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한 소통(510)

제510편 : 정끝별 시인의 '저린 사랑'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정끝별 시인 편 ♡



- 저린 사랑 -



당신 오른팔을 베고 자는 내내

내 몸을 지탱하려는 내 왼팔이 저리다

딸 머리를 오른팔에 누이고 자는 내내

딸 몸을 받아내는 내 오른팔이 저리다

제 몸을 지탱하려는 딸의 왼팔도 저렸을까


몸 위에 몸을 내리고

내린 몸을 몸으로 지탱하며

팔베개 돌이 되어

소스라치며 떨어지는 당신 잠에

내 비명이 닿지 않도록

내 숨소리를 죽이며


저린 두 몸이

서로에게 밑간이 되도록

잠들기까지 그렇게

절여지는 두 몸

저런, 저린 팔이 없는

- [와락](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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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기>


제가 이쁜 이름을 이야기할 때 꼭 예로 드는 사람이 바로 정끝별 시인입니다. 시인의 아버지가 ‘끝내는(마지막엔) 별이 되어라’는 뜻으로 지어줬다는데. 유명 대학교수에다 '소월시문학상' 받은 시인이니 아버지 말대로 된 듯.

저는 제 이름에 대한 불만이 아주 큽니다. 대학 1학년 민속학 수업 때 교수님에게서 이름의 뜻이 ‘점바치 -점쟁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지금처럼 이름 바꾸기가 쉬웠다면 바꿨으련만. 요즘 들어 문득 왜 저는 제 이름대로 살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유명 점바치가 되어 ‘천공’이나 ‘건진’처럼 한 나라를 쥐었다 폈다 하거나, 이름난 무당이 되어 떼돈 벌어 빌딩 살 수도 있었는데...


오늘 시는 사랑의 참뜻이 뭔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아름답기만 한 게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힘든 일도 참아야 함을. 남의 팔베개를 베고 누우면 나는 편합니다. 허지만 팔베개해준 사람은 불편하겠지요. 상대의 불편함을 깨닫는 순간 나도 불편해집니다. 이렇게 사랑은 편함을 추구하다가 불편함을 겪으며 익어갑니다. 그게 사랑의 본질이라고.



"당신 오른팔을 베고 자는 내내 / 내 몸을 지탱하려는 내 왼팔이 저리다"


남의 팔을 베고 자면 나는 편하지만 상대는 불편함이 분명할진대 나도 불편하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대로 해석하면 사랑하는 이의 팔이 눌리면 아플까 염려돼 저도 모르게 잠결에 제 몸무게를 스스로 지탱하느라 팔에 힘을 주었기 때문에.

무의식중이지만 상대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과 희생적 배려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단순히 기대는 편안함만이 아니라,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수고와 아픔이 있음을 알아라고.

사랑은 이렇습니다. 나만 편한 이기적 사랑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배려와 희생이 따라야 함을.


"딸 머리를 오른팔에 누이고 자는 내내 / 딸 몸을 받아내는 내 오른팔이 저리다"


이제 부부의 ‘평등사랑’과 딸과의 ‘내리사랑’을 비교해 봅니다. 나는 밤새 팔이 저리는 고통이 따르지만, 딸이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불편함을 견딥니다. 그렇지만 뒤에 이어지는 '제 몸을 지탱하려는 딸의 왼팔도 저렸을까'를 보듯이 딸의 마음까진 헤아리지 못합니다.

당연히 딸이 지금은 모르겠지요. 허나 자기 엄마 나이가 되면 그때사 비로소 알게 될 겁니다. 그 사랑의 팔베개를.


"몸 위에 몸을 내리고 / 내린 몸을 몸으로 지탱하며 / 팔베개 돌이 되어"


사랑하는 이의 무게(삶의 무게든 신체 무게든)를 오롯이 받아내고, 나 또한 상대에게 나를 온전히 기댑니다. 서로가 서로의 받침대가 되어주는 몸과 몸으로 이어진 결합을 통해 깊은 유대감을 보여줍니다.

‘팔베개 돌이 되어’란 시구에 눈이 한참 머물렀습니다. 팔베개를 해준 뒤 시간이 흐르면 팔이 딱딱하게 굳어 피가 통하지 않아 '돌'처럼 느껴지는 감각을 표현한 것으로 새깁니다.


“저린 두 몸이 / 서로에게 밑간이 되도록 / 잠들기까지 그렇게 / 절여지는 두 몸”


‘서로에게 밑간’이란 시행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정말 돈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은 표현입니다. 생선이나 고기에 간이 배어야 맛이 어우러지듯, 서로가 서로의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절여지는 두 몸’도 멋집니다. ‘저린’과 ‘절인’의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가 돋보인.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면 숨이 죽고 부드러워지듯이, 사랑하면 각자의 모난 성격과 고집을 내려놓고 서로를 받아들이려 스스로를 낮추는 자세가 됩니다.


“저런, 저린 팔이 없는”


사랑의 완성 단계입니다. 분명 팔이 저림에도 저린 팔이 없어졌습니다. 참된 사랑은 그(그녀)에게서 오는 아픔이 다 사라질 때 완성됩니다. 사실 현실에서의 사랑은 아플 때가 더 많습니다. 그 아픔을 숨기고 참는 배려가 있어야 아픔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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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끝별 시인(1964년생) : 전남 나주 출신으로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가로 등단. 현재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제23회 [소월시문학상] 수상할 정도로 좋은 시를 많이 씀


*. 첫 사진은 AI를 활용해 만들었으며, 둘째는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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