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91)
<첫째 이야기>
산골에 살다 보니 도시에서 알고 지내던 분들이 자주 찾아옵니다. 한 번씩 들르게 되면 도시가 갖지 못한 매력을 맛보기 때문이겠지요.
가끔, 아주 가끔 다른 시골에 사시는 분들도 들를 때 있는데 며칠 전에 그런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분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다가 자기가 사는 마을 사람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닙니까. 긴 얘기를 정리해 봅니다.
그가 시골에 정착한 지 십 년이 넘었는데 한 오 년 전에 바로 이웃에 한 사람이 집을 지었다. 처음에는 신경 쓸 일 없었는데 집짓기 공사를 하면서 석축 쌓기, 집터 다지기, 건물 올리기를 무려 열 달이나 끌었다.
집 짓는 공사를 하게 되면 반드시 소음이 발생하는데 그러면 미리 와서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데 이웃은 한마디 말도 없었다. 게다가 집을 완성하고서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는 시골에 붙박여(常住) 사는데 비해 이웃은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는 즉, 주말주택으로 사용했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이해가 되었다. 문제는 이웃이 재작년 퇴직하고 난 뒤 가끔이 아니라 거의 날마다 와 살면서 사이가 더 벌어졌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웃은 상당히 이기적이며 비협조적이다. 마을 공동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대신 마을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물품은 꼭 챙긴다나.
하루는 그의 집에 예전 울산 살 때 아는 이가 찾아왔는데 하필 이웃과도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그 사람이 이웃집에 먼저 들렀다가 그의 집으로 와서 하는 말,
“참 사람 좋지요? 저랑 같은 부서에서 일했는데 회사에서 다들 사람 좋다는 말을 합니다.”
그가 그 말에 이렇게 답했단다.
“시골에 살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마을 상수도 관리, 큰물 나고 난 뒤 마을길 보수, 길가 풀베기 등. 그런데 그때마다 한 번도 나와 협조하지 않다가 공짜 물품 나눠 줄 땐 꼭 챙기는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둘째 이야기>
아는 이 가운데 고등학교 교사로 20년 간 근무하다가 원대한 포부(?)를 갖고 퇴직한 뒤 중고차 사업으로 직업을 바꾼 사람이 있습니다. 다음은 어느 날 그랑 만나 식사하다가 나온 얘기입니다.
처음 한동안 중고차 매매업이 잘 안 돼 애먹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서 이 모임 저 모임에 나갔다. 교사로 있을 땐 골프의 ‘골’ 자도 모르던 그가 가끔 나가 맛 들인 골프에 빠져 나중엔 한 골프모임에 가입했다.
그날도 모임에 나갔는데 저쪽에서 새로 들어온 40대 초반쯤 되는 젊은 회원을 소개하는 순간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마지막 고3 담임을 할 때 자기 반 애가 아닌가. 서로 눈 마주쳤을 때 움찔하는 표정으로 보아 맞다고 확신했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먼저 인사했고 제자 역시 받긴 하더란다. 선생님보다 제자가 먼저 알아보는 게 상례인데 조금 이상했지만 넘어갔다. 그리고 매달 한 번 가지는 모임에서 만날 때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면서도 계속 떨떠름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늘 자기가 먼저 인사해야 받아주는 형태. 처음에는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그렇겠지 했다. 평소 활발한 성격 아니면 저가 먼저 다가와 인사말 건네기 쑥스러웠을 거라 여기면서. 그래도 아쉬웠다. 나름 그 제자에게 도움 준 적도 여러 번이었는데...
무려 3년 동안 모임에 나가면서도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한 번은 묘한 걸 보았다. 다시 한 사람이 새로 들어왔는데 그는 공기업 임원. 그리고 제자는 그의 직속 부하직원. 아무래도 상관을 그 모임으로 끌어당긴 모양이다.
제자가 누구나 다 선호하는 공기업에 다님은 스승으로선 기분 좋은 일. 비록 세 번이나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선물 하나 받아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제자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매한가지. 그렇게 끝났으면 좋으련만 다시 다른 일이 이어졌으니.
모임은 가끔 회식으로 이어져 술잔이 오고 가는데, 그때 제자가 자기 직속상관에게 술잔을 들고 가 부어 주었다. 그는 순간 기대했다. 조금 있으면 자기에게도 와 부어줄 것이라고. 그러나 웬걸, 상관으로 끝이었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있게 되면서 조금씩 섭섭한 마음이 쌓이게 되었다. 스승의 날 선물은 이미 졸업했으니 안 해줘도 괜찮으나 술은 공금으로 내는 자리니 자기 돈으로 사는 것도 아닌데 패스하는 게 영 섭섭했다나.
<첫째 이야기에 '덧붙임'>
다른 시골에 살던 이가 우리 집을 찾아와 얘기 나누던 때로 돌아갑니다.
이웃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던 중, 한 번은 그 이웃에 손님이 찾아와 밤늦게까지 놀다 갔다. 시골에 와서 밤늦게까지 놀다 감은 문젯거리가 안 된다. 하나 12시 다 되도록 노래방 기기를 크게 틀어놓고 떠들썩하게 논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한 번으로 그칠 줄 알았던 일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서 얘기를 했던가 보다. 헌데 그쪽에선 뭐 그런 일로 시비 거느냐는 투로 받았고. 마침 어린 손주가 와 겨우 잠재운 날 밤, 또 들려온 술 취한 목소리로 고함지르듯 노래 부르는 소리에 도저히 참지 못해 경찰서로 연락했다.
경찰이 오고 잠시 조용해지는가 했더니 다시 노랫소리가 들려와 손주는 깨고... 경찰에 다시 연락했고. 그렇게 이웃과 원수가 되었단다.
그날 그가 나에게 말했다.
“자기 회사 부서원들은 참 좋은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럼 제가 나쁜 사람입니까?”
<둘째 이야기에 '덧붙임'>
이제는 사장인 전직 선생님과 제자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골프모임에 나가면서 제자 하고는 별로였으나 그의 상관과 친하게 돼 둘이 술을 마실 기회를 갖게 되었다. 어느 날 상관이 얘기를 꺼냈다.
“제가 들으니 우리 부서 OOO 씨가 사장님의 고3 때 제자라 하던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학창 시절엔 어땠습니까?”
“좋은 학생이었지요.”
“네 현재 제 부서에서 일하는데 참 열심히 하고 인사성도 바릅니다.”
그렇게 끝났으면 별일 없었을 텐데 상관이 한 마디 덧붙이더란다.
“이번 연말 부장 승진에 유력한 후보입니다.”
“후보라면 또 다른 경쟁자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네 우리 회사에선 언제나 둘을 올리는데 그 가운데 한 명만 뽑습니다.”
그러고 잠시 있는데 상관이 덧붙였다.
“OOO 씨는 다른 후보보다 실력은 좀 밀리지만 인간성 면에서 뛰어나 고민입니다. 저는 인간성을 더 선호하는데...”
그 말에 전직 선생님이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속에만 담아두었다.
'어떤 제자가 있는데 자기 장래에 영향을 줄 사람에게는 최대의 예의를 다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을 푸대접한다면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뱀의 발(蛇足)>
교직에 있다 보면 몇 년 같은 학교 근무해도 어떤 선생님을 잘 알지 못하다가 같은 학년을 맡게 되면 그의 성격을 안다는 말을 합니다. 일 년 내내 좁은 학년실에서 생활하다 보면 그의 잘잘못이 훤히 보이니까 거기서 나온 말입니다.
즉 멀리서 보면 좋은 사람도 실제 곁에서 겪어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일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연애 시절에는 한없이 멋져 보이는 연인이 막상 남편이나 아내가 되면 그의 결점이 드러나 매력이 반감되듯이.
문득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는 좋은 사람입니까?”
*. 사진은 모두 영화 [좋은 사람] 스틸 컷인데,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