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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영 Apr 03. 2024

한강에 갔다

에세이_03

4월의 둘째 날치고는 따수웠다. 속에 받쳐 입은 반소매 티에 땀이 옅게 배었다. 갈증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종일 앉아있던 몸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들렸다. 눈알이 뻐근했다. 그래서 여의도 한강공원에 갔다. 잡지교육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다. 마침 벚꽃축제의 마지막 날이란다. 걸었다. 공원 초입부터 연인과 학생과 가족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입을 뻐끔거리며 벚꽃길을 가로질렀다. 백발의 남자가 팔을 휘두르며 교통 통제를 했다. 그는 제복을 입고 있었으나 경찰같진 않았다. 그의 과묵한 손짓에선 교통경찰의 권태로움이 보이지 않았다. 장갑 낀 그의 손을 보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공원에 들어서자 포장마차에서 번지는 음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염통구이일까, 닭꼬치일까. 진한 인공 감미료 냄새. 떡볶이를 먹은 뒤라 썩 반갑진 않았다. 강변을 향해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썬팅캡을 쓴 할머니가 전단지를 건넸다. 치킨 배달 광고지였다. 주저 없이 받았다. 여의도역 앞에 서 있는 할머니가 생각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게 항상 전단지를 쥐여주는 할머니였다. 어느 날은 내가 그녀에게 먼저 손을 뻗었다. 할머니의 손주가 내 나이쯤이지 않을까 싶어서. 손주는 할머니의 짐을 못 본 체할 수 없다. 짐을 든 할머니의 모습은 슬프다. 그런데 전단지를 갈구하는 손길 같은 건 겪어보지 못해서 였을까. 할머니와 나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손과 손이 어긋났다. 나는 인파에 떠밀려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갔다. 빈손이었다. "아이고 못 줬네" 할머니의 목소리가 귀에 걸렸다. 집에 돌아가는 내내 자꾸만 슬펐다. 양손 가득한 전단지도, 남의 손만 바라보는 눈길도, 갈라지는 목소리도.   

나의 외할머니는 영주에 산다. 영주시 풍기읍. 풍기는 인삼으로 유명하다. 영주의 할머니들은 매일 새벽 인삼밭으로 간다. 언젠가 체험기사를 쓴다면, 외할머니와 함께 하는 인삼밭의 하루 일과로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불호령에 따라 허둥거리며 인삼을 만지고 싶었다. 무릎이 저리고 목이 뻐근하고 싶었다. 팔십 먹은 여자들의 일을 나눠갖고 싶었다. 팔십 먹은 여자들이 아직도 일을 한다. 관절약을 먹으며 과수원으로, 인삼밭으로 향한다. 그러다 한 집, 한 집 주인이 사라진다. 빈집이 늘어난다. 체험기사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자라는 꿈, 그리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도 기자가 된다면 그건 전적으로 외할머니와 인삼밭의 덕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4월에도, 외할머니는 돈을 주는 밭에 가지 않을까. 여의도의 할머니는 내일도 전단지를 쥔 채 손 틈을 찾지 않을까.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자꾸만 슬프다.

해가 길어졌다. 강물은 느리게 흘렀다. 여의도 한강공원엔 젊은이와 비둘기가 많았다. 어느 계단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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