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한 소통(496)

제496편 : 곽재구 시인의 '받들어 꽃'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곽재구 시인 편 ♡


- 받들어 꽃 -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
전쟁놀이를 한다
장난감 비행기 전차 항공모함
아이들은 저희들 나이보다 많은 수의
장난감 무기들을 횡대로 늘어놓고
에잇 기관총 받아라 수류탄 받아라
미사일 받아라 끝내는 좋다 원자폭탄 받아라
무서운 줄 모르고
서로가 침략자가 되어 전쟁놀이를 한다
한참 그렇게 바라보고 서 있으니
아뿔싸 힘이 센 304호실 아이가
303호실 아이의 탱크를 짓누르고
짓눌린 303호실 아이가 기관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받들어 총을 한다
아이들 전쟁의 클라이맥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했듯이
아버지의 슬픔의 클라이맥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떠들면서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과 학용품 한 아름을 골라주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얘기했다
아름답고 힘 있는 것은 총이 아니란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별과
나무와 바람과 새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 늘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같은 것이란다
아파트 화단에 피어난 과꽃
한 송이를 꺾어 들며 나는 조용히 얘기했다
그리고는 그 꽃을 향하여
낮고 튼튼한 목소리로
받들어 꽃
하고 경례를 했다
받들어 꽃 받들어 꽃 받들어 꽃
시키지도 않은 아이들의 경례 소리가
과꽃이 지는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흔들었다.
- [받들어 꽃](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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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기>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 전쟁놀이를 합니다. 40년 전이면 가능한 얘긴지 몰라도 지금 같으면 어림없는 일. 일단 아파트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습니다. 그 시간에 다들 영수학원 같은 보습학원 다니느라 바빠서. 그럼 전쟁놀이 안 하니까 좋을까요?
아이들이 하는 전쟁놀이가 만만치 않습니다. 장난감 비행기, 항공모함. 전차 같은 무기들을 죽 늘어놓고 전투를 벌입니다. '기관총 받아라, 수류탄 받아라, 미사일 받아라' 하다가 어디까지 갈 건인지 '원자폭탄 받아라'까지 나옵니다.

"무서운 줄 모르고 / 서로가 침략자가 되어 전쟁놀이를 한다"

화자는 순간 섬찟합니다. 전쟁놀이 하는 아이들을 보며, 사람 죽임을 전제로 하는 무서운 전쟁을 아이들이 ‘놀이’로 즐긴다는 게 놀랍습니다. 아이들은 당연히 무서움을 모르지요 전쟁이 어떤가를 제대로 보고 듣지도 않았으니 이렇게 즐길 수밖에요.

"아뿔싸 힘이 센 304호실 아이가 / 303호실 아이의 탱크를 짓누르고 / 짓눌린 303호실 아이가 기관총을 들고 / 부동자세로 받들어 총을 한다"

전쟁은 적을 죽임으로 끝나지 않고 그 폐해가 삶 곳곳에 스며듭니다. 그게 전쟁놀이가 돼도 마찬가집니다. 上下가 갈라지면서 명령하는 자와 복종하는 자가 나옵니다. 가관인 건 복종 방식도 군대식입니다. '받들어 총!' 패자가 승자에게 기관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받들어 총’으로 복종을 표시합니다. 이제부터 나는 당신의 어떤 명령이라도 받아들이겠다고.

"아름답고 힘 있는 것은 총이 아니란다 /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 늘 피어나는 / 한 송이 꽃과 같은 것이란다"

‘총’이 폭력과 행패를 상징한다면 '꽃'은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응당 존중받아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아이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가르쳐줄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나는 전쟁보다는 평화를 가르치고, 증오보다는 사랑을 가르칠 것이다.' 하는 말을 상기하면서.

"아파트 화단에 피어난 과꽃 ~~~ / 그 꽃을 향하여 ~~~ 받들어 꽃 / 하고 경례를 했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총이 아니며, '별, 나무, 바람, 새' 그리고 '꽃'이라 얘기해 주고, 꽃 한 송이를 꺾어, 그 꽃을 향하여 '받들어 꽃!' 하고 경례를 합니다. '받들어 꽃'은 '받들어 총'에 대립되는 개념입니다. 전쟁 대신 평화를, 갈등 대신 사랑을 상징합니다. 받들어 꽃엔 명령과 복종이 없습니다.

"받들어 꽃 받들어 꽃 받들어 꽃"

원시에선 세 개의 '받들어 꽃'의 글자 크기가 점점 커져 갑니다. 글자 크기 변화와 세 번 반복은 시각적 집중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받들어 꽃'이란 외침이 멀리멀리 퍼져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겼습니다.


<뱀의 발(蛇足)>

시인의 나이가 저랑 비슷하고, 시 속에 나오는 아이들 연령대도 우리 애들과 비슷한데 그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그 당시 우리 아이들은 교사 사택 아파트에 살았는데, 또래 애들이 많아 늘 함께 놀며 생활했습니다.
전쟁놀이 대신 사내애들은 공차기, 달리기, 언덕 아래 내려가 골프 연습장에서 튕겨나온 골프공 줍기, 집에선 마리오 게임을 즐겼고, 여자애들은 놀이터 모래밭에 소꿉놀이랑 고무줄 뛰기를 했는데. 그때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서 계모와 언니들에게 놀림을 받았더래요 ~~~" 하며 부르던 노래가 기억나는데.

사는 곳이 다르면 놀이 방식도 달라지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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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사진은 ([한국일보] 2016. 7. 8)'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전쟁놀이'에서 퍼왔고, 둘째는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 곽재구 시인(1954년생) : 광주 출신으로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순천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하다 퇴직했으며, 무게감 있고 울림이 큰 시를 쓴다는 평을 들음.

2023년에 동시집 [공부 못했지?]를 펴내면서 시의 영역을 넓혔으며, 현재 순천시가 제공한 창작의 집 '정와(靜窩)'에 입주하여 시를 씀.

(시인 정보는 인터넷에서 얻은지라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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