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그리고 하얀 민들레꽃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16)

* 잡초, 그리고 하얀 민들레꽃 *



먼저 질문부터 하자. ‘쑥, 냉이, 고들빼기’는 잡초일까 아닐까?
시골에 살지 않으면 쑥은 쑥떡과 쑥국으로, 냉이는 무침과 국으로, 고들빼기는 김치로 담을 수 있으니 잡초 아닌 나물이라 답하리라.
그러면 정답은? 잡초도 되고 나물도 된다. 나물에 대한 설명은 할 필요 없으니 잡초가 될 때의 예를 들어 보자. 잔디밭에 쑥이 솟아났다면, 겨울초 심은 텃밭에 냉이가 자리 잡았다면, 상추 심은 틀밭에 고들빼기가 내밀었다면?
다 없애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먹을 수 있게 키우는 ‘남새’(산과 들에 저절로 나서 자라는 풀인 ‘푸새’와 대립)가 자람을 방해하니까. 하기야 잡초의 ‘雜’은 ‘뒤섞인’이란 뜻 말고도 ‘번거롭게 만들다’란 뜻을 지니니까, 밭을 번거롭게 만드는 일을 애초에 뿌리 뽑아야 한다.


116-2.jpg (노란 민들레꽃은 서양민들레꽃임)



요즘 하는 일이 바로 그거다. 즉 남새밭에 나는 잡초들, 특히 ‘쑥과 냉이와 고들빼기’를 보이는 족족 뽑아 없앤다. 그럼 민들레는 어떨까? 민들레김치 담거나 민들레겉절이를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뽑아 없애야 하니 잡초임이 분명하다.
더욱 밭에다 일부러 민들레를 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마 있다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받을 테니까. 헌데 요즘 나는 민들레 가꾸기에 열심이다. 일부러 일정한 공간의 밭에 옮겨 심어 키운 민들레에 물 주고 살핀다.

누구든 이즈음 산과 들에 나가 고개 살짝 수그리고 걸으면 길가나 둑마다 노오란 민들레가 눈에 가득 담긴다. 어제 보이지 않던 곳에 노란 꽃이 활짝 피고, 어제 노란 꽃이 홀씨로 변해 바람 불기만 기다리니 바야흐로 민들레 천국이다.
아마도 내 짧은 식물 지식에 가장 번식력 강한 잡초를 든다면 서슴없이 민들레다. 한 번이라도 민들레 홀씨를 불어 날려본 적이 있다면 동의하리라. 그 가벼운 홀씨를 ‘후!’ 하고 불면 천지사방으로 퍼져 이내 주변을 민들레 세계로 만든다. 아니 ‘노랑천국’을 이룬다.


116-3.jpg (활짝 피어나면 흰꽃인지 노란꽃인지 구분 못함)



그러니 민들레를 보는 족족 뿌리 뽑거나 뽑을 도구나 시간 없으면 발로 꽃을 으깨서라도 홀씨 맺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하건만 공들여 민들레를 키우고 있으니... 아니 따로 거름 주지 않으니 키운다는 표현은 맞지 않으리라. 그럼 관찰한다고 해야 할까.
바로 ‘하얀 민들레’ 때문이다. 하얀 민들레? 이미 아시는 분이 많겠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노란 민들레꽃은 외래종이다. 그에 반해 아주 드물게 보이는 하얀 민들레꽃은 토종이다. 희한하게도 외래종이 들어오면 대부분의 토종은 멸종하거나 비실비실한다.

민들레는 원래 탁월한 번식력에다 끈질긴 생명력까지 장착한 말 그대로 전천후 잡초다. 잡초는 대부분 번식력이 뛰어난데 그 가운데서도 민들레의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꽃 하나에 홀씨가 백 개쯤 붙어 날아다니니까.
게다가 밟히고 짓눌려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질긴 생명력은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민초에 곧잘 비유돼 왔다. 얼마나 끈질긴지를 보려면 도시 아스팔트 틈새나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 틈 속을 보면 안다. 그 좁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자란다.
요즘의 민들레는 번식력과 끈질긴 생명력에다 한 개 더 첨단무기를 장착했다. 전엔 봄에만 피었는데 이젠 겨울을 빼놓곤 세 계절 다 핀다. 봄여름 가을까지 다 피니까 더욱 그 퍼짐은 막을 길 없다. 작년엔 12월 초 핀 꽃도 보았으니 어쩌면 겨울에도 피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두렵다.


116-7.png (토종 하얀민들레꽃)



그나마 다행인 건 요즘 마을 한 바퀴 걷다 보면 하얀 민들레꽃이 더러 보인다. 분명 예년에는 잘 볼 수 없었건만. 작년에 우리 집 올라오는 길목에 하얀 꽃 한 송이 핀 걸 옮겨 심었더니 올해 잊지 않고 피었다.
벌써 홀씨 한 번 맺혀 뿌렸으니 운 좋으면 하얀 민들레꽃밭 만들려는 계획이 성공할지 모르겠다. 이미 내 눈에 하얀 민들레꽃밭이 담긴다. 그 속에 날아오는 나비는 노랑나비보다는 배추흰나비가 더 어울리겠지.

어저께 아내가 화장실 간 사이에 카톡이 요란히 울려 보았더니 단톡방 민들레가 떴다. 아마 모임 이름이 민들레이리라. 그러고 보니 아내 모임 말고도 민들레란 모임 이름을 여럿 들은 것 같다. 뿐이랴, 민들레 민박, 민들레 뜨락, 민들레 전통찻집, 민들레 학교...
시골 사는 촌놈 처지에선 민들레가 좀 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해도 만약 는다면 하얀 민들레꽃이 더 많이 피었으면 좋겠고... 그러려면 토종이 외래종을 이겨내야 할 텐데 그건 좀 어려워 보인다.

아, 외국에서 들어오는 녀석들은 물고기든 꽃이든 다 억센가? 왜 토종은 약하기만 한가?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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