
중단하면 된다.
중단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또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돌아보면 2025년은
낯선 길 위에서
꽤 치열해야 했던 한 해였다.
식습관을 완전히 바꾸고,
셀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올라오는 잡생각의 대항마로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았고,
브런치북도 한 권 써봤다.
면역 수치와 씨름하며
고군분투했다.
키스칼리는
온몸에 상흔을 남겼고,
페마라는
류마티스를 데려왔다.
생전 처음으로
내 몸을 순간순간 들여다보며
예민하게 반응하고
대처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렇게 매몰된 삶은
삶의 질을
툭— 떨어뜨렸다.
그래서
이제 스탠스를 바꾸려 한다.
적당히 조심하고,
적당히 조절하며,
내가 살던
즐거웠던 세상 속으로
천천히 다시 들어가려 한다.
2026년.
살살
잘 살아보자.
너와 나,
쌈질 뚝.
쓰담쓰담하며
잘 지내보자.
가우디 서거 100주년.
사그라다 파밀리아 완공.
묻어두었던 꿈도
슬며시
다시 불러와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