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위는 참다래가 아닙니다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39)

* 키위는 참다래가 아닙니다 *



한때 김치와 기무치의 논쟁이 심각했지요. 우리는 ‘kimchi(김치)’로, 일본은 ‘kimuchi(기무치)’를 CODEX(국제 식품규격 위원회)에 등록하기 위해 서로 로비하다가 CODEX에선 종주국인 우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래도 아직 세계 시장에서는 ‘kimuchi(기무치)’로도 팔리고 있고, 뭘 모르는 우리 국민 가운데는 그게 정식상표인 줄 아는 이도 꽤 됩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세계 공식 상표엔 기무치는 없고 김치만 있습니다. 이처럼 사물의 이름은 그 존재 가치만큼이나 중요성을 가집니다.


139-4.png (다래)



얼마 전 들이닥친 태풍 카눈에 우리 집 무지개문이 넘어지면서 거기 달린 키위나무 또한 피해 입었다는 글을 배달했습니다. 그날 우리 집에 들른 이웃 사람이 떨어진 키위를 보더니 “야, 참다래가 참 아깝게 됐다!”며 저보다 안타까워했습니다.

사실 보름만 더 익을 시간 가졌다면 비록 떨어졌다 해도 말리면 숙성이 돼 먹을 만할 텐데 너무 이르게 떨어져 그냥 다 버려야 했습니다. '저 작은 나무에 설마...' 해도 한 그루에서 나오는 키위가 상당합니다. 사과 상자 크기로 두 상자는 거뜬히 나왔으니까요.

모르는 분들을 위해 얘기하자면 농수산물 시장에 가도 이젠 ‘키위’라 하지 않고 ‘참다래’라 부릅니다. 참다래, 참 좋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래보다 ‘참’이 붙으니 더 그럴듯하고요. 기름보다 참기름이 더 낫듯이.


139-2.jpg (다래)



요즘 마을길 걷다 보면 진짜 야생 다래를 많이 봅니다. 한창 익을 때가 되어 떨어진 녀석들도 가끔 보입니다. 제가 사는 마을을 ‘달내마을’이라 하는데 한자로는 ‘달 月’ ‘내 川’을 써서 ‘月川마을’입니다.

아시다시피 일제강점기 때 토박이말로 전해오던 마을 이름을 행정 편리를 도모한다는 이름 아래 모두 한자로 바꿨습니다. 예로 ‘널다리’는 ‘판교(板橋)’로, ‘두물머리’가 ‘양수두(兩水頭, 지금은 양수리)’로, ‘꽃바위’는 ‘화암(花巖)’으로...

우리 마을 유래를 적어놓은 간판엔 지명 유래가 둘입니다. 하나는 ‘달(月)이 냇물(川)을 따라 흘러간다’ 하여 붙였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이 마을에 ‘다래’가 워낙 많아 원래 ‘다랫골’이었는데, 다래에 어울리는 한자 못 찾아 발음이 비슷한 ‘달내’인 ‘월천’으로 만들어 되었다는 설.
달빛이 냇물을 따라 흘러가기에 달내마을이라는 이름도 예쁘지만 저는 다랫골이 원래 이름이었다는 설을 더 믿습니다. 왜냐면 지금도 깊은 산속 들어가지 않더라도 바로 도로 옆에 다래가 주렁주렁 달린 다래덩굴을 자주 보니까요.


139-3.PNG (위는 다래, 아래는 키위)



그런데 토종다래가 이름을 잃고 그 자리를 키위가 차지해 참다래라 하는 세태가 참 못마땅합니다. 왜 키위가 참다래가 되어야 하나요? 이름에 ‘참’이 붙으면 ‘진짜 제대로 맛을 내는’이란 식으로 읽게 됩니다.

두릅에도 ‘참두릅’ ‘개두릅’이 있고, 나물 가운데 정말 맛있는 나물에 참이 붙어 ‘참나물’이 되었듯이. 오죽하면 소주 이름도 이슬보다 ‘참이슬’이, 사랑에도 ‘참사랑’이, 교육도 '참교육'이 더 멋져 보이지 않습니까?

허나 다른 호칭엔 몰라도 키위에는 ‘참’을 붙여선 안 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키위는 토종이 아니라 외래종이니까요. 외래종이 토종을 밀어내고 마트 진열대에 놓이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름까지 빼앗아가는 건 반대합니다.


139-5.jpg (키위)



고등학교 나온 분이라면 다 아는 고려가요 「청산별곡」 제1연을 한 번 봅시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이 작품은 머루랑 다래 먹으며 청산에 살고 싶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이처럼 머루와 다래는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의 삶과 연결돼 있습니다. 당시 선조들에게 뒷산에 오르기만 해도 머루와 다래가 주렁주렁 열려 허기지면 요기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을까요?


pixamio-vitamin-5164183.jpg (키위)



사실 현재 사는 마을로 이사 온 첫 해와 둘째 해엔 우리 집 바로 언덕 위엔 머루도 다래도 무척 많이 나 머루주를 담고 다래주도 담았습니다. 그러다 한 해 태풍을 맞으면서 타고 오르던 나무가 꺾어지면서 머루가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아직 다래는 남아 쓸쓸함을 달래줍니다.
키위를 참다래로 이름 붙임은 상인이 손님 끌기 위한 수단일지 모르나 방송이나 언론에서까지 이런 표현 쓰면 안 됩니다. 키위는 키위일 뿐 절대로 참다래가 될 수 없습니다. 굳이 이름 붙이려면 서양에서 온 다래란 뜻인 ‘양다래’로 불러야 합니다.


*. 키위가 참다래로 팔린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분들에겐 좀 낯선 내용이 되겠군요. 허나 시장이든 백화점이든, 심지어 온라인에서든 이제 키위 대신 참다래란 용어가 대세가 된 듯합니다.


*. 오늘 글은 예전에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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