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야, 제발 좀...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13)

* 두더지야, 제발 좀... *



쥐에게는 삼 형제가 있으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쥐(들쥐, 집쥐 등)와 다람쥐와 두더지다. 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게다. 쥐가 귀여워서 사진 찍는다거나 쥐를 보고 감탄한다면 이상할 사람 취급받을 테니.
그에 비하면 다람쥐를 사람들은 대부분 귀여워한다. 특히 두 손 꼭 모은 채 밤이나 도토리 까먹는 모습 보면 얼마나 귀여운지. 다만 두더지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리라. 아니 실제 살아 있는 모습은커녕 죽은 상태의 두더지조차 본 사람 드물기에 호불호를 말하기 어렵다고 할까.

이쯤에서 눈 밝은 이는 표기법에서 들쥐와 다람쥐에 비해 두더지가 조금 차이 남을 알아차렸으리라. 들쥐나 다람쥐는 ‘쥐’로 표기하는데 비하여 두더지는 ‘지’이니까. ‘쥐’와 ‘지’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면 같은 종(種)이 아닌가?
두더지의 어원을 보면, ‘이리저리 들추다’의 뜻인 '뒤지다(古語 : 두디다)'에서 나왔으니 ‘뒤지고 다니는 쥐’란 뜻을 담았다. 몰래몰래 뒤지고 다니는 녀석이 마침 쥐와 닮아서 우리 선조들은 처음에 ‘두디쥐’로 불렀다. 이게 음운변화를 거쳐 두더지로 되었다 함이 널리 알려진 학설이다.

(뒤지다의 古語 두디다의 어간 '두디', 두디 + 쥐 > 두디쥐 > 두더쥐 > 두더지 )





요즘 두더지 녀석 때문에 짜증이 이만저만 아니다. 텃밭을 몽땅 다 뒤집어놓았다. 특히 우리 밭엔 농약 한 방울 치지 않았기에 두더지에겐 천국이다. 퇴치하려고 페트병으로 바람개비를 만들어 달아도 별로 효과 없다. 또 다른 퇴치법인 두더지 포획틀(쥐덫 형태)을 놓으면 된다는데 그건 못할 짓이다.
이 녀석은 땅속을 파고 다니니 원칙적으로 땅 위에 표가 나지 않아야 한다. 헌데 녀석은 영리하다. 깊이 파헤치지 않고 아주 얕은 곳을 헤치고 다니니까. 그래야 흙 파기 수월하다는 걸 잘 안다. 단단하지 않고 부드러운 곳만 파헤치니 녀석이 다니는 곳은 불룩 솟아 한눈에 확 드러난다.

우리 텃밭에서 녀석이 가장 잘 다니는 곳이 고구마 심은 터다. 밭을 일구었으니까 흙이 아주 부드럽고, 게다가 고구마라는 맛있는 먹잇감도 있지 않은가. 아내가 하도 고구마를 좋아하기에 밭의 1/3은 고구마를 심었다. 즉 두더지가 썩 놀기 좋은 터가 되었다는 말이다.
아내가 고구마를 좋아한다면 나는 땅콩을 좋아한다. 당연히 이사 온 첫 해부터 땅콩을 심었다. 그리고 수시로 드나들며 풀도 뽑고... 잎사귀가 잘 자라는 걸 보며 기쁜 마음으로 수확 때만 기다리다 가을이 되어 뽑았더니 거의 반을 두더지가 작살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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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얼마나 열받던지. 온 밭에 제초제를 뿌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제해야 했다. 건드리지 않은 땅콩조차 마치 두더지 입이 닿은 듯 찝찝한 느낌이었고... 작년부터 ‘틀밭’ 만든 까닭의 하나가 두더지 침입을 막기 위함이다. 현재 땅콩밭은 효과를 보고 있다.
틀밭 아래 망을 깔아놓았으니 위로 뚫고 나오지 못한다. 헌데 고구마와 감자는 틀밭으로 만들기 녹녹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땅콩은 깊이 들어가지 않아 틀밭 아래 망 쳐놓으면 그만이지만 너른 고구마밭 아래엔 어떻게 다 망을 깐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뱀, 지네를 싫어한다. 아마 두더지도 여성들이 보았다면 좋아할 사람보다 싫어할 사람이 더 많으리라. 헌데 역설적으로 뱀, 지네, 두더지가 있으면 그 땅은 살아있는 흙이란 평가를 받는다. 왜냐하면 농약(특히 제초제) 친 밭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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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온 이듬해 일이다. 이웃집 할머니가 헐레벌떡 찾아왔다. 할머니 댁 부엌에 뱀이 들어갔는데 어떻게 할 수 없느냐고. 부엌에 뱀이 있다면 무시로 드나들어야 할 주부로선 꼼짝할 수 없다. 더욱 독사가 버티고 있어 자칫 물리기라도 하면 큰일 아닌가.
당시 119 소방대는 오직 불났을 때 전화하거나 구급대 역할만 겨우 하던 시절이라 거기로 연락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뱀이나 지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가를. 바로 ‘에프킬라’. 모기나 파리 잡는 에프킬라가 지네는 몰라도 뱀까지 퇴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골 사는 사람들도 잘 모른다.

에프킬라를 준비해 가지고 할머니 댁 부엌에 가 군데군데 뿌렸다. 그리고 몽둥이를 들고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5분도 채 돼 녀석이 견디지 못하고 설설 기어 나오는 게 아닌가. 뒤의 이야기는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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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두더지가 귀찮으면 제초제를 뿌리면 직빵이다. 단번에 해결이다. 다만 그 땅에 심은 작물은 제초제 먹고 자라니 사람도 제초제 먹어야 한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별의별 두더지 퇴치법이 다 나온다. 가장 많이 권하는 페트병 바람개비는 작은 밭에 30개 가까이 꽂아놓았건만 별 효과 없다.
그밖에 판매용 지진음파를 일으키는 기구 사용, 두더지 포획틀 사용, 두더지 집을 찾아내 거기 약물을 뿌리기, 어성초잎(또는 은행잎) 발효시킨 액을 군데군데 뿌리기, 생선대가리를 썩혀 다니는 길목에 놓아두기 등.

여러 방법이 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선 미지수다. 어떤 사람은 해보니까 효과 있다 하고 어떤 사람은 효과 없다고 하니. 가장 위험한 이론은 시골에 살지 않고 토일요일에나 한 번씩 와 텃밭 가꿔본 사람들이 내놓은 방법이다.
인터넷이나 뉴스에서 보았다면서 아는 척하는데 30년 가까이 시골살이 한 사람이 이것저것 다 해보고도 안 된다는 데도 굳이 입을 댄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텃밭에 유독 두더지가 많은 까닭을 약을 너무 안 쳐서 그렇다고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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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두더지도 야생동물이라 가능한 걔들의 생명을 존중해 주려는 마음도 한 켠에 숨어 있다. 그리고 솔직히 쥐는 징그럽지만 두더지는 좀 귀엽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밭을 엉망으로 만드니까 밉기는 마찬가지.


‘두더지야, 제발 빌께! 조금만 피해 주면 안 되겠니? 그럼 내가 진짜 널 귀여워해 줄 텐데...’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그리고 사진은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사이트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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