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7편 : 최정란 시인의 '반환점'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최정란 시인 편 ♡
- 반환점 -
어떤 바다거북은
삼십오 년 동안 헤엄쳐 가서 다시
삼십오 년 동안 헤엄쳐 돌아와 생을 끝낸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단 한 번의 왕복
그것이 일생일 수 있다면
가던 방향을 미련 없이 버리고 돌아서야 하는
반환점은
대양의 물결 속 어디쯤일까
두께가 나날이 얇아져가는 지느러미를
추스를 겨를도 없이
어디가 반환점인지, 금지된 수역인지
물빛을 살피지 못하고 파도에 떠밀려 허우적거리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여기가 어디일까,
붉은 해일에 숨이 막힌다
한 번 큰 물결을 타면 멀리,
아주 멀리 가고 싶어질까 봐 아주,
돌아오고 싶지 않을까 봐
앞을 막아서는 노을을 물리치며
허겁지겁 서둘러 아침에 떠났던 집으로
백 번도 넘게 돌아오는 저녁
- [여우장갑](2007년)
<함께 나누기>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먼저 이리 말했습니다.
시로 "나는 산에 오르는 사람 참 이해 못하겠더라. 올라가면 내려올 터인데 뭣땜새 올라가는지..." 하니까, 등산 좋아하는 이가 이리 받아쳤습니다.
"나는 어차피 죽을 인생인데, 죽지 않으려 아동바동 살려고 하는 사람들 참 이해 못하겠더라."
삶에 반환점('극적인 반환점' 할 때의 그 반환점 말고)이 있다면 현재 나는 어느 위치에 있을까요? 이럴 때는 대부분 자기 나이를 따져 판단하겠죠. 그럼 저는 반환점을 지나 끝나는 저점에 다 와 간다고 하렵니다. 저랑 나이 비슷해도 아직 반환점에 채 이르지 않았다고 하실 분도 계실 터.
시로 들어갑니다.
"어떤 바다거북은 / 삼십오 년 동안 헤엄쳐 가서 다시 / 삼십오 년 동안 헤엄쳐 돌아와 생을 끝낸다"
바다거북의 삶을 수치로만 따지면 참 미련한 삶입니다. 그 먼 거리를 갔다 오지 말고 가까운 바다에 붙박여 즐겁게 놀다가 생을 마감해도 되련만. 허지만 그게 바다거북의 생태이기 때문입니다. 바다거북은 물 밖에서는 몸통으로 체중을 버텨야 하며, 완전히 자라면 자기 체중에 몸 속 장기가 눌려 상할 정도로 커지니 견디려면 부력이 좋은 바다를 택할 수밖에요.
그래도 의문은 남습니다. 먼 바다 말고 가까운 바다도 되잖아 하고. 거기에 대해선 '지구 자기장 각인 이론'이 있답니다. 새끼 거북은 알에서 깨어나 바다로 이동할 때, 가야 할 곳과 태어난 해변의 고유한 지구 자기장 신호를 기억한 채 태어난다고.
"떠났다가 돌아오는 단 한 번의 왕복 / 그것이 일생일 수 있다면"
가다가 적당히 갔다 싶으면 가던 방향을 미련 없이 버리고 돌아서는 바다거북의 생태에 대한 인간적인 의문이 계속 듭니다. 바다거북이 되돌아서는 반환점은 대양의 물결 속 어디쯤일까? 인간 마라톤에선 반환점이 명확히 표시돼 있는 것처럼 바닷속에도 그리 돼 있을까?
"물빛을 살피지 못하고 파도에 떠밀려 허우적거리다 / 문득 정신을 차리면 / 여기가 어디일까, / 붉은 해일에 숨이 막힌다"
바다거북이 이러진 않겠지요.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장면입니다. 그렇지요, 우린 살다가 종종 숨이 턱턱 막힐 위기에 맞닥뜨리지요. 제대로 길을 잡았는가 싶은데도 뒤돌아보면 엉뚱한 길로 가고 있고, 옳은 일 한다고 했건만 결과는 좋지 않고.
"허겁지겁 서둘러 아침에 떠났던 집으로 / 백 번도 넘게 돌아오는 저녁"
마지막 행에 오면 시인이 장황하게 바다거북의 생태를 왜 늘어놓았는지 드러납니다. 바로 바다거북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라고. 우리도 바다거북과 똑같지는 않아도 귀소본능을 지닌 것처럼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이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자 오늘도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를 열며 바다거북처럼 열심히 헤엄쳐 갔다가 반환점을 되돌아옵시다.
#. 최정란 시인(1961년생) : 경북 상주 출신으로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현재 부산에 살면서 열심히 시를 쓰고 있는데 발랄하고 신선한 언어 감각에, 때로 비 같은 비애의 마디를 꺾어 시의 화병에 꽂는 시인이란 평을 들음.
(참고로 충북 영동 출신인 최정란 시조시인은 동명이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