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대신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18)

*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대신... *



대학 입학 후 첫 수업 시간이 철학이었다. 그때 교수님이 던진 말씀. 첫 마디,
“너희들은 오늘부터 무지의 화신임을 자각해야 한다. 여태까지 배워온 지식을 모두 다 시궁창에 내다버리고 새로 깨우쳐야 한다.”
말씀에 뭔가 깨우치기 위해 두 귀 활짝 열었으나 철학 시간이 무척 괴로웠다. 강의하는 내용이 재미없는데다 또 도대체 알맹이가 뭔지 도통 알 수 없었으니까. 고등학교 다니면서 철학자의 멋진 명언만 외웠던 터라, 재미있고 쉽고 귀에 쏙 박히는 수업을 기대했건만...


그래서 내 머릿속에 철학 시간에 배운 철학다운 철학은 하나도 안 남았고 명언만 남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 말을 한 사람이 스피노자로 알고 있었는데, 새로 발견된 자료에 따르면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한 말이라고 한다. 스피노자보다 200년 전 살았던 루터가 어릴 때 쓴 일기장에 이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하니 의심할 바 없겠다.




지난 월요일부터 새로 일을 벌였다. 현재 우리 집 마당 한가운데 연못이 있는데, 그건 연못 흉내를 냈을 뿐 실제로는 아니다. 즉 큰 플라스틱 세 통에 물 부어 수련과 부레옥잠을 담았을 뿐이니까. 문제는 통이 좁다 보니 수련이 잘 피지 않는다.
어느 날 무심코 유튜브를 보다 연못 만드는 장면이 나오기에 눈을 주니 큰돈도 들이지 않고 저 정도라면 나도 만들 수 있겠다고 여겨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대뜸 튀어나왔다.


“마, 그만두소. 나중에 몸살 나 아프다고 하지 말고.”
그 말에,
“쉬엄쉬엄 하지. 나도 체력이 딸린다는 걸 잘 아는데, 뭐.”
다시 아내가,
“말라꼬 일 벌일라능교? 집 팔려고 내놓았으면서.”
“아 이 사람아, 마르틴 루터가 한 말 몰라?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

(연못 파기 위해 퍼낸 흙)



그러고도 이리저리 말이 오갔지만 결과는 나의 승리. 허나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다. 아내가 몇 가지 조건이 달았으니...
1. 일을 하는 중간이나 끝내고 나서 아프다는 말을 절대 해선 안 된다.
2. 돈을 한 푼도 들여서는 안 된다.
3. 전보다 마당이 보기 싫어서도 안 된다.



사실 세 가지 다 지키기 희박한 약속이다. 아니 하나도 지킬 수 있을까. 그러나 이왕 칼 뽑았으니 짚단이라도 잘라야 하지 않는가. 일단 구덩이를 파야 했다.

삽차 - '포클레인'을 순화한 우리말 -를 이용하면 십 분이면 끝날 일이지만 진짜 삽으로 파려면 사흘은 족히 걸린다. 정말 월요일 시작해서 수요일 끝났으니 사흘이 걸린 셈이다. (아마 일 잘하는 장골이라면 한 나절만에 끝냈겠지만)


(수련 키울 목적의 연못이라 작게 만듦)



퍼낸 흙을 보니 과장 잘하는 중국인이 봤으면 태산만큼 쌓였다고 했을 만한 분량이다. 아무리 적게 봐도 1톤 트럭 두세 대는 가득 채우지 싶다. 다음 물이 새지 않도록 콘크리트 치는 대신 방수포를 깔기로 했다.

(바닥에 시멘트로 마감하면 수생식물이나 물고기에 좋지 않다고 하여) 마침 이웃에 얻은 두꺼운 깔판에다 재작년 벗이 와 마당에서 하룻밤 야영하곤 놓아두고 간 방수포가 있으니 돈 들 일은 없다.


그저께 흙을 다 퍼내고 난 뒤 거진 해가 다 질 무렵에서야 방수포를 깔고 맨 밑바닥에 모래를 넣었다. (흙만 넣으면 잘 썩는다고 하여) 흙 넣은 일도 만만치 않다. 퍼낸 흙을 그대로 넣는다면 별일 아니나, 깨진 돌멩이라도 들어가면 방수포 찢어질 위험 있으니 일일이 체로 쳐 흙만 골라 넣어야 한다.
어제 흙을 넣고 대충 마무리 지으려 했는데, 온종일 비가 와 일 못하고 오늘에야 마무리하려 한다. 아내가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만하면 되었다는 표시다. 일단 모양이 합격했고, 돈도 들지 않았으니 둘 다 합격한 셈이다. 허나 막노동 뒤 곳곳에 절로 쑤시는 통증에 '아무렇지' 않은 시늉하는 게 참 힘들다. 그래도 아프다고 하는 순간 약속이 깨어지니까 억지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두릅)



사실 연못은 전원생활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로망이다. 물레방아 돌아가고, 물고기 뛰놀고, 연꽃 활짝 핀 연못을 좋아하지 않을 리 뉘 있으랴. 허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연못 만들면 꼭 찾아드는 불청객이 있으니. 물 있고, 먹이 되는 개구리가 있고, 둘레에 돌이 있다면 꼭 찾아드는 놈.
무엇일까? 바로 뱀이다. 물과 개구리가 녀석을 유혹함은 선뜻 이해되나 둘렛돌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쓴다. 허물 벗기 위해서다. 처음 이사 온 그 해 연못을 만들었다가 뱀과 그 허물을 보고 기겁한 아내 때문에 연못을 다시 없애야 했다.

다행히 지금은 뱀 퇴치용 약이 나와 주변에 뿌려두면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이 맞으리라. 제초제 친 잔디밭엔 오지 않으니까. 그래서 이런 말을 한다. 반딧불이와 가재와 뱀이 사는 곳이라면 무공해 지역이라고. 이 셋 모두 농약 친 곳엔 절대 살지 못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제 연못 만드는 일이 끝나면 옹벽 위 언덕에다 ‘두릅’ 묘목 사와 심을 예정이다. 그러면 아내가 또 이리 말하리라.
“아니 지금 심어봐야 집 팔리면 우리가 따먹지도 못할 텐데...”
그때 나도 준비된 말이 있다. 스피노자의, 아니 루터의 말.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 두릅 묘목을 심겠다.”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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