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한 소통(518)

제518편 : 이향아 시인의 '그것이 걱정입니다'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이향아 시인 편 ♡



- 그것이 걱정입니다 -



짓밟히는 것이

짓밟는 것보다 아름답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피 흐르는 상처를 들여다보며

흐르는 내 피를 허락하겠습니다.

상처 속 흔들리는 가느다란 그림자

그 사람의 깃발을 사랑하겠습니다.

천년 후에 그것이 꽃이 된다면

나는 하겠습니다.

날마다 사는 일이 후회

날마다 사는 일이 허물

날마다 사는 일이 연습입니다.

이렇게 구겨지고 벌집 쑤신 가슴으로

당신에게 돌아갈 수 있을는지 몰라

나는 그것이 제일 걱정입니다.

- [당신의 피리](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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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기>


시를 읽고 요즘 나의 걱정거리가 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장 우선은 건강, 특히 가까이 지내던 또래 몇이 몇 년 사이에 하늘로 갔으니. 평소 나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건만. 다음은 팔자에도 없는 두 집 살림. 시골과 도시를 오가야 하는 번거로움, 그리고 다음은...

이렇게 죽 나열하다 보니 제법 많은 걱정거리가 적힙니다. 다들 가까운 시일 내 해결할 수 없는.


오늘 시에서 시인이 펼쳐놓는 걱정거리는 차원이 다릅니다. 평범한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을.


"짓밟히는 것이 / 짓밟는 것보다 아름답다면 /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선 다들 패배자가 되기보다 승리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왕이면 남에게 짓밟히기보다는 이기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서. 헌데 시인은 오히려 짓밟히는 삶, 즉 희생하는 삶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런 삶의 철학을 지녔다면 도를 통했다고 해야겠지요. '가해자가 되어 남 해치기보다, 차라리 내가 희생하고 고통받는 쪽을 선택하겠다'


"피 흐르는 상처를 들여다보며 / 흐르는 내 피를 허락하겠습니다"


이 시행에선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 마지막 부분이 떠오릅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 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남의 아픔을 단순히 구경하거나 동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고통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숭고한 사랑과 희생의 의미로 새깁니다. 당신이 아플 때 나도 함께 아플 준비가 되어 있으며, 내 모든 것을 다해서라도 당신의 상처를 함께 감당하겠다 하는 뜻으로.


"상처 속 흔들리는 가느다란 그림자 / 그 사람의 깃발을 사랑하겠습니다. / 천년 후에 그것이 꽃이 된다면 / 나는 하겠습니다"


당신의 아픔과 상처가 아무리 깊고, 그것이 회복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나는 변치 않고 당신의 슬픔까지도 사랑하겠습니다. 즉 그 사람이 가진 밝고 좋은 모습뿐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아픔과 눈물, 흔들리는 마음의 상처까지도 기꺼이 내 사랑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날마다 사는 일이 후회 / 날마다 사는 일이 허물 / 날마다 사는 일이 연습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후회하며 삽니다. 다신 그런 어리석은 짓 하지 말아야지 했건만 또 같은 잘못을 범합니다. 다만 그런 잘못을 범하면서도 매일 조금씩 더 잘 살기 위해 연습하며 사는 중이다 하는 긍정적인 메시지입니다.


"이렇게 구겨지고 벌집 쑤신 가슴으로 / 당신에게 돌아갈 수 있을는지 몰라 / 나는 그것이 제일 걱정입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돌아가고 싶지만, 너무나 상처 입고 망가진 나의 모습 때문에 망설여지는 애틋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내가 너무 많이 상처 입고 변해버려 예전처럼 맑은 모습으로 당신 곁에 다시 갈 수 없을까 봐 그것이 가장 두렵고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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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향아 시인(1938년생, 본명 ‘영희’) : 충남 서천 출신으로 1963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호남대 교수로 근무하다 퇴직한 뒤 82세인 2020년 [캔버스에 세우는 나라]란 시집을 펴냈고, 85세인 2023년에도 [오늘이 꿈꾸던 그날인가]란 수필집을 펴내는 등 아직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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