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한 소통(472)

제472편 : 박재삼 시인의 '추억에서'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박재삼 시인 편 ♡


- 추억에서 -


진주 장터 생어물전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 시리게 떨던가 손 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 [춘향이의 마음](1962년)

*. 별밭 : 밤하늘에 별이 밭에 곡식이 가득하듯 무수히 많이 빛나는 모습
*. 오명 가명 : 오며 가며
*. 신새벽 : 표준어는 ‘첫새벽’인데, 아주 이른 새벽이란 뜻


5_8b5Ud018svc1vgbckwqmm7h7_149gk0.png?type=e1920_std



<함께 나누기>

해마다 200여 명쯤 되는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그전에 다룬 시인의 시를 주로 싣는데 거기서 1/10 정도 시인은 바뀝니다.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작년 이맘때 배달한 시인 대신 어느 시인을 넣을까 하다가 아는 이의 추천을 받아 올리게 되었습니다.
1980년 이전에 나온 시집에 실린 시는 싣지 않음을 원칙으로 했는데, 특별한 부탁을 받으면 이렇게 원칙을 어기게 됩니다. 오늘 시는 고교 교과서에도 나와 아시는 분이 많이 계실 겁니다. 학창시절에도 좋았지만 지금 읽어도 느낌이 참 좋은 시입니다.

시를 읽다 보면 예전에 즐겨보았던 [TV문학관]이 떠오를 겁니다. 여러 인터뷰에서 시인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진주 장터 생어물전에는 / 바닷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시는 화자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독백하는 방식으로 시상이 전개됩니다. 어린 시절 화자는 골방에서 누이와 함께 어머니를 기다립니다. 어머니가 진주장에 생선장사하러 이른 새벽에 나가면 해가 다 져야 들어오기에 어머니 돌아올 때까지 오누이는 골방에서 떨며 기다릴 뿐입니다.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화자는 어려 실제 어머니가 생어물 파는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해도 돌아올 적마다 팔지 못하고 남은 생선을 들고 오기에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팔지 못한 생선은 다음 장까지 보관 못해 반찬으로나 먹어야 합니다. 팔아야 그 돈으로 쌀 같은 생필품 살 수 있는데...
'은전만큼 손 안 닿는 한'으로 보아 먼 길 갔다왔다 하며 힘들게 일했지만 벌이가 좋지 못해 고생하는 어머니. 생선을 팔아야, 돈을 벌어야 아이들 학비나 옷이라도 살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니 어머니의 한은 얼마나 컸을까요.

"별밭은 또 그리 멀리 /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 손 시리게 떨던가 손 시리게 떨던가"

어머니의 그런 사정과 달리 남매의 처지도 안타깝습니다. 식사 제대로 못 챙겨 먹었을 텐데 하늘의 별은 무심하게도 총총 흐르고, 하필 방바닥에 온기조차 없으니 말 그대로 춥고 배고플 뿐. 아마도 이때는 어머니가 무척 원망스러웠을 듯. 그래서 시인은 다 자라 어머니께 후회하는 마음로 이 시를 썼을 듯.

"진주 남강 맑다 해도 / 오명 가명 /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그 맑기로 소문난 진주 남강 물빛도 볼 사이 없이 어머니는 신새벽에 진주장으로 생선 팔러 갔다 한밤중에 돌아오셨습니다. 이제 시인도 그때의 어머니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울엄매야 울엄매'라는 반복 표현에는 어머니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이 담겼다고 해야겠지요.

앞에 주절주절 단 제 해석보다 이 시는 훨씬 더 뛰어납니다. 읽으면서 어린 화자에 감정이입돼 멀리 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는 글벗님들도 꽤 되실 듯. 시에서의 어머니는 시인만의 어머니가 아니라 곤궁하고 막막했던 시절을 몸으로 이겨낸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시기에.


5_bb5Ud018svc8l26yf8nq97u_149gk0.png?type=e1920_std



#. 박재삼 시인(1933년 ~ 97년) : 일본 출신으로 네 살 때 우리나라로 건너와 삼천포에서 성장했기에 삼천포를 글감으로 한 시가 많음. 1953년 [문예]에 시조로, 1955년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돼 등단했기에 시와 시조를 함께 씀.
다만 ‘제6공화국의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의원이 수감 돼 있는 동안 감옥에서 쓴 시(옥중시)로, 1995년 월간 [순수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그때 당시 문단 원로였던 박재삼 시인과 조병화 시인이 박철언의 작품을 추천하여 등단을 도왔는데, 그로 인하여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 시인 정보는 인터넷에서 얻은지라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백일홍, 비움과 채움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