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 '박쥐 우화' 고쳐 쓰기


@. ‘우화 고쳐 쓰기’는 새로 창작한 우화를 연재함이 아니라, 기존 잘 알려진 유명 우화를 다른 시각에서 고쳐 쓰는 글쓰기입니다.



제22화 : ‘박쥐 우화’ 고쳐 쓰기



(1) 원본 ‘박쥐 우화’ (<이솝우화>에서)



날짐승들과 길짐승들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게 되었다. 오랫동안 싸움의 경과가 뚜렷하지 못하자 박쥐는 어느 편에 설까 망설였다.

마침내 길짐승들이 이길 것 같이 보였을 때, 박쥐는 길짐승들 군대에 참가하여 전투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듯한 티를 보였다. 헌데 날짐승들이 위세를 왕성하게 되찾아 성공할 듯이 보이자, 박쥐는 그날 저녁 무렵에는 승리할 듯한 날짐승 군대에 가담했다.


그런데 양측의 화해가 이루어져 싸움을 피하고 평화가 왔다. 박쥐는 날짐승들과 기쁨을 함께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날짐승들은 전에 길짐승 편에 섰던 박쥐를 기억하고는 그를 배척하자 박쥐는 그들을 떠나야 하였다.

다음으로 이번에는 길짐승들에게 갔다. 하지만 길짐승들은 박쥐를 잡아 죽이려 하였다. 역시 날짐승 편에 섰던 그를 받아주지 않아 박쥐는 길짐승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도망가야 하였다.


그리고 그 후 쭉 구멍이나 구석에 살아, 저녁 황혼 무렵 이외엔 감히 그 얼굴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2) 고쳐 쓴 ‘박쥐 우화’



맨 처음 나무 위에 사는 날짐승은 나무 위에서만 살고, 땅에 발 디디고 사는 길짐승은 땅에서만 살아 서로의 영역을 잘 지켜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가면서 날짐승들은 길짐승의 터전인 땅으로 내려오는 일이 잦아지고, 길짐승들 또한 날짐승의 터전인 나무 위를 침범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다 보니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겨났고, 그 골이 깊어지면서 어느 해 날짐승들과 길짐승들 사이엔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오랫동안 싸움의 경과가 뚜렷하지 못하자 박쥐는 어느 편에 설까 망설였습니다. 날개를 가진 입장에선 날짐승의 편을 들어야 하지만 쥐과에 속하는 입장에선 길짐승의 편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쪽을 들어도 배척당하고, 저쪽을 들어도 배척당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숙명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모른 체하고 지내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현실 도피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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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는 이쪽 아니면 저쪽에 붙어야 하는 삶이 너무 싫었습니다. 살아가는 터전에서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간 완충지대가 있는데, 살아가는 방식은 어느 한쪽만 택해야 한다는 사실에 정말 괴로웠습니다.

박쥐는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심을 했습니다. 처음에 길짐승이 우세한 듯 보였습니다. 박쥐는 날개를 접고 길짐승 편에 섰습니다. 위태로운 날짐승 편에 섰다가 자신의 뜻도 이루지 못한 채 죽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세가 바뀌어 날짐승이 우세를 보이기 시작하자 날개를 펴 날짐승 편에 서서 열심히 싸웠습니다. 길짐승과 날짐승은 일진일퇴를 거듭했습니다. 박쥐는 언제나 유리한 쪽에 섰다가 전세가 기울면 반대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길짐승과 날짐승은 박쥐란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들의 적도 괘씸했지만 더욱 괘씸한 건 유리한 쪽만 옮겨 타는 박쥐였습니다. 두 패는 암암리에 손잡고 박쥐를 공격했습니다. 박쥐는 자신의 의도대로 되어가는 걸 느끼자 죽일 듯이 덤벼드는 그 두 패거리를 피해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동굴은 박쥐를 위한 훌륭한 은신처가 되었습니다.

괘씸한 존재인 박쥐를 몰아내기 위해 일시적으로 화해를 한 길짐승과 날짐승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만 않는다면 굳이 자기들이 싸울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박쥐는 동굴에 살면서 이런저런 욕을 들어먹으며, 밖으로 나올 수 없었지만 조금도 슬프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자기의 뜻대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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