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가 허공에 몸을 날리듯이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38)

* 거미가 허공에 몸을 날리듯이 *



며칠 전 집 뒤쪽 고사리밭에 볼일 있어 가다가 갑자기 얼굴에 달라붙는 찝찝함에 나도 모르게 놀라 소리 질렀다.

“어흑!”
손을 마구 휘저으니 거미줄이었다. 그러는데 다시 얼굴에 와닿는 이질감. 손으로 잡으니 하필 무당거미 아닌가.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아흐흑!”


봄이나 가을에는 고사리밭을 자주 드나든다. 봄에는 캐러 들어가고 가을에는 고사리 포자 잘 퍼지도록 주변 정리하러 간다. 여름에는 잡초 뽑는 일 말고는 굳이 손대지 않아도 돼 그냥 팽개쳐둔 지 한 달쯤 됐을까, 즉 장마 기간 내내 그대로 뒀다는 말이다.
시골 사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시간 지났으면 무조건 거미줄로 범벅돼 있는 줄 알고 대비해야 했건만. 해거름 무렵이라 거미줄이 흐릿해 별생각 없이 들어가다 온 얼굴에 거미줄 범벅. 게다가 무당거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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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을 한 번이라도 유심히 살펴본 적 있다면 신기하리라. 둥그스름한 모양의 방사형에 가로 세로로 아주 정교하게 짜놓은 기하학적 무늬. 얼마나 완벽한지 거기에 한 번 걸려든 먹잇감은 절대 빠져나가지 못함을 단박에 알 수 있으리라.
보통 우리는 잘 쳐놓은 거미줄만 본다. 그러면 정말 어떻게 저리도 예쁘게(?) 쳐놓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 테고. 며칠 전 호되게 당한 무당거미의 테러(?)에 갑자기 거미줄 치기 직전 상태에 대한 궁금증이 치솟았다.

즉 방사형 모양에 가로 세로 간격을 잘 맞춰 옷감 짜듯이 정교하게 짠 거미줄 말고 맨 처음 치려 할 때 모습 말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어느 정도 쳐놓은 상태에서 거미줄 완성하는 건 별로 힘 안 들 게다. 줄 치는 게 그들의 일이요 본능이니까.
그런데 맨 처음 칠 때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칠 때는 이쪽 나무에서 거미가 줄 하나를 바람에 날려 저쪽 나무에 가 닿도록 한다. 물론 이 과정도 쉽지는 않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시도하다 일단 줄 하나가 저쪽 나무에 붙으면 그때부터 거미가 본격적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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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나뭇가지라는 확실한 접지점이 있는 이런 과정은 아주 흔한 형태의 거미줄 치기다. 헌데 빨랫줄에 매달려 거미줄 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 해 날 때마다 빨래를 빨랫줄에 널어 말리는데 거미줄부터 제거한 뒤 말리니 다행히 그들의 행동을 비교적 가까이서 본다.
나뭇가지와 나뭇가지를 잇는 형태가 아니니 거미는 한 줄 길게 늘어뜨리며 아래로 내려간다. 이럴 때의 거미는 허공에 대롱대롱 달린 상태다. 비록 거미줄에 의지하고 있지만 바람이 세게 불면 줄이 늘어나다 결국 끊어지고, 그러면 어디론가 날아가 처박히는 일도 허다하다.
좀 덜 위험해 보이는 가지와 가지 사이에 첫 줄 연결하여 그 줄 타고 갈 때도 마찬가지다. 그 모습은 마치 외줄타기 장인의 모습 같다. 허나 가느다란 줄 하나에 의지해 가다 바람이 세게 불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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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거미가 땅에 처박히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지 아는 바 없다. 몸집이 작으니까 충격의 정도가 덩치 큰 생물보단 덜하리라는 정도만 알 뿐. 허나 충격이 약하다 하여 거미에겐 두려움이 없을까? 맨 처음 허공에 몸을 던질 때는 부상의 위험을 각오한 도전일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거미는 아주 가까이 두 개의 접지점 있는 곳에만 줄 치고 싶겠지만 생명 있는 존재의 삶이 어디 그런가. 최악의 상황은 언제나 주어지기 마련 아닌가. 만약 거미가 허공에 몸 날릴 때나 외줄타기 할 때 바람이 불어와 자기를 땅바닥에 내침을 두려워하여 도전을 포기한다면 거미줄은 치지 못할 터.

SNS에 작품을 올리면서 처음엔 글만 줄곧 실었다. 그러자 아는 이가 글 많으니 눈이 쉬 피로해져 끝까지 읽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유 있는 조언인 듯싶어 중간에 사진을 끼워 넣었다. 글 수준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데 (같은 사람이니까) 확실히 클릭 수는 늘어난 것 같았다.

허나 원래 글 쓰겠다 하여 쓸 때보다 지난 뒤 곰곰 생각하다 떠오른 내용을 쓰는 경우가 많은지라 그때의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인터넷 싹싹 뒤져 비슷한 이미지 끼워 맞추기. 헌데 이는 내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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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책을 정리하다 [좀머 씨 이야기]를 보고는 무릎을 탁 쳤다. 책 내용보다 사이사이 끼워 넣은 그림 보며 '바로 이거다'며 내지른 환호성.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소설 내용도 좋지만 삽화의 품격이 아주 뛰어나다. 아니 삽화 때문에 더 인정받은 소설이 아닐까?
당장 삽화 그리기 배워 글 속에 넣고 싶은 심정에 배우는 곳을 알아봤더니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엔 그런 강좌가 없어 포기했다. 헌데 보름 전 집에서 조금 떨어진 OO도서관에서 보낸 평생강좌 목록을 훑어보다가 눈에 힘을 주었다. 비슷한 프로그램이 실려 있었다.


고백하지만 나는 끈기가 매우 없다. 아내가 글 배달을 20년 넘게 하는 걸 보고 신기하다 하길래 숨 쉬기 운동도 70년 가까이 했는데 하며 넘겼다. 최근 5년 이내 도전했다가 포기한 것만 해도 몇 개나 된다. 수영, 기타, 일본어강좌(두 번 시도했으나 두 번 다 실패)...

그러니 또 삽화 그리기 한다고 하면 분명 한 마디 할 게다.

"이번엔 며칠 갈지..."

어쩌면 아내 말대로 끝맺지 못하고 며칠 만에, 아니면 몇 주 만에 발길 끊을지 모른다. 그래도 시도조차 안 한 것보단 낫지 않을까.


138-6.png ([좀머 씨 이야기] 속 삽화 - 구글 이미지에서)



빨래를 오후에 널었기에 늦게 거둘 수밖에 없어 밖에 나갔더니 거미 한 마리가 바장대(빨랫줄 버팀 장대)에 폼을 잡고 있다. 저 놈은 나름 영리하거나 약아빠진 녀석이다. 바장대를 이용하면 빨랫줄 한복판에서 허공으로 뛰어내리는 것보단 훨씬 쉬우니까.

혹시나 하여 다른 곳에 눈을 주니 역시 한 놈이 빨랫줄 가운데 버티고 있다. 두 녀석은 분명 오늘밤 거사를 치를 거다. 둘을 보면서 바장대에 붙은 놈보다 빨랫줄 한복판에 딱 버틴 채 아래를 내려다보는 녀석이 더 멋있어 보인다. 나라면 바장대를 이용하겠지만.


거미가 허공에 몸을 날리는 행위와 삽화 배우려 다닐 일은 비교거리가 안 된다. 하나는 목숨을 걸고 한다면 나는 여가 선용이니까. 허나 몸의 위험은 아니라도 마음의 위험은 느낀다. 자꾸 포기하거나 시도조차 안 하게 될 테니까. 그래서 허공에 매달려 보려 한다

그래도 혹 글 속에 내가 그린 삽화 곁들이기를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한 마디 남긴다.

"기대는 마시라!"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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