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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영 Feb 26. 2024

버티거나 도망치거나_《백만엔걸 스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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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면 자아 반쪽쯤은 찾아야 한다는 거, 그거 참 피곤하고 괴로운 일이다. 스즈코는 편안하게 살고 싶어서 떠난다. 얼떨결에 얻은 전과로 규정된 사토 스즈코란 허물이 굳어지기 전에 얼른 생경한 공간으로 자신을 내던진다. 딱 백만엔만큼의 시간만. 백만엔이 모이면 주저없이 새로운 주거지를 찾아 바다로 산으로 도시로 떠난다. 백만엔의 시간은 그녀에게 있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가 정착되고 그 명목으로 온갖 불편함이 찾아오는 시점인듯하다. 스즈코를 둘러싼 세계의 폭력은 친절한 척 수직적이고, 가까울수록 소외하며, 오래될수록 집요하기에 그녀의 도망은 폭력에 대한 거부이자 저항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전과자로, 순종적인 소녀로 취급되기 전에 백만엔만큼의 선에서 자신의 시공간을 지키겠다는 의지다.


학교폭력으로 얼룩진 동생 타쿠야의 나날이 스즈코의 여행과 교차된다. 그녀가 배반당하고 곤란해지고 때로 만족스러워질 때, 타쿠야는 매일 같은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나 명문중학교로 진학하여 자신을 괴롭히는 무리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는 누나를 보며 마음을 바꾼다. 일반중학교로 진학하여 그들과 계속 생활하겠다는 것. 자신을 아는 시선들을 뿌리치고 백만엔이 모이자마자 가열차게 집을 떠나는 누나의 도망은 타쿠야에게 새로운 용기였던 것이다. 나를 짓밟는 행동들 사이에서 버티게 할 용기. 나를 한낱 장난감으로 여기는 이들 앞에서 망설임 없는 나로 대면할 용기.


세 번째 이사를 결심한 스즈코에게 타쿠야의 편지가 도착한다. 담담히 고통을 읊으며 버텨내겠다는 동생의 다짐을 읽고, 누나는 운다. 이번엔 스즈코가 동생으로부터 용기를 얻는다. 사실은 많이 약해서, 사람이 무서워서 도망쳤던 그녀에게 내 삶을 위해 떠날 수 있고 삶의 방향키를 틀어잡을 수 있는 그런 용기다.  더는 잊히기 위해 떠나지 않겠다. 진정한 내 자리를 고르기 위해 떠나겠다. 붙잡을 리 없는 전연인을 비웃으며 그녀는 역으로 향한다. 가본 적 없고, 아는 이 없는 신세계로.


생물학적 인간은 한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녔을 때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보통 그 자리는 사회가 상정한 정상성에 근접한 프로필을 지녔을 때 주어진다.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가령 이민자, 동성애자, 노숙자 등에게는 자리를 쉽게 내어 주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타자로 밀려난다. 언제부터 사회의 주체였는지 고민조차 없는 다수의 정상인은 본인들의 자리를 공고히 한다. 조건 없는 환대란 없다.


그러나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그 자명함이 실은 얼마나 빈약하고 일방적인지, 사람의 이야기에 들어가면 알 수 있다. 삶의 먼발치에서 자명하던 것이, 그 사람에게 다가갈수록 혼탁해진다. 무엇 하나 쉽게 결론지을 수 없다. 스즈코의 전과가 그렇다. 독립을 고민하던 중 함께 자취하자는 아르바이트 동료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스즈코. 그러나 알고 보니 둘이 아닌, 동료의 남자친구까지 셋이서 동거를 하는 조건으로 집을 계약한 것이다. 심지어 동료는 입주 직전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잠적해 버린다. 꼼짝없이 낯선 남자와 동거를 하게 된 스즈코는 두려움을 억누르고 짐짓 잘살아 보려 애쓴다. 남자의 눈치를 보고, 놀라고, 숨죽인다. 그리고 장대비가 내린 어느 날, 남자는 스즈코가 데려온 새끼 고양이를 야멸차게 버린다. 고양이는 죽었고, 분노한 스즈코는 남자의 짐을 전부 버렸다. 그렇게 그녀는 전과자가 되었다.


하지만 구구절절한 사연 따위는 중요치 않다. 사토 스즈코는 전과자다. 전과자는 일반인들 사이에 섞일 수 없으며, 일반인 '척'은 금세 들통날 것이기에 서둘러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스즈코가 백만엔을 모으는 이유다. 설령 환대해 주는 이웃이 있더라도 결국 떠나야만 하는 스즈코의 흔들리는 동공 속에는 사람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 그녀를 조이는 순진하고 음침한 일상의 폭력들이 쌓여있다. 이 로드무비가 잔잔하고 청명한 여름빛의 미장센과 모리걸 아오이 유우의 맑은 연기를 담고 있어도 마냥 낭만적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는 스즈코의 도피는 사실 사회에서 자리를 잃은 소녀 전과자의 방황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종반부, 서로에게 용기를 얻고 학교폭력을 버텨내겠다는 타쿠야와 정말로 머물 수 있는 보금자리를 찾겠다는 스즈코의 의지는 어쩐지 뭉클한 응원만큼이나 뿌연 걱정이 앞선다. 그들이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은 삶이 윤택해지길 바라는 것보다 안전하게 생존하길 바라는 것에 가깝다.  자꾸만 밀려나는 이들이 각성하는 주체성은 많이 다치고 지칠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버티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 두 갈래 선택지밖에 없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럴 테다.  그들이 버티기 전에, 도망치기 전에 지켜줄 수는 없는 걸까. 스즈코와 타쿠야에게는 울타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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