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 Don’t Cry For Me Argentina -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레콜레타 공동묘지’를 찾았다. 이곳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아르헨티나에서 아주 부유하고 저명한 이들의 공동묘지'다. 규모가 작은 마을공동체 정도 크기이며, 무덤마다 이탈리아 등에서 수입한 고급 대리석 같은 재료를 사용했는데, 무덤 하나가 아파트 한 채 값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무덤은 작은 성당이나 고급 전원주택 형태인데 예술적인 조각 작품도 새겨져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또 이곳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죽은 이에 대한 추억과 애도의 마음을 보내는 곳이며, 죽은 이들에게는 자손들과 연결고리를 형성해 늘 함께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허나 아무리 공동묘지가 관광할 만하다고 한들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비싼 돈까지 들여 다른 좋은 곳도 많은데 하필 공동묘지냐 하는 물음에 이리 답한다. 이곳에는 '에바 페론'이 묻혀 있기 때문이라고.
'에바 페론', 그 이름보다 '에비타'란 애칭으로 불리던 그녀는 초장기(超長期) 상연 뮤지컬과 마돈나 주연 영화로 워낙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뮤지컬과 영화에서 주인공이 부르는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한 번도 듣지 않은 사람은 있을지언정,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알다시피 그녀는 첩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지만, 15살 때 처음 모델로 데뷔해 연극과 영화 두 군데를 넘나들며 활동한다. 그리고 스무 살이 넘어서면서 유명 연예인의 반열에 올랐는데, 특히 슬픈 듯이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전매특허가 되고 '에비타'란 애칭을 얻게 된다.
그 뒤 정치가 페론을 만나 결혼한 뒤 그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으며, 스페인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구호활동과 프랑스 식량 지원 정책을 펴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는다. 나중에 각종 자선사업 등 복지정책을 활발히 펴 민중의 지지를 얻었으나 군부의 반발을 샀고, 특히 경제 개혁의 실패로 궁지에 몰리던 차 자궁암에 걸려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마 여성 정치가로서 에비타만큼 호불호(好不好)의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이도 드물 것이다. 즉 노동자와 빈민을 위한 복지정책을 펴 서민들에겐 성녀로 추앙되었으나, 대책 없는 무분별한 선심성 정책을 펼쳐 아르헨티나 경제를 망친 주범이란 평을 받기도 했으니.
주로 외국에서 그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보다는 연극, 영화, 전기물 같은 자료의 영향으로 선입견을 갖게 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반대로 옹호하는 사람들은 에비타가 펼친 정책이 아르헨티나 경제를 망쳤다기보단 그 뒤에 이어진 군부 독재 탓이라 거든다. 즉 그녀 탓이 아니다는 말.
다만 한 가지,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이 잊지 못하고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줄을 이어 찾는 건 그녀가 특히 관심을 기울였던 그 업적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이야기 둘>
- 여행의 궁극은 만들어냄에 있다 -
레콜레타 묘지를 돌다 보니 정말 똑같이 생긴 무덤은 없었다. 겉보기에도 그랬지만 특히 앞이나 옆에 덧붙인 조각상들은 다 달랐다. 그 가운데 하나의 무덤 앞에 우리 팀은 발을 멈췄다. 까닭은 아주 단순했다. 거기 자리가 조금 넓어 일행을 기다리기 좋은 위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잠시 쉬는 짬에 무덤 오른쪽에 자리한 젊은 아가씨와 그 옆에 나란히 앉은 개 조각상에 주목했다. 그리고 처음에 다들 이리 생각했다. 아가씨가 하늘로 가고 난 뒤 딸의 죽음을 슬퍼한 부모가 평소 딸과 함께 지내던 개를 함께 둬 외로움을 덜어주려 그 옆에 개를 덧붙였다고.
그때 일행 가운데 한 분이 아가씨 눈이 정상이 아닌, 즉 시각장애인 모습임을 찾아내면서 이야기는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첫째 사람은 이리 해석했다. 그 개는 아가씨가 죽을 때까지 그녀의 눈을 대신한 맹인 안내견이었으리라고. 그래서 하늘에서도 함께 하라는 뜻을 담았으리라.
둘째 사람은 또 이리 보았다. 아가씨가 앞을 못 보니 길을 가다 발을 헛디뎌 물에 빠졌는데, 그 개가 구해주려 뛰어 들었다가 함께 빠져 죽어 그 의로운 기상을 기리려 함이라고.
셋째 사람인 나는 이렇게 보았다. 시각장애인 딸이 친구 없이 외롭게 지내는 걸 본 부모가 강아지를 곁에 두자 둘은 하루 종일 붙어살다가 아가씨가 백혈병에 걸려 먼저 죽게 되었다. 그 뒤 주인 잃고 홀로 지내던 개는 밥도 먹지 않고 날마다 주인의 무덤을 찾아와 지키다가 결국은 죽고 말았으니 그 애틋함을 기리려 함이라고.
스토리텔링은 이렇게 여러 얘기를 만들어 낸다. 이런 작업은 그냥 우스개로 끝나지 않는다. 만들어 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얘기 속의 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이리 정의한다.
"여행은 보고 듣고 느낌에서 끝나지 않고, 그 궁극에는 만들어냄에 있다"라고. 이렇게 만들어내면 쉬 잊히지 않는다.
*. 커버 사진은 레콜레타 공동묘지인데, 보시다시피 묘지 앞엔 조각상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