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17)
<이야기 하나>
이웃 마을에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경주 한 궁벽한 곳에 삼백 년 전부터 같은 성씨가 모여 마을을 이룬, 소위 집성촌(集姓村)에서 생긴 일. 원래는 모두 가까운 친척들만 모인 마을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도시에서 하나둘 공기 좋고 물 맑다고 하여 들어와 전원주택을 짓게 되었습니다.
집성촌은 외지인과 마찰이 좀 있는 편이라 하나 이곳도 사소한 다툼이야 있었지만 비교적 잘 어울리며 살았습니다. 주민 행사인 마을수도 정수 작업 하는 날엔 함께 수원지로 올라갔고, 마을길 정화 작업날엔 모두들 예초기 빗자루 들고 나와 협조했으니까요.
참, 마을길 정화 작업 얘기를 더 해야겠군요. 이 마을은 외부도로와 좀 떨어져 1km는 내려와야 집이 보이는 그런 산골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니까 도로에선 마을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들어오면 삼십 여 가구 사는 조그만 시골마을입니다.
문제는 해마다 1km에 이르는 마을 들어오는 길을 그냥 두면 잡초 우거져 차는 물론 사람도 다니기 힘듭니다. 그래서 여름에 네 번 정도 풀베기 해야 하는데, 예초기에 익숙한 어르신들이 점차 나이 들면서 힘에 부쳐 해마다 횟수가 줄어들었습니다.
당연히 잡초가 무성해져 억지로라도 풀을 베야만 했는데 다들 땡볕에 자기네 논둑과 밭둑 예초기 돌리고 난 뒤 마을길까지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김 씨 성을 가진 오십 대의 젊은이(?)가 이사 오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한 적 없건만 혼자서 며칠이고 풀을 베는 바람에 네 번 정도 해야 할 일이 단 한 번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다들 만날 때마다 칭찬했습니다. 일부러 힘들일 필요가 없었고 한 번 나와 공동작업하는 날은 마을잔치 하는 날이 되었으니까요.
김 씨는 다음 해에도 또 다음 해에도 예초길 신나게 돌렸습니다. 사람들은 칭찬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의상 수고했다는 정도로 그쳤습니다. 심지어 세 번을 김 씨가 책임져 주는 그 일이 마땅히 그가 해야 할 일인 양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다섯 해가 흐르는 동안 마을길은 단 한 사람 때문에 깨끗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어깨에 ‘회전근개’가 찢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병에 걸리면 근육을 붙이는 수술을 해야 되고, 수술 후에도 한동안 팔을 써선 안 됩니다.
그 해 마을 사람들은 몇 년 간 편하게 지냈던 그 일을 힘들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음 해가 되자 김 씨는 어깨를 많이 쓰면 다시 고장 난다고 의사에게 말을 들었다며 예초길 들지 않겠다고 하자 뒤에서 이런 말들이 튀어나왔습니다.
“아니 어깨 좀 아프다고 풀 벨 수 없나!”
“다 김 씨 믿고 있었는데 참 못 믿을 사람이네.”
<이야기 둘>
인터넷 뉴스에서 읽은 이야깁니다.
한 시골 마을에 투스타, 즉 별 두 개 소장 출신이 퇴직한 뒤 전원주택을 왕궁처럼 짓고 들어왔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날마다 모여 그 집을 우러러보았습니다. 워낙 품격이 다른 집이었으니까요. 건축비만 5억 들인 개량 한옥이었답니다.
그리고 주인이 장군 출신임이 이내 소문났습니다. 순종 진돗개 두 마리를 몰고 산책 나오다 만나게 되면 마을 사람들은 절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산골에선 그렇게 높은 사람 보기 힘들잖아요. 여기에 장군은 오히려 마을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원래 나름 인격을 갖춘 사람이었나 봅니다.
얼마 시간이 지난 뒤 장군이 왕궁에 출장뷔페 불러 한 턱 크게 냈습니다. 앞으로 몇 년을 함께 살지 몰라도 사이좋게 지내자는 뜻을 담았겠지요. 그 뒤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자기 집에 보름에 한 번씩 음식을 대접하고 술을 마시면서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 생겨났습니다. 술 취한 마을 사람이 장군의 어깨를 툭툭 치기도 하고 높임말에서 평대의 말로 바꾸었습니다. 거기까지는 장군도 별로 거리낌 없었다고 합니다. 헌데 집에서 식사 대접할 때마다 부인도 함께 음식 차림 거드는 일을 했답니다.
장군 부인도 장차 이 마을에 살려면 이렇게 낯을 익혀야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번의 술자리를 거치고 난 어느 날, 한 사람이 마침 그때 술상에 요리를 갖다 놓던 장군의 부인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사모님, 제가 장군님의 부인에게 술 한 잔 받아먹을 수 있습니까?”
장군의 부인은 별생각 없이 따러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른 사람이 잔을 내밀고. 이런 일이 잦아지자 장군이 부인을 참석하지 않게 하자, 한 사람이 한 마디 했답니다. 왜 사모님 오지 않느냐고.
장군이 ‘저만 있어도 되지 않느냐’고 하자, 그 사람이 “어허, 우리가 술 마시는 것도 좋지만 여자가 술 따러줘야 더 맛있지.”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장군은 다음부턴 마을 사람과 거리를 두고 아예 술자리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뒤에 이어진 일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겠지요.
“지가 장군 출신이면 군대서 장군이지 어디 여기서 뻐기려고 해!”
“새끼, 군대 있을 땐 내가 얼마나 상관한테 당했다고.”
“어이 이사장, 자네 땅 측량 다시 해 봐. 아무래도 저치 집이 자네 땅을 침범한 것 같애.”
<이야기 셋>
아는 이로부터 들은 시골 면사무소 근처 ‘돼지국밥 집 부부’ 이야깁니다.
도시에서 살며 장사하다가 하도 손님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돈은 적게 벌더라고 마음은 좀 편해보자는 생각에서 시골로 옮긴 40대 부부가 주인공입니다. 처음 예상대로 확실히 수입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한 식구 먹고살 정도는 돼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음식점 문을 열려고 하는데 저쪽에서 이쪽을 보다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넘겼는데, 육수를 끓이다 잠시 쪽창 사이로 바깥을 내다보는데 또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봇대에 기대 있지만 이곳을 보는 게 분명한지라 의아해했습니다. 해도 오가는 손님들에 집중하느라 잊었답니다. 다음날에도 점심 손님들 생각하며 문을 열려하다가 문득 든 생각에 아내가 눈을 그 전봇대로 주었답니다.
예감은 적중했고, 어제처럼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 돌리는 것까지 똑같아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에 남편과 얘기했답니다. 둘이 대화를 하면서 허름한 차림, 왠지 핏기가 없는 얼굴에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할머니란 결론을 내렸답니다.
직접 식사 대접하고 싶으나 자꾸 고개를 돌리는 걸로 보아 자존심이 센 것 같아 고민하다 수소문해 할머니를 잘 안다는 철물점을 찾아갔습니다. 할머니는 예전 시장 근처에서 신발가게를 하며 제법 잘 살았답니다. 헌데 아들이 사업한다고 제 엄마 가게와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선 다 날려버렸답니다.
그 뒤 집도 일자리도 잃은 할머니가 요행히 산 중턱 논 두 마지기(300평) 남았는데 거기다 거적과 함석을 대충 덮어 지낸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산에서 내려와 폐지 주워 판 적은 돈으로 쌀을 사갔는데, 요즘은 몸이 좋지 않아 그것도 제대로 못한다는 내용. 기초생활수급자 신청하면 안 되느냐 했더니 아들이 엄연히 호적에 남아 있어 그것도 불가능하다는 말씀.
그 사실을 알게 된 부부는 쌀과 반찬을 준비해 할머니 집으로 찾아가 인연을 맺었습니다. 물론 읍내 내려오면 돼지국밥을 대접했고. 그렇게 몇 년을 살던 중 하루는 남편의 주민등록번호와 집 주소를 물어 별생각 없이 써주었다고 합니다.
다시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할머니가 읍내 내려오지도 않아 집을 방문했을 때 사람 살지 않는 것처럼 썰렁해 철물점에 물었더니 돌아가셨답니다. 그리고 두 달쯤 뒤 시내 모 변호사 사무실에서 연락 와 갔더니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논 두 마지길 부부에게 넘긴다는 내용을 전했습니다.
사실 그 논은 산중턱에 있고 맹지(盲地 : 도로 안 나 쓸모없는 땅)이기에 돈의 가치가 전혀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래도 부부는 아들보다 자기들을 먼저 생각해 준 할머니의 정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장 팔기보다는 잊은 듯 놔두기로 마음먹고.
코로나가 터지고 한 가족 겨우 먹고살기 적당하던 돼지국밥집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실의에 빠져 있던 부부에게 부동산 업자가 찾아온 건 그때입니다. 길이 없던 그곳에 풍력발전기를 세우기 위해 길이 나면서 맹지에서 대지로 바꿔도 되는 쓸모 있는 토지가 되었다는 소식.
<끝내며>
'호의를 베풀면 호구가 된다'는 말은 어쩜 맞는 말입니다. 허나 한편 맞지 않는 말이기도 합니다. 호구될까 겁나 호의를 베풀지 않으려는 마음도 이해합니다. 저도 그럴 때가 종종이니까요.
다만 하루쯤 생각거리는 되겠지요. ‘호의를 베풀면 정말 호구가 될까?’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