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고려 중기 '해동 제일'이란 칭송을 듣던 당대 최고의 문인 김황원(1045~1117)은 부벽루에서 내려다본 대동강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글로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의 글 솜씨에 자신 있던 그는 어느 날 부벽루에 올라갔다. 그런데 그의 눈에 비친 자연의 아름다움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그래도 내친김에 붓을 들고 칠언절구 (7자씩 4줄의 한시)를 지으려 감정을 잡고 써 내려갔다.
"長成一面溶溶水(장성일면용용수)
大野東頭點點山(대야동두점점산)"
"긴 성 한 면에 강물이 넘실넘실,
큰 들 동쪽엔 산들이 우뚝우뚝"
두 줄을 적고 나서 다시 두 줄을 적으려 했지만 저녁 해가 기울도록 완성치 못해 마룻바닥을 치며 울면서 내려갔다는 일화를 남겼다.
오늘 나는 이과수 폭포(브라질 쪽) 아래 섰다. 문득 김황원의 심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겨우 숨을 모아 한 마디 터뜨렸다.
"아~!"
다시 조금 있다
"아~!"
결국 나는 김황원의 발꿈치에도 못 미쳤다. 그는 그래도 두 줄을 적었지만 나는 고작 두 마디만 내뱉었을 뿐.
우리는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거대하거나, 너무 정교할 땐 저도 모르게 "아!" 하는 단음의 감탄사만 내지른다.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서 '거대 석상군(石像群)'을 보았을 때도 그랬고, 이번 여행에서 셋째 날 들른 '해와 달의 피라미드'를 보고도 그랬고, 오늘 '이과수 폭포'에서도 그랬다.
{이야기 둘}
내가 "아!" 하는 감탄사를 터뜨리는 동안, 옆에 있던 가이드는 또 다른 의미의 "아!"를 내질렀다. 처음엔 나와 같은 심정인 줄 알았다. 이분은 이과수 폭포를 자주 봐도 느끼는 감정은 나와 같구나 하고.
헌데 그런 예측이 바뀜은 곧이었다. "희한하네, 정말!" "참말로 신기하다!" 예상외의 말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의 답이다.
"사실 저는 여기 하도 자주 와봐서 폭포 보고는 그리 큰 감동을 안 느낍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줄이야!"
그분의 말을 인용한다면 5년 전만 해도 한가했다고 한다. 어떤 땐 텅 비어 다리 위를 뛰다시피 할 수 있었는데, 해마다 늘어나더니 이젠 발을 옮길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니 충격적이란 말씀.
그리고 SNS의 영향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와 생긴 현상이지 싶다는 덧붙임. 그러고 보니 늙은이보다 젊은이가 더 많은 듯싶다. 정말 그랬다. 나의 의지로 발을 옮기는 게 아니라 떠밀려 강제로 옮겨져야 했으니. 사진 제대로 찍으려 하면 어떤 이의 뒤통수가, 방향 바꾸면 커다란 얼굴이 가로막았다.
그래서 나는 이리 정리했다. 이과수에는 두 개의 폭포가 존재한다고. 하나는 진짜 폭포요, 다른 하나는 사람의 폭포라고. 다만 이과수는 세로로 떨어지는데 비해, 사람의 폭포는 가로로 떨어진다고.
비류직하(飛流直下)로 떨어지는 이과수 폭포보다 더 사나운 사람의 폭포가 조금씩 진정되어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자연경관이 되기를 잠시 빌어본다.
{이야기 셋}
사람의 폭포 주인공들은 가지가지 모양의 치장을 하고 걸어간다. 어떤 이는 비옷으로 중무장을 한 채 눈만 내놓고, 어떤 젊은 한 쌍은 거의 안기다시피 한쪽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샴쌍둥이처럼 딱 붙은 형상으로 걸어가고, 또 다른 이는 셀카봉을 관우가 청룡도를 어깨에 맨 듯이 휘두르며 걷고, 또 한쪽을 보면 등짐장수가 짐을 잔뜩 진 듯 배낭을 메고 걷는 등...
아, 그러다가 내 눈에 띈... 순간 발을 멈추고 말았다. 갑자기 서는 바람에 얼굴을 내 등에 처박은 덩치는 뭔가 기분 나쁜 듯 말을 내뱉었지만 나는 '아이 엠 쏘리'조차 잊은 채 그냥 멍청히 섰다.
여인, 얼굴만 보았을 때는 이십 대의 예쁜 백인 아가씨라 그리 보며 넘겼는데, 시선을 아래로 옮기는 순간 갑자기 찾아든 안쓰러움! 그 아가씨는 한 발이 잘려 쇠로 된 의족을 신고 사람의 폭포 속을 아주 잘 헤쳐 가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으니...
아마 내 딸이나 조카가 그런 처지라면 표 덜 나는 의족을 하고 긴 바지를 입고 감추라는 패션을 권했으리라. 허나 그녀는 감춤 없이 뚜렷이 드러낸 채 아주 당당하게 걸어감으로 보는 이가 더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던 것이다.
무리 속에 외발로 걷는 그녀는 마치 까마귀 속에 꼿꼿이 허리를 펴고 다니는 백조처럼 우아했고 아름다웠다. 당당함은 그녀의 몫, 부끄러움은 나의 몫! 저 당당함을 지니도록 이끈 부모님과, 스스로의 의지로 이겨낸 아가씨를 위해 나는 고작 뒤에서 몰래 셔터를 누를 뿐이었다.
*. 마지막 사진을 올릴까 말까 망설이다가 올립니다. 비록 낯 모르는 외국 여성이지만 당당하게 걸어감은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겠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 커버 사진은 아르헨티나 쪽에서 본 '이과수 폭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