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61)
시골에 살면 좋은 점 가운데 하나가 문을 마음대로 열어놓고 나다닐 수 있다는 일일 게다. 그런데 가끔 시골집을 방문하다 보면 단단한 쇠로 만든 대문이 굳게 잠겨 있거나, 유리창 쪽에 쇠창살을 붙여놓아 마치 교도소 분위기를 만난다. 까닭은 도둑 예방 때문이다. '시골에 뭔 도둑이?' 하실 분이 있을까 봐 미리 밝히는데 도둑은 어디에나 있다. 다만 큰도둑 아닌 좀도둑이 있을 뿐.
오래전에 어머니가 중병을 앓고 계셔 문무대왕면(예전엔 ‘양북면’)에 집을 하나 샀다. 거기에 계속 살진 않더라도 한 번씩 나들다 보면 아파트에 있을 때보다는 조금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희망으로.
최근의 일은 잘 기억 못하는데 오래 전의 일을 잘 기억해서 옛날 어머니가 지리산 밑에 살 때와 비슷한 촌집을 샀다. 거기서는 문을 잠근 적이 없었다. 그래도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호미 한 자루는 물론 숟가락 하나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 달내마을에 와 그곳처럼 아무런 시건장치를 하지 않고 비워둔 재 다녔다. 그러자... 하루는 조심스럽게 마을 어르신 한 분이 말씀하셨다. 최소한의 문단속은 해야 한다고. 만약 도둑맞게 되면 마을 사람 누군가를 의심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그 말에 갑자기 나보다 먼저 OO면 쪽으로 전원주택을 지어 간 아는 이에게서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시골에 돈을 꽤 들여 멋진 전원주택을 지어 들어간 그날, 인사 겸 마을 어른들을 초청하여 거하게 집들이를 했던가 보다. 마을 어른들이 다 돌아가고 난 뒤 문을 닫으려 할 때 가장 나이 많은 어르신이 다시 찾아왔더란다. 웬일인가 하여 봤더니...
그때 어르신 말씀이 문단속 잘하라는 말. 마을 사람들이 이미 이 집 안을 속속히 들여다봤으니 누군가 마음먹으면 훔쳐가기 좋다는 말. 그리고 이어지는 말, 재작년부터 이 마을에 좀도둑이 생겨 도둑맞는 집이 한둘 생겨났으니 주의하라는 말씀.
그는 어르신의 말에 밤늦게 자물쇠를 사러 가면서도 이 작은 마을에 도둑이 있다는 말이 곧이곧대로 믿기지 않았단다. 좁은 마을 아닌가. 뻔한 마을에 훔쳐 가면 금방 들통 날 터인데 어떻게 그런 짓 한단 말인가. 또 훔쳐가야 돈 될 게 없을 텐데 하며.
(이런 식으로 쇠창살을 닮)
그러나 마을 어르신의 말을 무시할 수 없어 문마다 자물쇠를 달고 현관에는 안전자물쇠를 달았던가 보다. 사건은 며칠 뒤 일어났단다. 도시에 나들이했다가 돌아왔더니 찝찔한 기분. 뭔가 달라진 방안 모습에 화들짝 놀라 안방으로 달려갔고.
다행히 구석진 곳에 숨겨둔 귀중품류는 그대로 있었으나 다음날 포클레인 공사대금으로 넣어둔 현금은 사라진 상태. 집을 둘러보다가 다용도실 뒤쪽 창을 보니 문이 열려 있었단다. 날씨가 더워 바람 통하도록 해놓고 나가면서 닫지 않았다나. 호되게 경친 다음날 바로 철물점 사장을 불러 창문마다 쇠창살을 달았단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전에는 물건이 없어지면 어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놔뒀기에 안 보이겠지 했는데, 한번 도둑맞고는 잊어먹은 게 아니라 혹시 누가 훔쳐가지 않았나 하고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나.
집이 완성되기 전 먼저 살던 집에서 가져온 전지가위, 화덕, 곡괭이, 삽 등을 마당 한가운데 천막을 덮은 뒤 놔두었는데, 그중 몇 개가 없어졌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단다. 누가 가져가지 않았나 하고.
그 뒤 곡괭이와 삽은 집 짓는 사람들이 자기 연장인 줄 알고 갖고 갔다가 돌려주었으나 전지가위와 화덕은 두 달이 됐는데도 눈에 띄지 않았단다. '도둑맞은 것일까' 하고 생각했더니 그까짓 것 사려면 좋은 제품이라 해도 오 만원이면 충분하고, 훔쳐다 되팔게 되면 만원도 못 받을 텐데…
그의 말이 이어졌다.
가만 따져보니 도둑맞은 집들이 모두 자기처럼 외지(外地)에서 들어온 사람들의 집이라 했다. 자기네처럼 새로 집을 짓거나, 옛집을 확 뜯어고치고 들어온 이들의 집들은 모두 영락없이 당했다니.
그래서 가장 나이 많은 어르신에게 여쭤보았더니 짐작이 옳았단다. 2년 전만 해도 마을에서 도둑맞았다는 얘기가 나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말씀. 그러니 최초로 이사 온 옆집 아주머니 댁을 비롯하여 그 뒤 일어난 절도 사건은 마을에 새 집이 들어서면서부터 일어난 일이라나.
그가 이런 말로 끝맺었다.
“도둑도 나쁘지만 도둑질하도록 만든 사람이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훔쳐갈 게 없으면 훔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훔쳐갈 물건을 두었으니 훔치고 싶은 마음이 일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도 죄인이다. 시골에 집을 짓고 살려면 시골 분위기에 어울리게 그냥 수수하게 짓지 눈에 튀도록 지었으니까. 뭔가 훔쳐갈 게 있을 것처럼 지었다는 점이 걸린다. 앞으로 아는 이의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 마을에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결국은 자물쇠를 잠그도록 만든 사람은 도둑이 아니라, 바로 전원생활하겠다고 들어오면서 부티를 팍팍 내게 집 지은 사람들 아닌가. 도둑 없던 마을에 도둑 만들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누군가? 물건이 없어지면 찾기보다 의심부터 하도록 만든 이가 누군가?
이웃집 숟가락 젓가락 개수까지 다 알고 지내던 마음들을 황폐하게 만든 이들이 바로 나요, 우리들이다. 시골에 집을 지으면서 돈 있는 티를 뽐내며 도시에서 들어온 이들이 바로 나요, 우리들이다. 잠근 문을 돌아보고 다시 또 돌아와 자물쇠를 확인하도록 만든 이들이 바로 나요, 우리들이다.
‘자물쇠’는 글자 그대로 ‘잠근다’는 말이다. 그 말은 단순히 기계장치를 잠그는 말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잠근다’는 말도 된다. 자물쇠로 잠근 건 열쇠가 없으면 망치, 톱, 펜치, 노루발못뽑이 등으로 열 수 있지만 마음을 잠그면 열 수 있는 도구는 마음밖에 없다.
자물쇠로 잠근 상태가 오래 가면 녹이 슬듯이 우리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슨다. 녹슨 마음으로는 다시 열 수 없다. 애꿎은 마을 사람들을 의심하는 병은 더욱 깊어질 뿐…
오늘 아내와 집을 나오면서 창문을 있는 대로 다 닫고, 자물쇠를 채워야 할 곳은 다 채우고서도 한 번 더 돌아보고 온 일이 못내 서글프다. 아는 이의 마을에, 내가 사는 달내마을에, 아니 모든 시골 마을에 다시 문을, 아니 마음을 잠그지 않고 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