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 애증의 열매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24)

* 산딸기, 애증의 열매 *



성당 교우 가운데 횟집 하는 교우가 있어 얘기를 자주 나눈다. 오래전 어느 날, "참 기가 차서..." 하며 꺼내놓은 얘기는 다음과 같다.

어린 아들이 날마다 치킨 아니면 피자 먹고 싶다고 시위를 한단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들이 회덮밥 먹고 싶다, 물회 먹고 싶다, 전복죽 먹고 싶다 하면 좀 좋으련만 꼭 먹고 싶은 음식이 치킨 아니면 피자라 했다.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들 요리 해 달라면 돈도 안 들고 좋을 텐데 자꾸 우엣것을 원하니 어쩌란 말이냐는 내용.

재작년까지 오디 철이 되면 나는 오디보다 산딸기가 먹고 싶어 일부러 포항 장기면 산딸기 농원까지 가 몇 kg씩 사 온다. 그때마다 아내의 말, "아니 다른 사람들은 우리 집 오디가 산딸기보다 더 맛있다고 사 먹으러 오는데, 당신도 참..."
그러고 보니 횟집 하는 교우 아들과 내가 닮았다. 그 아들은 회만 먹으면 생활비 축 덜 나는데 한사코 치킨과 피자 찾았고, 나는 오디만 먹어도 되는데 일부러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는 산딸기를 찾았으니 별나다는 소릴 들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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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년부터 산딸기를 사 먹으러 가지 않는다. 4년 전 심은 복분자가 익은 과실을 내놓는 데다 산딸기도 심심찮게 공급되기 때문이다. 혹 산딸기를 이웃에서 갖다 주는가? 아니다. 바로 우리 집 텃밭 위 언덕에서 엄청나게(?) 생산되기 때문이다.
아니 산딸기가? 당연히 의문이 들리라. 산딸기 농원처럼 일부러 심은 뒤 거름 주고 비료 주고 물 줘 얻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산에서 나왔다면. 그럼 산딸기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이런 말을 듣기 전에 답부터 먼저 말하자면 '아니다'. 따먹을 때 딱 한 번 좋고 나머지 아홉 번은 전혀 좋지 않으니까.

산골에 살다 보면 정말 귀찮은 녀석들이 있다. 몇 번 언급한 적 있는 ‘칡넝쿨’과 ‘찔레덩굴’과 ‘으름덩굴’은 참 귀찮다. 한 번 뿌리내리면 도저히 제거할 수 없으니까. 거기에 하나 더 끼워 넣는다면 바로 산딸기다. 시골 사람 괴롭히는 정도가 찔레덩굴과 우열 가리기 힘들다면 이해가 될까?
다만 산딸기는 풀이요, 찔레는 나무라는 점에서 차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가시가 있으니 제거하려면 아픔을 각오해야 한다. 또한 번식력이 엄청나다. 작년까지 저만큼이었다면 올해 보면 이만큼 다가와 있다. 눈앞에서 번져가는 모습이 보인다 하면 좀 과장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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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언덕 위에 처음 산딸기가 나타난 지 5년도 채 안 됐다. 그전에야 뒷산에선 흔히 보였지만. 처음 나타나 열매 맺었을 때가 생생히 떠오른다. 고 새빨간 열매를 따서 입에 넣었을 때의 새콤함과 달콤함도.
확실히 재배하는 산딸기와 비교할 수 없다. 야생 산딸기와 재배 산딸기는 맛에서 차이나지만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인공의 맛이 전혀 가미 안 된 순수 날것의 맛이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 맛본 뒤로 장기면을 찾아가지 않는다.
한 해 지나자 더욱 많이 퍼져 언덕에 올라 손만 뻗치면 한 사발 그득 담긴다. 산딸기 좋아하던 입맛 아니던가. 그런데 그때 이미 주의해야 했다. 저렇게 번식력 좋은 걸 그냥 두면 큰일 난다고 경각심을 지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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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엔 전 해보다 두 배 더 많이 나더니 작년에는 재작년의 두 배 이상 더 퍼졌다. 그래서 아차 싶어 작년 가을에 제법 많은 양의 산딸기를 베었다. 그럼 되지 않느냐고? 아니다. 이 녀석은 뿌리로 번식하기 때문에 뿌리를 완전히 뽑아버리지 않는 한 절대 죽지 않는다.
이쯤 되면 다시 의문이 치솟으리라. 그럼 아예 산딸기밭 만들어 키우면 되지 않느냐고. 맛도 괜찮겠다 수확도 많겠다, 상품으로 팔면 되지 않느냐. 아니다, 이 녀석들은 한 번 퍼지면 도무지 감당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한 해 전에 터 잡은 곳에 파고들 수 없다. 바로 가시 때문에.
발 디딜 공간 없이 빽빽하게 자라는 게 바로 산딸기 특성이다. 그러니까 바로 손 닿는 곳에 나는 것만 딸 수 있다, 아무리 산딸기가 밭을 이뤄도. 조금이라도 더 따려 욕심내 비집고 들다간 가시에 찔려 온몸이 피투성이 된다. 특히 가시가 부러져 살에 박히기라도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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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 올리면서 편하게 따는 방법이 없진 않다. 가을에 미리 잘라 내 가지와 가지 사이에 빈 공간을 충분히 두게 한다면. 그런데 대체로 산딸기는 평지보다 언덕에 많이 난다. 비집고 들어가 가지치기라면 몰라도 뿌리까지 뽑으려 들면 언덕이 위험해진다.
하기야 우리 마을 뒷산에 뽕나무가 많아 오디도 많이 달려 있다. 누구나 가서 주우면 된다. 허나 주우려 가는 사람 없다. 오디를 주우려면 높은 나무에 올라 일단 털어야 하는데 빽빽한 산림을 헤치고 들어가 털어 떨어진다 한들 아래 숲에서 몇 개나 줍는단 말인가.

결국 야생의 열매는 돌복숭아든, 오디든, 산딸기든 따기가 수월치 않다. 야생은 야생 나름의 방어벽을 구축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 집 언덕 위에 산딸기가 한참 빠알간 빛으로 유혹하고 있다. 허나 가시로 완전무장했으니 절대 만만히 보진 마시길.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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