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 바릴로체, 아 바릴로체!


"신은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했고 그다음 날은 쉬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날 쉬는 대신 바릴로체를 만들었다."


다녀온 경험이 있는 이로부터 바릴로체에 대한 예찬의 말을 듣고도 '설마!' 했다. 그래서 이리 물었다. 이과수 폭포보다 더 낫냐고. 그러자 "저는 두 배쯤 낫다고 느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으리라 여겼다.

아무리 '남미의 스위스'란 별명을 듣더라도 그럴 리야. 또 그는 평소 좀 풍이 센 사람 아닌가. 그러나 직접 보고 난 지금 누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이렇게 말하리라. "이과수 폭포보다 세 배는 더 감동적이었다"라고.



이곳은 봄이다. (여행기 쓸 때가 11월 중순) 우리나라 한 지점에서 삽을 들고 한없이 파고 또 파 지구 중심을 뚫고 나오면 아르헨티나로 튀어나온다니 우리랑 정반대다. (* 위치에 따라 우루과이가 되기도 함) 시간도 거기가 오전 12시면 여기는 밤 12시이고, 계절도 우리나라는 11월 초이니 여긴 5월 초에 해당하는 완연한 봄이다. 기온도 그즈음과 딱 맞다.

2천 ~ 3천 미터에 달하는 산들이 만년설에 덮여 있고, 그 눈이 녹아 만들어진 너무 넓어 끝을 볼 수 없는 '나우엘우아피 호수'. 19세기 후반에 스위스 인들이 많이 이민 왔는데다 자연환경조차 그곳과 닮아 '남미의 스위스'라 불리는 곳. 여름철에는 피서지로, 겨울에는 스키를 즐기려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곳.


바릴로체6.jpg


바릴로체에는 두 가지 물이 존재한다. 산을 덮은 물(눈)과 호수의 물.

천년 만년 덮여 있다는 하이얀 눈, 그 눈이 봄이 되면 바위가 잠시 옷을 벗고 제 얼굴을 드러내니 이때부터 수량이 점점 불어난다. 비록 수량 면에서야 우기를 따라갈 수 없지만 물빛 하나만은 이즈음이 가장 이쁘단다. 그에 맞는 표현을 찾고자 머리를 굴렸다.

호수 물빛을 수식하는 수많은 표현들... 옥빛, 하늘빛, 에메랄드빛, 그리고 밀키블루 (milky blue : 우유 빛깔이 섞인 블루) 이보다 더 멋진 표현을 얻고 싶었다. 그래야 바릴로체의 호수 빛을 살릴 수 있으니까. 허나 포기했다. 신이 잠시 짬을 내 만들었다는 이곳에 어찌 범인(凡人)이 붓끝을 덧대리오.


온갖 정물(靜物)이 빛깔의 향연을 벌이고 있는 이곳 바릴로체는 남미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 중 하나인 '파타고니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내가 이곳에 푹 빠진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그리도 멋진 곳이건만 사람이 적어서다. 사람에 시달리지 않음은 그만큼 관조적인 자세에서 풍광을 만끽할 수 있으니까. 왜 사람이 적을까? 이곳 찾아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항이 세워지기 전에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720km나 떨어진 이곳까지 21시간쯤 침대버스를 타고 가야 했단다.

물론 이 버스를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데 비행기 특등석 못지않게 대단히 안락하다고 한다. 맛있는 식사도 제공되고, 끝없이 펼쳐지는 자연의 파노라마... 허나 우리는 버스 대신 2시간 20분짜리 비행기를 택했다. 열댓 시간을 단축한 만큼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 선택이 옳았다고 여긴다. 일단 피로를 덜고 이곳 즐길 시간이 늘어났으니.


바릴로체2.jpg


그리고 바릴로체의 또 좋은 점이 하나는 해운대 같지 않아서다. 해운대 갈 때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빌딩을 무너뜨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니까. 바닷가나 호숫가를 가서 주변을 둘러보면 선진국의 유무를 알 수 있다 한다. 그 명승(名勝)을 부유한 소수가 누리도록 짜여 있는가, 아니면 함께 누리도록 짜여 있는가로.

불멸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모차르트 외가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리라. 낮은 건물이 호수 가까이에, 높은 건물은 그 뒤에 위치한다. 아니면 아예 건축물에 고도 제한을 둬 어디서든 조망이 가능하도록 짓는다.


여기 바릴로체에서도 그렇다. 어떤 곳에서든 호수를 바라볼 수 있도록 낮은 건물이 앞쪽에, 높은 건물이 뒤에. 지금은 비록 아르헨티나가 소득 낮은 국가에 들어가나 한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든 나라의 품격이 드러나는 배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해운대 바닷가에 서 뒤를 보면 온통 빌딩뿐이다. 뒤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선택받은 부유한 몇 사람의 특권만이 차지하는. 동남아시아 유명 해변에 가도 이 모양이다. 아마 그들도 나중에 우리처럼 땅을 치며 후회할지 모른다. 몇 사람에게 다 빼앗겼다고.


바릴로체3.jpg


만약 스페인어를 조금 할 줄 안다면 이곳에 일 년쯤 살고 싶다. 그만큼 '땡기는' 곳이다. 비록 한인식당은 없을지라도. 호수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 집에서 때론 담담한 수묵화를, 때론 화려한 채색화를 보며 마음 맞는 이와 함께 살 수 있다면...

단 한 가지 불만은 '개'다. 주인 있는 개든, 없는 개든 다 나와 논다.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등 잘 따르니 덩치는 커도 무서운 느낌은 안 든다. 허나 녀석들이 싸 대는 똥이 길 곳곳을 뒤덮고 있다. 특히 공원 잔디밭이 더욱 그렇다. 밤거리 문화를 즐기려 길 나섰다면 신발에 묻지 않기를 빌뿐.


그래도 이틀간 바릴로체에서의 추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모레노 빙하'와 '마추픽추'에서 이보다 더 큰 감동을 얻지 않았으면 한다. 더 글 쓸 자신이 없으므로.



이전 06화제6화 : '레콜레타 공동묘지'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