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바다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90)

* 산과 바다 *


한 사내가 복잡한 도시를 떠나 시골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열심히 했습니다. ‘귀농 사이트’를 훑으며 농촌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챙기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귀농인들의 시골 정착 이야기랑, 특히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자신의 의지를 다졌습니다.
마침내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가족에게 얘기했습니다. 초등학생이던 아들은 찬성, 딸은 상관없다고 했으나 아내는 결사반대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지방신문 칼럼 써서 얻은 수입으론 고작 용돈밖에 안 되고, 그나마 문화센터 두 곳과 대학교 사회교육원 글쓰기 강좌 수입이 가장 큰데, 산골에 가면 그마저 뚝 끊기니 어떻게 살자는 말이냐며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허나 시간을 두고 꾸준히 아내를 설득한 그는 집 지을 터를 알아보려 다녔는데, 처음에는 바다 가까이 살고 싶었으나 거긴 워낙 땅값이 비싸 산등성이 너머 산골에 터를 잡았습니다. 처음 두어 해는 너무 좋았습니다. 앞ㆍ뒤ㆍ옆 모두 산으로 둘러싸인 정말 환상적인 곳이었으니까요.
도시에서야 봄이면 잘해야 새싹 움트는 모습만 보였는데, 여기선 그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고... 여름은 또 어떻습니까? 온 산과 들에 펼쳐진 갈맷빛 물결에다, 비 개인 뒤 안개가 스멀스멀 계곡을 타고 올라올 때면 마치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가을은 더 황홀했지요. 울긋불긋 든 단풍이 1막이라면 꿀보다 더 달콤한 빠알간 홍시, 새콤함의 대명사 산머루, 게다가 다래의 감칠맛으로 2, 3, 4, 5막이 이어졌으니까요. 겨울 또한 눈이 쌓이면 온통 하양 세상이 되고, 고라니 발자국이, 꿩 발자국이, 바람에 휩쓸려 자연스레 그려진 눈 자취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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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칼럼에서 나오는 원고료는 예상대로 용돈밖에 안 되었고, 아내가 가까운 공장 식당에 나가 설거지를 도와주며 번 돈을 합쳐 봐야 고작 100만 원도 안 되는 소득이었지만 더없이 풍족했습니다. 칼럼도 인기를 얻어 담당기자로부터 거기 사시는 동안 연재를 끊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약속까지 얻었으니 신이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바닷가보다 산속을 택한 게 신의 한 수였다고, 돈이 모자라 산 땅이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사 년째 되던 해 어느 봄날입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틀어 왼쪽을 보았습니다. 오른쪽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온통 산입니다.

산, 산, 산...입니다. 그렇습니다. 앞뒤 좌우를 보아도 모두 산입니다. 산만 눈에 가득 들어옵니다. 그때 그는 문득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만약 앞에 보이는 산을 지울 수만 있다면, 산을 옮길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바다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차를 타고 십 분만 나가면 바로 바다입니다. 그러나 사내는 그런 바다가 아니라 창문을 열면 눈에 가득 담기는 넘실대는 파도와 통통배가 오가며 갈매기가 춤추는 그런 바다가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창문을 열면 늘 산이 막았습니다. 뒷창문, 옆창문, 앞창문을 다 열어도 산입니다. 산 뿐입니다. 집 지을 때야 언제든 산이 들어오도록 사방에 낸 창이 이제 보기가 싫어졌습니다. 모든 창을 다 막아버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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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고 싶었던 시골생활, 그리도 텅 빈 마음 채워주던 산골살이, 가끔씩 들르던 이들에게 “야, 너는 신선놀음하고 있구나!”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차오르던 뿌듯함. 헌데 마가 끼었는지, 사탄의 유혹인지, 산신령의 저주인지 조금씩 싫어지기 시작하더니 날이 갈수록 농도가 짙어져 갔습니다.


급기야 아내에게 이사 가자고 얘기했더니 이제 이곳에 정이 들었는데 왜 가느냐고 합니다. 아내는 텃밭에서 가꾼 싱싱한 남새와 산과 들에 나가면 건강한 먹거리에 반했던 겁니다. 아들은 계곡 물놀이, 벼메뚜기 잡기, 나비 쫓아다니기가 좋다고 했고, 처음에 시큰둥했던 딸도 이제는 시골의 작은 학교가 마음에 들고 친구들도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산만 보이는 그곳이 싫어진 사람은 오직 자기뿐이란 걸 사내는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우겨서 옮기려 했건만 도시는 아파트값이 엄청 올랐는데, 이곳 산골은 별로 오르지 않아 팔아본들 예전에 살던 아파트는 물론 작은 평수조차 구입할 수 없게 됐다는 걸 알게 되자 사내는 극도로 우울해졌습니다.

봄날 나무에 새싹 돋는 소리는커녕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여름에 밀려오는 안개는 갑갑한 마음에 한 겹 더 천막을 치는 듯했고, 가을에 먹던 감에서는 떫은맛만, 산머루에서는 강한 신맛만, 다래에서는 풋내만 잔뜩 느껴졌습니다.

눈 쌓인 산마을의 정취가 전에는 그리도 아름다웠건만 이제는 눈 소리만 들어도 진절머리를 칠 정도로 아찔합니다. 가파른 길이 많아 눈이 조금만 쌓여도 오도 가도 못함은 물론, 땔감 마련하기도 수월치 않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도 가끔 얼어 식수 구하려 애써야 할 땐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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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싫어지니까 왜 그리도 자꾸만 더 싫어지는지요. 산이 싫어지는 마음이 늘어날수록 바다가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저 앞의 산을 없애고 바다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산을 어떻게 옮기고, 어떻게 지울 수 있나요. 그러니 더욱 마음이 쓰라릴 뿐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산골을 떠나 바닷가에 살고 싶은 마음만 치솟던 어느 날, 무심코 아들이 학교에서 과제로 내준 그림 그리는 걸 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선 아마도 자기 사는 주변을 그리라고 하셨는지 아들은 집이 몇 채인 마을을 그리고, 시내가 흐르는 계곡을 그린 다음 앞산을 그릴 때였습니다.


어, 그런데... 그런데 산이 없어졌습니다. 앞산을 없애고 바다를 그렸던 겁니다. 산이 있던 자리에 통통배 두 척과 갈매기 세 마리와 물을 뿜어내는 고래를 그려 넣었습니다.

“야, 너 엉터리로 그릴래? 선생님께선 분명히 사실대로 그려라 하셨을 텐데...”

아들은 그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색칠까지 다한 다음 위쪽에 제목을 붙였습니다. ‘아빠의 꿈’이란 제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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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한동안 말없이 아들이 그린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가까이서 뚫어지듯이 보다가, 조금 떨어져 보다가, 아예 눈을 감았다가... 잠시 후 사내는 그림을 보다 말고 테라스에 나가 앞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에 그리도 보기 싫던 소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가 하나씩 하나씩 들어왔습니다.
뒤로 돌아봐도 산, 옆에도 산인 건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사내의 눈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눈물을 옷소매로 훔치고 돌아서려던 그때, 눈에 흐릿한 영상이 잡혔습니다. 아들의 그림 그대로의 영상 말입니다.

눈을 한 번 비비자 정말 바다가 들어왔고, 귀에는 파도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코로는 갯내음이 풍겨왔습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산이 가로막혀 볼 수 없던 그 바다가 눈에 들어온 겁니다. 물결만이 아니라 그 속에 놀고 있는 물고기도 보였습니다.
다음날부터 사내의 글에는, 산 이야기만 담겨 있던 사내의 글에는 바다 이야기가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칼럼에 달리는 댓글에 비판의 내용이 늘어났습니다. 대부분 전에는 산골의 정취를 사실대로 묘사해서 좋았는데, '엉터리 글을 쓰지 마라', 차라리 판타지 소설이나 쓰지' 하며 비웃는 글도 있었습니다.

급기야 담당 기자로부터 계속 이상한 식으로 쓰면 연재를 중단해야겠다는 말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내는 흔들리지 않고 산속에서 바다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물고기도 달라졌습니다. 어떤 때는 등 푸른 고등어 떼가, 수온이 오르면 집어등과 함께 오징어 떼가, 단풍이 붉게 물들 때면 속칭 빨간 고기떼가, 찬바람이 일 때는 이제 멀리 찾기 힘든 명태도 등장했습니다.

그럼 산 이야기는 끝났을까요? 아닙니다. 산속에 놀던 고라니ㆍ 노루ㆍ 너구리가 용궁에 떡하니 자리 잡았고, 고래가 뽕나무 그늘 아래 낮잠을 자고, 멸치 떼가 참새떼 노닐던 풀숲을 차지했습니다. 물론 신문 연재는 중단돼 수입은 줄어들었지만 사내는 더없이 기뻤습니다.


*. 이 글은 실제의 얘기가 아니라 허구를 가미한 창작입니다. 사진은 우리 집과 마을 관련 사진이며, 그림은 손녀가 그려줬습니다.

또한 예전에 써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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