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8편 : 이성선 시인의 '그냥 둔다'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이성선 시인 편 ♡
- 그냥 둔다 -
마당의 잡초도
그냥 둔다.
잡초 위에 누운 벌레도
그냥 둔다.
벌레 위에 겹으로 누운
산 능선도 그냥 둔다.
거기 잠시 머물러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내 눈길도 그냥 둔다.
- [절정의 노래](1991년)
<함께 나누기>
이 시인에 대한 평입니다. ‘절에 가면 고요하게 자리한 탑과 같은 사람, 산에 들면 새와 나무와 한 몸이 되는 사람, 하늘로 오르면 구름과 벗이 되는 사람’ 거기에 저는 하나 더 붙입니다. ‘잃어버린 순수성을 불러일으키는 시를 쓴 사람’
오늘 시는 따로 해석이 필요 없습니다. 읽기만 해도 절로 우리 가슴에 녹아들 겁니다. 해설 대신 잡담을 많이 넣은 까닭입니다.
아주 오래전 [몽실언니]와 [강아지똥]으로 유명한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의 댁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집에 들어섰지만 방 한 칸엔 글 쓰고 식사하는 밥상이 놓였고, 다른 방엔 쌀자루 같은 식품류와 잡동사니가, 나머지는 부엌. 말 그대로 초가삼간.
우린 방에 들어갈 수 없어 마당에 우두커니 섰습니다. 선생님은 별말씀 없으시고 그냥 텃밭이나 둘러보라고 하셨습니다. 텃밭이라뇨? 풀만 잔뜩 자라고 있는 마당뿐인데. 그래도 저는 시골에 사는지라 그 속에서 고추도 상추도 깻잎도 가지도 오이도 몇 개 보았습니다만 다른 분들은 풀뿐이라 고개만 갸우뚱.
제가 궁금해서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잡초를 뽑아내면 채소들이 잘 자랄 텐데 왜 그냥 두셨습니까?" 하자 선생님께서 되려 반문하시더군요. "거기 잡초가 어디 있어요?" 순간 머릿속에 전기가 흐르는 듯 아찔했습니다. 그분껜 남새(채소)든 푸새(잡초, 풀)든 매한가지였습니다.
그 뒤 안 사실이지만 선생님은 풀이 나면 나는 대로 '그냥 두고', 그나마 빈자리 골라 상추 고추 가지 오이를 심었던 겁니다.
권정생 님처럼 이성선 시인도 같은 경지에 오른 분이라 아래 같은 시행이 나왔을 겁니다.
"마당의 잡초도 / 그냥 둔다"
"잡초 위에 누운 벌레도 / 그냥 둔다"
가끔 우리 집 방문하는 이들로부터 '텃밭의 벌레들이 호강한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일단 약 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약 대신 벌레를 무수히 잡아 죽입니다. 배춧잎을 갉아먹는 놈부터 고구마 감자를 작살내는 굼벵이에 이르기까지 참 많이 죽입니다, 이 시구 대하니 그저 부끄러울 뿐.
"벌레 위에 겹으로 누운 / 산 능선도 그냥 둔다"
쓸모보다 피해만 주는 잡초와 아주 하찮은 벌레를 보다 화자의 눈길이 산 능선으로 옮겨갑니다. 여기서 '그냥 둔다'의 의미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바라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잡초를 뽑지 않고, 벌레를 쫓지 않고, 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태도는 그들을 무시함이 아니라 더욱 가까이하고자 함으로. 그저 밀어내고자 차별하고자 벽을 쌓는 그런 짓 말고 잡초든 벌레든 산이든 자연스럽게 머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일 말입니다.
"거기 잠시 머물러 /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 내 눈길도 그냥 둔다"
나도 그냥 둠으로써 이제 화자는 나를 잊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들어섭니다. 무엇이든 '그냥 둠’으로써 너도 잊고 나도 잊고 자연도 잊는 그야말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상태가 됩니다.
오늘 시는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야 제 맛이 납니다. 특히 ‘그냥 둔다’를 한 음절 한 음절 반복해 읽으면 몸속에 낀 세속의 때가 서서히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따지지 말고, 셈하지 말고, 곁눈질 말고 잠시 멍하니 자신을 둬 보는 시간 가짐이 어떨까요.
#. 이성선 시인(1941년~2001년) : 강원도 고성 출신으로 1972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설악산 인근에 살며 설악산을 글감으로 한 시를 많이 써 ‘설악산 시인’으로 알려졌는데, 예순 나이에 하늘로 가심.
*. 첫째는 설악산, 둘째는 백담사 계곡의 돌탑입니다. 그냥 둬야 더 아름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