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73)
마을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주택이 끝나는 지점에 다리가 있다. 그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 밭이 몇 다랑 있는데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게 영산댁 할머니네 밭이다.
최근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우리 부부는 감탄을 한다. 밭까지 이르는 약 이십여 미터의 길이 무성한 풀밭이었는데, 며칠 전 할머니가 낫으로 깨끗하게 베어 길이 훤해진 것이다.
얼마나 예쁘게 깎아놓았는지 처음 보았을 때, 아내가 “낫질 솜씨가 완전히 예술이네.” 하였다. 정말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는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곱게 깎여 있었다.
요즘 달내마을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소리는 매미 울음소리도, 경운기 소리도 아닌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다. 다들 논둑이나 밭둑에 무시로 나는 풀들을 베느라 가만히 앉아 쉴 틈이 없다.
대여섯 분쯤 되는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 가면서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하며 기계음을 들려준다. 어르신들은 낫을 사용하지 않고 다들 예초기로 벤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요즘은 낫을 사용 않고 예초기로 다 베나 보지요?” 하니,
“낫으로 이 많은 걸 언제 다 베려고…” 하신다.
그러니까 편리함과 능률면에서 낫보다 예초기를 선택한 것이다. 아마 어르신들 가운데 영산댁 할머니보다 더 낫질을 잘하는 분이 계실지 모른다. 그래서 만약 낫을 사용한다면 더욱 예쁘게 베어 낼 수 있을지도….
영산댁 할머니는 혼자 사신다. 예초기를 사용할 줄 모르니 누가 베어주지 않으면 낫으로 벨 수밖에 없다. 할머니의 심정을 읽는다면 예초기 사용하는 다른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남편 안 계신 게 서러울 수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낫으로 베어낸 모양은 예초기로 베어낸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낫으로 베어낸 모습이 하도 고와 가까이 가 예초기로 벤 것과 비교해보았다. 언뜻 보면 같아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차이가 드러난다.
예초기로 깎아야 할 땅이 아주 고르다면 낫과 차이가 크지 않다. 헌데 평평한 땅이 그리 많은가. 특히 논둑이나 밭둑은 나고 듦이 많다. 그런 곳에 예초기는 수평으로 깎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겉으로 보기엔 제대로 깎인 것 같은데 나온 곳은 아주 많이 깎이고, 들어간 곳은 웃머리만 조금 깎일 뿐이라 멀리서 보면 깎인 부위의 빛깔이 다르다.
그와는 달리 낫으로 베면 굴곡에 상관없이 깎을 수 있다. 들어간 데는 들어간 데로 나온 데는 나온 데로 깎으면 되니까. 멀리서 보더라도 깎인 부위의 빛깔이 같다. 그러니 영산댁 할머니가 낫으로 깎은 밭둑 가는 길이 유난히 눈에 띌 수밖에.
요즈음 머리 자를 때면 미용실을 찾아간다. 헌데 예전 울산 살 때는 단골 이발소를 이용했다. 그곳 단골 이발소 사장은 기계 – 소위 바리캉 -를 거의 사용 안 하고 가위로만 손질했다. 그럴 때 손놀림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재빨랐다. 더 이상 길거나 짧은 머리카락이 없는 것 같은데도 손놀림을 쉬지 않았다.
그 이발사가 시내로 옮기고 난 뒤 다른 이발사가 왔는데, 이 이발사는 가위보다 기계를 더 많이 사용했다. 언뜻 보기에 전과 다름없는 것 같았는데 깎고 나면 확실히 달랐다. 뭔가 개운한 맛이 전보다 뒤떨어진 느낌이었다. 다른 곳을 찾을까 말까 망설일 즈음 달내마을로 옮겨오는 바람에 이곳 미용실로 가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 지게도 져 봤고, 삽질도 웬만큼 하고, 톱질도 제법 하는데 낫질만은 아주 서툴다. 그런데 우리 집 앞ㆍ뒤ㆍ옆 모두 언덕이다. 게다가 경사가 심하여 예초기 사용이 어렵다. 그러면 낫을 사용해야 한다.
몇 번 해보았는데도 잘 안 된다. 앞으로 이런 이유 말고도 낫질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데... 웬만한 두께의 나무는 톱보다 도끼보다 낫으로 꺾는 게 훨씬 수월타.
또 대나무를 다듬거나, 나뭇가지를 치거나, 뭘 만들 때 낫으로 마무리해야 때깔이 난다. 예전에는 연이나 팽이나 아이들 공작품은 다 낫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별다른 도구 없이도 낫 하나면 다 되었다.
우리 문중에서는 양력 8월 마지막 일요일에 벌초를 한다. 올해도 그날이면 지리산 밑 하동군 옥종면 마음골(心谷)에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할 것이다. 그런데 3년 전까지 다른 부분, 즉 묘소 주위는 예초기로 깎아도 묏등은 반드시 낫으로 해야 했다.
문중의 가장 큰 어른이신 당숙께서 기계로 선조들의 머리카락을 어찌 깎느냐고 하도 성화라서 묏등만은 예초기 사용을 금해야 했다. 그 당숙이 돌아가시고 난 뒤 낫 대신 기계(예초기)가 머리카락을 깎고 있다.
작년에 내가 넌지시 ‘돌아가신 어른들의 머리카락만은 낫으로 베자.’라는 말을 비췄다가 형님들로부터 ‘그럼 네 혼자 다 깎아라.’란 소릴 듣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달내마을에서도 어르신들이 낫을 사용할 때가 있다. 한가윗날 제상에 올리는 멧밥만은 낫으로 베어낸 벼로 짓는다. 쌀 ‘미(米)’ 자를 파자(破字)하면 ‘八十八’이 되듯 여든여덟 번의 수고 뒤 첫 수확은 바인더나 콤바인 같은 기계 대신 낫으로 벤다.
또 묏등에 벌초할 때도 마찬가지다. 결국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일에는 낫을 사용한다. 물론 정성과 상관없이 고구마 캘 때 줄기부터 자른 뒤 캐야 하는데, 그때도 낫을 사용한다.
농촌 생활을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니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간을 내 낫질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순전히 영산댁 할머니의 예술작품 때문이었다.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