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 혹은 꽃무릇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86)

* 상사화 혹은 꽃무릇 *



지난 7월 중순쯤 우리 집을 방문한 이가 마당에 핀 연분홍빛 꽃을 보고 물었다.
“어머, 무슨 꽃에 잎사귀 하나 없다니….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상사화예요, 상사화.”
이젠 이 꽃이 공공시설에 더러 피어 있기에 그리 말하면 금방 고개를 끄덕인다. 다만 이런 질문을 덧댈 경우가 있지만.
“상사화라면 혹 상사병 할 때의 그 상사(相思)?”


(상사화)



며칠 전 우리 집을 방문한 이가 아랫집 뜰에 핀 붉은 꽃을 보고 말했다.

“아 저 꽃,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이름이 뭐더라 ...”
“한 번 알아맞혀 보세요.”
곁에 섰던 이가 받아,
“맞아 맞아, 우리 집 앞 공원에도 피어 있던데...”
“힌트를 드릴게요. 상사화하고 잎사귀 없이 꽃이 피는 점은 같으나 이름도 다르고 생태도 달라요.”
“맞다 맞다, 꽃무릇!”
곁에 섰던 이의 말에 먼저 말한 이가 재차 묻는다.
“상사화랑 어떻게 달라요?”


(꽃무릇)



세세한 내용은 뒤로 미루고 결론부터 말하자. 상사화와 꽃무릇은 둘 다 ‘수선화과’에 속하지만 다른 꽃이다. 알기 쉽게 얘기하자면 들국화와 코스모스는 같은 국화과에 속하지만 같은 꽃이라고 하지 않듯이 말이다.
둘은 이름 말고도 꽃이 피는 시기가 2개월쯤 차이가 난다. 원산지도 다르다. 상사화는 우리나라고, 꽃무릇은 일본이다. 꽃말도 다르다. 상사화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인데, 꽃무릇은 "슬픈 사랑"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둘이 같은 점이 전혀 없느냐 하면 아니다. 둘 다 잎이 나오나 꽃 피기 전에 말라죽는다는 점. 그래서 꽃과 잎이 서로 볼 수 없는 특성은 같다. 그런 점을 알고 보면 잎도 없는 꽃대 위에 덩그러니 꽃만 피운 그 모습이 좀 안쓰럽다.

특히 상사화는 애절하기까지 하다. 사람들 대부분 빛깔이 화려한 꽃무릇을 좋아하는지 꽃무릇을 잔뜩 심어놓고 축제를 벌인다. (영광 불갑산 꽃무릇 축제 등)


(상사화)



헌데 나는 꽃무릇보다 상사화를 좋아한다. 저번 글에서 봉선화와 물봉선화 비교하면서 그 특징을 한 마디로 '촌티'라고 했는데, 상사화도 꽃무릇에 비하면 촌티가 난다. 촌놈이라서 그런지 그 촌티가 더 땡긴다. 그래서 남들은 꽃무릇을 붙잡고 글을 쓰는데, 나는 상사화에 매달린다.
쑥, 나생이(냉이), 달롱개(달래) 등의 나물이 봄의 전령사로 알려졌지만, 옛 선비들은 추위가 채 가시기 전에 푸른 잎을 드러내는 상사초야말로 봄이 온 것을 가장 먼저 알려준다고 생각했다. 황량한 밭 언저리에 홀로 넓은 잎사귀를 드리우며 솟아오르는 군자란(君子蘭) 닮은 그 고고한 자태에 선비들의 관심이 쏠렸으리라.

좀은 도도하게, 좀은 오롯이 솟아난 상사초는 한 두어 달쯤 잎사귀를 달고 있다가 오월 중순경이 되면 갑자기 사라진다. 하도 순식간에 없어지기에 15년 전 처음 옮겨 심은 그 해에는 아내가 그것을 잡초인 줄 알고 뽑아버렸냐고 생각했다.


(상사화 잎사귀)



다시 그렇게 두어 달쯤 자취도 없이 있다가 여름이 되면 사라진 그 자리에 이번엔 잎 없이 배흘림 모양의 꽃대가 올라오고 곧이어 꽃망울이 커다랗게 벙근다.
원래는 연분홍 빛깔이나 요즘은 개량되어 오렌지 빛깔이 더 많다. 그런 모습으로 한 보름쯤 잎사귀 하나, 잔가지 하나 없이 꽃만 '배흘림꽃대'에 처연한 자태로 서 있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이제 왜 이 꽃을 상사화로 부르는지 눈치챘으리라. 반드시 잎이 지고 난 뒤에야 꽃이 핀다는 것, 그리고 꽃이 필 때는 잎은 없고 달랑 꽃대 하나만 있다는 것. 그러므로 잎과 꽃은 서로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

잎은 꽃을 그리워하지만 꽃이 피기 전에 사라져야 하고, 꽃도 잎을 보고자 하나 볼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둘은 무한정 애틋하게 그리워만 하다가 서로 보지 못하고 끝나버리기에 상사화로 불린다.


우리 사는 세상에도 이런 관계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한 가족으로 살다가 전쟁의 비극으로 헤어진 이산가족들,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져 이미 남의 아내와 지아비가 돼 버려 이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옛 연인들, 속세와의 연을 끊고 절에 들어와 도 닦기에 애쓰는 스님들, (그래서 거의 모든 절엔 상사화가 자라던가.)


(상사화 구근)



이들은 대부분 만남을 지우고 영원히 이별한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잠시, 눈에 보이지 않고 숨어 있는 상사화 뿌리를 생각해 본다. 이제 우리 밭에 상사화의 흔적은 없다. 꽃이 지면서 모든 게 사라졌다. 말라비틀어진 꽃대만 저만치 떨어져 있을 뿐.
그런데 그 텅 빈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상사화는 잎을 드리울 때에도, 꽃을 피울 때에도, 둘 다 없을 때도 뿌리는 늘 그 자리에 오연히 버티고 있었다. 즉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을 때도 땅속에서 뿌리를 통해 서로 만나고 있으며, 가을과 겨울을 지나는 동안 둘은 뿌리를 통하여 더욱 진득한 만남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드러나는 것만을 결실로 여기는 데서 우리의 허무는 더해진다는 것을. 진실로 알찬 열매는 시나브로 우리 몸속에 배어든다는 것을. 우리들의 마음속에 만남에의 열망이 식지 않는 한 꼭 이뤄진다는 것을.
상사화 말라비틀어진 꽃대에 눈을 준다. 순간 군자란 닮은 잎사귀에 베흘림꽃대가 겹쳐지면서 연분홍 상사화가 벙긋 웃는다.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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