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꽃 피어나다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11)

* 복숭아꽃 피어나다 *



‘이상난동’이란다. 난동(暖冬 : 따뜻한 겨울)을 난동(亂動 : 마구 날뜀)으로 번역해 '기온이 마구마구 날뛴다'라고 해야 할 판이다. 지자체마다 벚꽃 피는 시기를 지난 몇 년을 참작하여 축제날을 정했는데, 그보다 열흘 가까이 먼저 피었으니 난리버꾸통이다.
특히 올해 벚꽃 개화 시기는 통상 남녘에서부터 북녘으로 서서히 올라갔는데 전국이 동시다발적이라 경주나 서울이나 별반 차이 없다. 계획한 날짜를 늦출 수는 있으나 당기기 어려우니 난동이 정말 난동이 돼 가는 판국이랄까.

요즘 달내마을도 벚꽃이 한창이다. 아니 한창에서 뒤로 기울어져 아침에 보니 벚꽃이 바닥에 자욱하다. 대신 그 자리에 다른 꽃이 차지한다. 바로 복숭아꽃이다. 복숭아꽃은 예년 같으면 아직 필 때가 멀었건만 빠알간 립스틱 짙게 바른 여인처럼 요염한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고 있다.


111-5.jpg



복숭아꽃을 한자로 쓰면 도화(桃花)다. 산복숭아 또는 돌복숭아로 불리는 야생복숭아는 ‘산도화(山桃花)’가 되고. 요즘 마을 한 바퀴 도노라면 개울가 군데군데 핀 돌복숭아꽃도 보이지만 집 안에도 심어두기에 웬만한 시골집엔 두어 그루 자리 차지한다.
복숭아꽃은 워낙 빛깔이 사람을 끌어당겨 집 안에 피면 눈이 즐겁다. 함에도 우리 선조들은 두 가지 이유로 집 안에 복숭아를 심지 않았다. 하나는 복숭아가 귀신 쫓는다 여겨 그걸 심으면 조상신이 제삿날 무서워서 집에 오지 않는다고 한다. (복숭아를 제사상에 올리지 않음은 다 그런 까닭임)

집 안에 복숭아를 심지 않는 두 번째는 이유는 그 집의 여인들에게 ‘도화살’이 붙어 집안을 쑥대밭 만든다는 무속신앙(미신) 때문이다. 즉 ‘도화살’이 사주에 들어있으면 음란한 성질 때문에 자신을 망침은 물론 한 집을 패망하게 만든다 하여 혼인할 때 기피했다.
운동 뒤나 술 마신 다음이 아닌데도 평소 여인 얼굴에 홍기(紅氣)가 돌아 불그스름하게 보이면 도화살 끼었다고 하는데, 이 도화살은 현대식 표현으로는 섹시하게 보여 요즘은 오히려 장점이 된다고 하니 참 격세지감이랄까.


111-2.jpg



집 안에 심어선 안 되는 나무로 복숭아 말고도 수양버들, 은행나무, 동백, 배롱나무(나무백일홍)가 더 있는데, 각각 이유가 참 '거시기'하다.

수양버들은 늘어진 가지가 상중(喪中)인 여인이 머리 풀어헤친 모습을 연상케 하기에 불행한 일이 생긴다 하거나, 또 수양버들은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요염한 여자의 허리 흔듦과 비슷하다 하여 심지 않았다.

은행나무는 ‘공자 나무’, 즉 공자(孔子)를 숭상하는 기운을 가진 나무라 해서 가정집보다 향교나 서원에 주로 심었다. 지금도 가까운 향교나 서원에 가면 오래되고 큰 은행나무를 볼 수 있고, 또 역사가 오랜 시골학교에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서 있음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동백나무는 꽃잎이 떨어질 때 꽃 전체가 한 번에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역모죄로 형장에서 목이 떨어지는 모습 같아 벼슬아치들이 싫어했다고 한다. 하기야 한 번 역모죄를 뒤집어쓰면 자손 대대로 조정에 나아가 벼슬할 수 없었던 양반들에겐 몸서리쳐지는 꽃이었으리라.


111-3.jpg



배롱나무(나무백일홍)도 예전엔 집 안에 심지 않았다. 특히 배롱나무는 산 사람을 위한 나무가 아니라 '죽은 이를 위한 나무'로 여겨 주로 무덤가에 심었다. 향교나 서원 가면 오래된 배롱나무 볼 수 있는데 거기에도 배향(配享)된 성현들을 위한 제사공간이 있어서 그런 걸까.
능소화는 집 안에 심는 꽃이긴 하나 제한적으로 심었다. 지금에야 담장이 있는 집마다 심지만 예전에는 오직 양반집에만 심을 수 있었다. 만약 능소화를 일반 평민의 집에 심었다가는 치도곤을 당했다고 하니 지금으로선 참 어처구니없다.


이제 집 안에 키우지 않는 꽃나무는 없다. 특히 복숭아, 백일홍, 능소화, 동백은 그 꽃의 이쁨으로 하여 안 심는 집이 오히려 드물다. 그 가운데서도 복숭아꽃은 참 매혹적이다. 아마 ‘빨간 유혹’ 측면에서 보면 양귀비꽃이 가장 우선이겠고 그 다음은 복숭아꽃이 아닐까.
매혹적이기에 복숭아를 심어야 할 이유 말고 하나 더 있다. 복숭아꽃은 동양의 이상향인 무릉도원(武陵桃源)과 관계 깊기 때문이다. 중국 송나라 시인 도연명은 그의 저서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무릉도원'이란 이상향을 제시했다. 무릉도원은 '복숭아꽃이 피는 근원이 되는 무릉이란 곳에서 근심걱정 없이 오직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란 뜻이다.


111-4.jpg



아시다시피 이상향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살기 좋고 완벽한 사회 아닌가. 역사적으로 보면 이름만 다를 뿐 모두 꿈에 그리던 세계다. 고대 기독교에선 '에덴동산', 중세 유럽에선 '유토피아', 불교에 '피안의 세계'가 있다면 도교의 이상향은 바로 '무릉도원'이다.
아직 만발했다고 하기엔 좀 이르나 복숭아꽃이 마을을 가득 채우면 달내마을 - 한자로는 '月川' -은 무릉도원이 된다. 아니 '월천도원'이 된다고 해야 할까. 월천도원에서 밭일 뒤 막걸리 한 사발에 머위, 원추리, 부지깽이, 두릅 슬쩍 데쳐 안주 삼아 마시면 이상향이 멀리 있지 않고 이곳이 신선의 세계 아닐까?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작가의 이전글홀대받는 식물 이름의 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