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4편 : 고재종 시인의 '날랜 사랑'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고재종 시인 편 ♡
- 날랜 사랑 -
장마 걷힌 냇가
세찬 여울물 차고 오르는
은피라미 떼 보아라
산란기 맞아
얼마나 좋으면
*혼인색(婚姻色)으로 몸단장까지 하고서
좀 더 맑고 푸른 상류로
발딱발딱 배 뒤집어 차고 오르는
저 날씬한 은백의 유탄(流彈)에
푸른 햇발 튀는구나
오호, 흐린 세월의 늪 헤쳐
깨끗한 사랑 하나 닦아 세울
날랜 연인아 연인들아
- [날랜 사랑](2000년)
*. 혼인색(婚姻色) : 동물이 산란기에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수컷의 몸 빛깔이 일시적으로 화려하게 변하는 현상
<함께 나누기>
지금은 보기 쉽지 않지만 처음 달내마을로 이사 왔을 때만 해도 개울에 가면 피라미를 흔히 볼 수 있었지요. 그 피라미들의 가장 볼 만한 장면은 저녁 무렵이면 한 자(30cm) 남짓한 작은 보(洑)를 튀어 올라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녁마다 그런 현상이 보이기에 저 위에 뭐가 있나 했더니 나중에 새로운 먹이 사냥과 짝짓기 전의 몸풀기(?) 장면이라나요.
오늘 시는 산란기를 맞아 수면 위로 뛰어올라 여울물을 박차고 상류로 올라가는 은피라미 떼의 역동적인 생명력을 예찬하는 노래입니다.
(참고로 은피라미는 피라미의 종류 이름이 아니라 햇빛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피라미라는 뜻)
“장마 걷힌 냇가 / 세찬 여울물 차고 오르는 / 은피라미 떼 보아라”
물살을 가르며 여울을 거슬러 오르는 은피라미 떼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이 그대로 잘 드러납니다. 그 작은 몸짓이 상류로 박차오르는 그 역동적인 모습에 절로 생명의 힘을 느낄 수밖에요. 게다가 번식기에 이르러 피라미 피부에 나타나는 ‘혼인색’으로 몸단장까지 했으니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발딱발딱 배 뒤집어 차고 오르는 / 저 날씬한 은백의 유탄(流彈)에 / 푸른 햇발 튀는구나”
‘일단 시는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나름의 시 이론에 매여 있는 저로선 이 작품은 정말 맛있습니다. ‘생동감’, ‘역동성’, ‘약동’, 어떤 수식어를 다 넣어도 이 시가 가진 맛을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그저 팔딱팔딱 튄다고 할까요.
피라미가 생기 있게 물을 박차며 튀어 오르는 그 장면을 ‘은백의 유탄’에 비유했으니. 시인은 마치 우리를 개울로 인도해 정말 은피라미 떼가 수면 위로 튀어 올라 햇살에 반짝이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오호, 흐린 세월의 늪 헤쳐 / 깨끗한 사랑 하나 닦아 세울”
살다 보면 누구나 흐린 세월(고난의 늪, 시련과 역경의 시간, 풀리지 않던 고뇌의 과정)의 아픔을 한 번쯤 다 겪었을 터. 거기서 우리는 참된 사랑은 맑고 깨끗한 상태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월이라는 진창을 헤쳐 나와야 얻을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결국은 사랑이 깨끗해지려면 스스로 정화해나가면서 완성으로 향하는 능동적인 과정이어야 한다는 거지요.
“날랜 연인아 연인들아”
단순히 읽으면 날랜 은피라미 떼의 사랑이기에 ‘날랜 사랑’이요, ‘날랜 연인’이 됩니다. 한 번 더 속으로 들어가면 사랑의 쟁취 역시 날래야 한다는 뜻으로 새깁니다. 미적거리면 사랑은 흔적 없이 날아가 버리니까요.
밍기적거리다가(충, 사), 뭉기다가(전, 사), 전주다가(경, 사), 굼작거리다가(강, 사), 몽니부리다(제, 사) 놓친 사랑은 얼마나 많은지...
#. 고재종(1957년생) : 전남 담양 출신으로 1984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 농고 졸업이 최종학력임이며, 권위 있는 ‘소월시문학상’ (16회)을 받았으며, 현재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살며 농촌 현실을 담은 시를 많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