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92)
아침에 일어나면 ‘문화 뉴스’를 먼저 뒤적인다. 손흥민 선수가 EPL 토트넘 소속일 때는 스포츠 뉴스를 가장 먼저 봤는데... 문화 면을 대충 훑으며 지나가는데 작은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윤동주 시인에 관한. 다른 분도 아닌 윤동주 님이라면.
<하나> 아 윤동주!
혹 다음 주 월요일(2월 16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는지? 바로 시인 윤동주가 일제에 의해 목숨 잃은 날이며, 올해로 '81년'이 되는 해다. 민족시인 윤동주는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투옥됐다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스물아홉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스물아홉의 짧은 생에 남긴 시집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딱 한 권뿐이나 우리에게 남긴 무게감은 수백 수천 권의 시집과 같으니. 그날 읽은 기사에는 그런 업적과 더불어 이 시집을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물게 해준 국문학자 ‘정병욱’ 님의 공도 담았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길에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어 후배이면서 절친인 정병욱에게 시 31편이 담긴 원고를 부탁했다. 정병욱 역시 학도병으로 끌려가면서 어머니에게 부탁했고. 자신은 살아 돌아왔으나 돌아오지 못한 절친의 원고를 보고 출판을 결심했다.
이렇게 나온 시집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러니 이 책은 유고시집인 셈이다. 만약 그때 원고를 제대로 보존 못했더라면... 아찔하다. 그래서 원고를 보관했던 정병욱의 생가 전남 광양시 '망덕포구' 주변에는 해마다 이맘때 윤동주와 정병욱 두 분을 기리는 행사를 벌인다.
올해가 민족시인 국민시인이라 우러름 받는 윤동주 님이 순국한 지 81년이 된다 하는데, 이 평범한 숫자 ‘81’이 내겐 잊을 수 없는 숫자인지라 남다르게 다가왔다.
<둘> 81번 버스 - 첫사랑
부산진구 초읍동에서 출발한 81번 버스를 타고 고등학교 다니던 당시 등굣길의 유일한 기쁨은, 연지동에서 버스를 타면 먼저 앉아 있던 부산 모여상 다니던 여고생, 그 여고생과 슬며시 스치는 듯 머무는 눈 마주침이었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그 눈 맞춤(나의 일방적 눈 맞춤이었을지 몰라도)으로 몇 달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면 이해할는지. 그러던 7월 어느 날, 콩나물시루 표현이 딱 들어맞는 빽빽한 버스 안을 비집고 들어가 그 여학생 앞에 서자 책가방을 받아주었다.
먼발치서 슬쩍슬쩍 얼굴만 훔쳐보다 그녀 앞에 선 것은 나로선 큰 용기, 거기에 가방까지 받아주는 인연까지 만들었으니. 이제 내릴 때 ‘고맙습니다’란 인사만 건네면 공식적으로 말 붙이는 첫마디가 되고, 다음에 나아갈 진도까지 계산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부전동쯤 왔을까? 갑자기 그 여학생이 소리를 질렀다. “어마앗!” 버스 안을 온통 뒤흔드는 비명! 놀라 내려다보니 세상에! 내 가방 도시락에서 흘러내린 김칫국물이 그녀의 하얀 블라우스와 남색 치마를 적시고 있었다.
뒷얘기는 하지 않으련다. 그날 뒤로 졸업 때까지 버스를 타지 않고 삼십 분 넘게 학교까지 걸어다녀야 했으니. 울엄마에게 우겨 반찬을 김치에서 콩자반으로 바뀐 것도 그 때문. 다신 그녀 앞에 설 일 없지만 김치도시락에 담긴 트라우마는 오랫동안 남았다.
지금도 김치를 즐겨 먹고 사랑하나 그때 그 소녀를 비명 지르게 만든 그 나쁜 김칫국물만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3> 81번 버스 – 두 번째 사랑
대학교 다니던 시절, 초읍동에서 출발한 81번 버스를 연지동에서 올라타면 십여 분쯤 뒤 서면에 닿는다. 그러면 장전동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그러던 어느 봄날 그날 역시 버스에 오르는데 갑자기 눈이 크게 뜨였다. 단발머리에 연두색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가 바로 앞에 서 있어서.
깔끔한 차림에다 '와!' 하는 탄성이 속에서 절로 나올 정도의 미인이었다. 속된 말로 한눈에 뿅 갔으니. 그녀는 나보다 먼저 타 있으니 초읍동 어름에 사는 모양. 그 뒤 몇 번 본 차림으로 보아 대학생은 아닌 걸로 파악했고.
나는 중간 환승지인 서면에 내려야 했지만 그녀는 내리지 않아 시내 어딘가에 근무하는 오피스걸이라는 것까진 추리했으나 다음은 모르는 상황. 연지동에서 서면까지는 고작 십여 분. 그 짧은 시간이라도 능력자라면 성(城)을 여러 채 지었으련만. 나는 그때까지 쑥맥 중의 쑥맥.
뭐라 말 붙이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았으나 아무 표현 못하고 단지 버스 타고 가는 그 십여 분 동안 슬쩍슬쩍 훔쳐보는 정도로만 끝내던 어느 날, 1교시 ‘국문학사’ 시간만 빼먹으면 오전 내내 텅 비는 수요일, 일부러 서면에 내리지 않고 모른 체하며 그녀가 하차하는 곳까지 따라갔다.
초량동 ‘신동빌딩’에 들어가는 것까진 미행해서 알았고. 나중에 그 빌딩엔 당시 일본 기업의 사무실이 많다는 것까지는 확인했는데... 며칠 뒤 하굣길에 같은 버스를 탄 그녀를 보고 이번엔 연지동에 내리지 않고 집이나 알아두자는 마음으로 성지곡수원지 바로 앞 정류장까지 따라갔고...
그녀가 내릴 때 슬며시 따라내려 드디어 그녀의 집까지 이르러 거처도 직장도 알았으나 정작 중요한 이름 나이 같은 건 하나도 모르는 상황. ‘말을 걸어야 한다’ ‘말을 걸어야 한다’는 외침은 속에서만 웅얼거릴 뿐 행동은 뒷전.
맨 정신으론 도저히 용기 없어 며칠 뒤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 그녀 집 앞에 섰다. 그러나 역시 문을 두드릴 용기는 없었고. 초인종을 누르나 아니면 그녀 방 쪽으로 돌을 던지나 갈등만 하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왔으니.
다음날도 찾아갔다가 돌아왔고, 또 다음날도... 그러던 어느 날 건장한 남자 둘이 집 앞에서 돌아서는 나를 막아섰는데... 그녀의 오빠였다, 한 놈팡이가 자기 집 주변을 기웃기웃한다는 이웃의 제보에 나를 붙잡으러 친구와 함께 잠복했다던가.
결국 파출소까지 끌려갔는데 사실대로 얘기할 수 없어 진퇴양난일 때 다행히 파출소 순경 한 분이 이웃 형님. 술 취함을 핑계로 겨우 사과하고 풀려났고... 그렇게 두 번째의 사랑도 아픔만 주고 끝났다.
아, 81번 버스! 나에게 상처만 남긴 그 버스는 지금도 그 길을 다니고 있는지, 그걸 타면 추억이 다시금 살아날는지.
<넷> '81'이란 숫자의 후유증
‘81’은 ‘4, 7, 9, 11, 13’처럼 특별히 의미 있거나 새겨둘 만한 숫자가 아니다. (9번 11번은 유명 축구선수 등번호로 많이 쓰임) 그렇지만 나처럼 특별한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 그 숫자는 지워지지 않는다. 기억의 서랍 속에 갇혔다가 어느 날 문득문득 툭 튀어나오니까.
사무엘 에투,
대단한 업적을 남겼지만 축구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 아니라면 카메룬 출신의 사무엘 에투(사뮈엘 에토)를 기억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흑표범’이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그는 동물적인 감각의 골 결정력과 폭발적인 스피드, 정교한 기술과 볼 컨트롤로 유명하다.
2004-05, 2005-06 두 시즌에 스페인 라리가에서 득점왕, FC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트레블(FA컵 우승, 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달성했으며, 인터밀란 소속으로도 트레블을 달성하여 역사상 두 개 팀에서 트레블 달성한 유일한 선수로 손꼽힌다.
나는 사무엘 에투를 알았으나 그가 출전하는 경기를 특별히 열심히 보지 않았다. 그저 스포츠 뉴스에 뜨면 한번 쓱 훑고 지나갈 뿐. 전성기가 지나 37세의 나이로 쫓겨나다시피 축구 변방인 카타르로 이적할 때도 그냥 지나쳤을 텐데 하필 그의 등번호가 81번이어서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TV에 뜬 뉴스에도 눈을 박았다. 우리나라 남자의 기대수명이 81세라는 기사. 이때도 하필 81이란 숫자가 튀어 나오다니. 81은 그렇게 머릿속에 인을 박았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81세까지 살 수 있으려나. 81을 더 오래 기억하려면 그때까지는 살아야 할 텐데...
*. AI로 만든 두 그림 말고는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