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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영 Jun 02. 2024

"왜 지금 태어났냐?"

에세이_04

"혼자 뭐 이것저것 했네."

"아, 네."


그가 이력서를 찬찬히 살피는 동안 그의  성긴 정수리가 내 시야를 채웠다. 중년 남자의 허여멀건 두피를 보고 있자니 아, 솔직해지고 싶었다.


"저 솔직히 기자의 꿈 없거든요. 여기 배우러 온 것도 있지만 사실 도피처에요. 이곳은"

"기사 쓰는 거 재미없을 거야. 그치? 네 관심 분야도 아니고."

"사람답게는 살아야 하니까 여기저기 관심 가지는 수준이죠."

"야 니 마른 거, 운동하거나 덜 먹어서 그런 게 아니란 걸 알잖아."

"아... 네. 맞아요."

"신경 예민해서 그런 거잖아."

"그렇죠. 신경이 예민하긴 해요. 꽤 먹는데요, 살은 잘 안 쪄요."

"출판사에 너 같은 애들 좀 있지. 20년 전에 태어났으면 잘 먹고 잘 살았을 텐데."

"왜 지금 태어났냐?"

"..."  

"'지승호'라고 인터뷰 전문으로 하는 사람 있어. 인터뷰 엄청 많이 하고 다녔거든, 그 양반. 책도 많이 내고. 근데 지금은 굶어 죽으려고 해."

"너 그 사람처럼 살 수 있겠냐?"

"..."

"모르겠어요."

"너 일 적고 돈 적게 주는 데 들어가라."

"네?"

"네 시간 확보할 수 있는 곳 가라고."

"너는 정신과 영혼의 문제를 고민해야 돼. 예민한 신경을 표현할 수단을 찾으라고. 그걸 찾으면 편의점 알바를 하며 살아도 괜찮아. 그러니까 어떻게든 시간을 확보해서 네가 좋아하는 걸 찾아. 그걸 계속해."

"제가 좋아하는 거요?"

"그래, 수료 전까지 생각해서 나한테 말해."


그의 흐린 눈을 바라봤다.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고요한 눈이었다. 목구멍이 울렁거렸다. 입은 열리지 않았다. 두세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뭐지, 이 사람.



* 지난달 29일 잡지교육원 강사와의 상담 중 일부다. 인상 깊은 대화였고, 좀 웃기면서도 골치 아픈 대화였다.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한데 쓸데없이 바람 넣지 마시라고요. 근데 강사님. 어떻게 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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