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79)
산골에 살다 보면 자급자족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먹거리야 텃밭에서 걷어오면 되지만 자연산 열매(다래, 으름, 도토리, 머루...)를 줍거나 딸 땐 산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겨울이면 필요한 땔감을 구하려 들어가기도 합니다.
꼭 땔감이 아니더라도 도끼, 호미, 낫 등 농기구 자루에 쓸 나무를 구하러 들어갈 때가 종종입니다. 농기구 자루로 알맞은 물푸레나무는 아무 곳에나 다 나지 않고 예전 백토광산이 있던 지역에 나는지라 그곳은 산골마을에서도 제법 깊숙이 들어가는 장소입니다.
그저께 자루 나무가 조금 더 필요해서 다시 나섰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나무를 구해 들고 비포장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저 앞에 차가 한 대 보였습니다. 한 시간 전 올라갈 때 볼 수 없던 차입니다.
그곳은 예전에 밭으로 경작하던 곳이라 유일하게 평탄한 곳입니다. 봄과 가을엔 외지인들의 차 대는 일이 잦는 곳이기도 합니다. 봄에는 나물이나 약초를 캐러 오고 가을에는 열매를 따러 온 사람들이 주차하기 유일한 곳이니까요.
하지만 여름에는, 특히 아직 무더위가 가시기 전인 요즘에는 올 리 없지만 그래도 벌초를 대비해 묘소를 돌보러 온 사람이 놔둔 차로 여겨 지나치려 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이르자 갑자기 차 앞유리의 윈드 브러시가 움직이면서 비눗물이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건 분명히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제 관심을 끌 리 없어 무심코 지나쳤을 텐데... 그러니 궁금해 그쪽을 쳐다보자 브러시가 잠시 멈춘 사이로 뭔가 어렴풋이 사람 둘이 보이는 것 같아 자세히 보려 하자 브러시가 돌아가며 비눗물이 다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것 봐라!’ 하는 생각에 천천히 걸었습니다. 원래 나무가 그리 안 무겁건만 편하게 땅에 질질 끌고 오던 터라 천천히 걸어도 이상 없는 걸음이었습니다. 가까이 갈수록 브러시액이 쏟아져 나오고, 저는 더욱 천천히 걸었고...
자세히 볼 수는 없었으나 분명 운전석과 조수석에 각각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수석 사람은 남자의 코트로 보이는 옷으로 온몸을 덮어 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그냥 짐작으로 알아차렸습니다. 아마 둘은 신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겠지요.
그러다 불청객이 나타났는데, 쉬 알아차릴 수 없는 상황임에도 나무 끌리는 요란한 소리에 화들짝 놀랐을 테고. 아무리 빠졌더라도 그 소리를 못 들을 리 없잖아요. 저는 졸지에 나쁜 '사랑 방해꾼'이 되었습니다.
오래 전 직장 다니는 출퇴근길, 울산 주전 바닷가에서 양남 바닷가에 이르는 길에 모텔이 하도 많아 혼자 궁금했습니다. 그래도 모텔은 잠자는 곳이니까 경치 좋은 곳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숙박하는 곳이라 달리 생각하지는 않았고...
그러다가 우연히 모텔 운영하는 주인과 술을 마실 기회를 가진 김에 제가 물었지요.
“모텔 수가 쉰 곳이나 돼 보이던데 밥을 먹을 만큼 운영은 됩니까?”
토요일(금요일은 몇 안 된다고 여겨)에 들르는 여행객이 도대체 얼마나 되기에 그 많은 모텔에 손님이 찰까 운영을 염려하여 한 질문입니다.
“쉰 개가 아니고 정확하게는 호텔 이름 붙은 것까지 포함하면 37개입니다. 그런데 휴일 여행객만으로는 장사 못해요. 몇 명 든다고...”
그냥 대충 얼버무렸으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넘겼을 텐데 그 대답에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아니 여행객 말고 누가 달리 찾는 손님 옵니까?”
그때부터 나눈 얘기는 요약하여 정리합니다.
모텔은 아무리 경치 좋은 곳에 있더라도 여행객만으로는 유지되지 않고 평일 손님, 그것도 2시간 임대 손님으로 유지한다고. 두 시간 임대 손님, 바로 그들이 모텔 주인 굶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수입 늘어나게 한 주범이었습니다. 당시 단지 두 시간 머무는 사용료(숙박료가 아닌)가 3만 원이라고 했는데, 하룻밤 온통 빌리는 액수의 2/3가 되었습니다.
오는 손님들이 누군지는 밝히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평일 낮에 들르는 손님은 일단 부부가 아님은 100% 확실합니다. 그러면 짐작 가겠지요. 이미 눈치 빠른 분들은 제목에서 대충 알아차렸겠지만. 그렇습니다, 그들입니다.
모텔 주인과의 얘기가 끝날 즈음 그가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그래도 요즘 대학생 커플이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라 봐요."
고무적이라? ‘고무적’이라는 낱말이 이런데 쓰일 줄이야 세종대왕 님도 아셨을까요?
다시 제가 그저께 본 승용차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참 억울할 겁니다. 이미 여러 번 이용한 걸로 짐작됩니다만. 그곳은 마을에 적어도 5년 이상 사는 사람도 잘 모르는 곳이라 안심하고 신나는 시간을 가졌겠지요. 그러다 불청객 때문에 망쳐 억울할 게고.
여기서 세 낱말을 한 번 더 새겨봅니다. ‘고무적’, ‘신나게’, ‘억울하다’ 정말로 좋아하는 사이라서 ‘신나게’ 사랑했건만, 그 일을 ‘고무적’으로 보지 않고 ‘억울하게’ 매도했다면 그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사진은 글 내용과 관련 없으며, 오래 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