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1편 : 민병도 시조시인의 '들풀'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민병도 시조시인 편 ♡
- 들풀 -
허구한 날
베이고 밟혀
피 흘리며
쓰러져 놓고
어쩌자고
저를 벤 낫을
향기로
감싸는지...
알겠네
왜 그토록 오래
이 땅의
주인인지
- [들풀](2011년)
<함께 나누기>
이 시조는 시인의 대표작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사비를 털어 세운 문학관을 ‘들풀시조문학관’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혹 이 작품을 보고 시조인지 의아해 하실 분을 위해 '장별 배행'으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허구한 날 / 베이고 밟혀 / 피 흘리며 / 쓰러져 놓고
어쩌자고 / 저를 벤 낫을 / 향기로 / 감싸는지...
알겠네 / 왜 그토록 오래 / 이 땅의 / 주인인지”
원 시조 형태가 '음보별(1장을 4음보) 배행 시조'라면, 위에 올린 형태는 '장별 배행 시조'라 하며, 이밖에도 구별 배행 시조도 있습니다.
들풀(혹은 풀)을 글감으로 한 시는 참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김수영 시인의 '풀'과 나태주 시인의 '풀꽃'.
이 두 시는 풀을 보는 시각이 조금 다릅니다. 앞은 풀을 일반 서민에 비유하여 아무리 짓밟아도 꿋꿋이 일어서는 근성을 노래했다면, 뒤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존재라 하더라고 관심을 갖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면 참된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보면 오늘 민병도 시인의 시조는 앞에 나온 김수영 시인의 시 흐름과 비슷하다고 봐야 하겠지요. 여기서 들풀은 민초들의 삶을 보여줍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들풀이 황무지 같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니까요.
우리들은 대체로 위대한 몇몇 인물이 세상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역사에는 그들의 이야기만 기록돼 있으니까요. 한 예로 임진왜란 하면 이순신 장군이 영웅임은 분명하지만, 거북선 노군(櫓軍)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1m도 나아가지 못했을 터.
세종대왕께서도 집현전에 일하던 이름 없는 학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훈민정음을 반포할 수 있었을까요? 유명한 의병장은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겼지만 묵묵히 왜적에 맞서 피 흘리며 싸웠던 백성은 언제나 지워진 이름이었습니다. (요즘은 서민들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글이 쏟아진다고 함)
“허구한 날 / 베이고 밟혀 / 피 흘리며 / 쓰러져 놓고”
일반 서민은 권력을 가진 자에게 늘 베이고 밟히며 살아야 했습니다. 피 흘리고 쓰러져야 했던 때가 숱하게 많았겠지요. 지금도 직장이나 사회에서 '갑'이 '을'을 힘으로 누르는 일이 허다한데 옛날에는 말할 것도 없었을 터.
“어쩌자고 / 저를 벤 낫을 / 향기로 / 감싸는지...”
실제로 낫으로 풀을 베면 풀향(저는 ‘풀비린내’라 합니다만)이 납니다. 이상하지요. 자기를 베어낸 낫을 원망하기보다 고운 향기로 감싼다는 사실이. 이를 서민이 한 역할에 대입해 보면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나라를 백성을 구하려는 마음씨가 배어 있다고 새깁니다.
‘자기를 벤 낫을 향기로 감싸주는' 풀잎이 있어 이 땅이 푸르른 희망을 간직할 수 있는 아름다운 땅이 되었습니다. 비록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었지만,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서 이겨내며 살아왔기에 이 땅에 푸른 희망의 뿌리를 심게 되었다고.
“알겠네 / 왜 그토록 오래 / 이 땅의 / 주인인지”
이 나라에 수많은 왕조가 거쳐 갔지만 현재까지도 지속하고 있는 왕조는 없습니다. 허나 그들의 통치를 받고 그들에게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백성들은 국민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생생히 살아남았습니다.
또 선거가 다가오면서 우두머리가 되려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머리를 내밀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뽑아야 할 인물은 서민 위에 군림하려는 자가 아닌 아래에서 섬기려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겁니다.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들풀들이 그가 하는 행동을 하나하나 잘 지켜볼 것이므로.
<뱀의 발(蛇足)>
위에서 '민초(民草)'라는 용어를 썼는데 원래 이 말은 우리 사전에도 실려 있습니다. [우리말큰사전]에 ‘백성을 달리 일컫는 말’이라 하고, [국어대사전]과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백성, 민중, 인민을 무성한 풀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 돼 있습니다.
헌데 몇 년 전 <한겨레신문>에서 민초는 일본식 한자 ‘다미구사’(民草 : たみくさ)에서 왔으며, 거기에선 백성을 존중하는 뜻보다는 바람 부는 대로 쓰러지는 하찮은 존재로 인식한 말에서 왔다고 하여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아직 저는 공부가 부족하여 좀 애매하여 민초를 쓰고자 합니다. 이 점에 양해를 구합니다.
*. 민병도 시조 시인(1953년생) : 경북 청도 출신으로 197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인은 미대를 졸업해 개인전을 20번 넘게 열었으며, 여러 권의 시조집도 펴냈으니 소위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시인이라 하겠지요.
참고로 혹 경북 청도를 여행하시면 화가 겸 시인의 개인 갤러리 ‘민병도 갤러리’가 거기 있다고 합니다. 저는 가보지 못했는데 찾아보시길. 시와 그림을 품은 카페도 갖춰 눈과 입이 황홀한 곳이랍니다.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44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