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편지(제15편)
@. 제게 학교와 학생은 어느 때든 첫사랑이었고, 그때 아이들과 주고받은 편지는 첫사랑의 편지입니다. 오늘 편지는 부산의 모 여중에 근무할 때 가르친 소녀가 3년 뒤 보낸 편지로 보입니다. 문예반 소속이라 그런지 글 읽는 재미를 줍니다. 편지 내용처럼 청초한 여인이 되었기를 기도하면 올립니다.
* 첫사랑의 편지(15) *
선생님, 읽어주십시오!
5월의 장미가 몽우리를 터뜨리려는 준비와 함께 꽃잎의 바람에 입맞춤하는 작은 안개꽃의 흔들림을 가슴에 안고 선생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선상님 결혼식 이후 한 번도 뵈온 적이 없음을 생각하니 소녀의 불찰과 무성의가 죄스러운 마음으로 이즈러짐을 느낍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가 버렸음을 안타까움만으로 멍청히 회상하는 나태한 인간의 상을 떠올리면서 종종걸음으로 지면을 달리는 대화의 문이 얼마나 진실한 마음으로 가득한가를 생각해봅니다.
하이얀 드레스를 입은 사모님의 모습과 검은색 양복을 입으신 신랑과 신부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겠지요.
인간들의 삶이, 혹은 만남이 언제나 그렇게 순결하고 환한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양 타인을 사랑해 준다면 분명 사회는 선한,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가득차게 될 텐데 하는 넋두리의 마음이 일어납니다.
[얼간이의 변]이란 선생님의 詩에서처럼 선생님이 얼간이로 보였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자신이 얼마나 모자라는 얼간이인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얼간이의 변]을 알았을 때 이 詩를 외운다고 종알거린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요사이는 제 자신이 무척 머저리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 문예반 언니들의 말처럼 어쩌면 전 눈이 두 개여서 슬픈 머저리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선생님!
어제 시험이 끝나버렸습니다. 왠지 허탈함만이 가슴 가득 모여들어 옵니다. 파도마냥 밀려드는 공허한 가슴을 가득 채우려다 '막스 밀러'의 [독일인의 사랑]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어버렸는데도 무어라도 토해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완전히 소화시키지 못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 자신의 가슴을 읽어내린 듯하여 편안한 안식을 구했습니다.
남학생을 가르치시는 것이 여학생을 가르치시는 것보다도 더 쉬운 일이냐고 물어보는 게 어쩐지 멋쩍은 감이 있습니다.
아직도 전 'O들원'을 다녀와서 적은 감상문을 기억하고 선생님을 찾아봅니다. 고아원에서는 고아들의 모습이 아롱져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랑을 할 수만 있다면 사랑해 주어야 되겠지요. 얼마나 많은 人間들이 사랑에 굶주려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선생님!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많이 적어가는 작업이 필요함을 느끼는 데도 실천할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습니다. <선생님의 지도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일어납니다.
초록의 계절 5月은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달이지요. 한번쯤 자신을 돌이켜 반성해 볼 수 있는 여유는 아마도 아니 올 것 같습니다.
밤하늘의 별이 은하의 세계를 수 놓고 푸른 하늘이 푸르게만 보이는 시간이 되면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넓은 마음과 아량으로 관대한 사랑과 이해를 소유할 수 있는 소녀로 자라는 날 청초한 들국화 같은 여인이 되고 싶습니다.
선생님!
펜을 들고 저의 넋두리를 표현하면서 영이에게 답해줄 수 있는 선생님을 가진 것을 무한히 기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잊혀가는 얼굴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진실한, 성실한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언제나 행복하게 웃음 지으시는 가정을 꾸미소서
일천구백팔십이년 오월 칠일
×영 올림
<함께 나누기>
오늘 편지는 글 쓴 소녀도 그렇지만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제 추억의 서랍을 한참 뒤적이게 만드는군요. 글 쓴 소녀는 부산 모 여중에 근무할 때 가르친 학생으로 지금도 이름과 얼굴이 기억납니다.
한 마디로 참 착한 소녀였는데 뒤 소식을 몰라 안타깝습니다. 다만 편지 속에 나오는 [얼간이의 변]이란 시와, 'O들원'이란 고아원.
제가 산문은 긁적입니다만 시 같은 운문엔 능력 미달입니다. 그래도 문예 담당 교사가 되면 문예 부문에선 팔방미인이 되어야 하기에 한 편 적어 아이들에게 선보였습니다.
저는 그냥 긁적거린 시(?)인데 오래 전 제자 모임에 갔더니 그걸 기억하는 이들이 많더군요. 아마도 시 창작 시간에 견본으로 내민 듯. (불행히도 제 추억 서랍엔 남아 있지 않아 보내지 못합니다. 다음에 혹 살리게 되면 여기에 붙이겠습니다)
그리고 'O들원'은 제가 고아들에게 약간의 도움 베풀고자 그 애들에게 기초학습을 가르치며, 때론 상담교사로 함께 숙식을 같이 하며 머물었던 고아원입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당시 부산 동래구 금정공원 바로 곁에 있었습니다. 거기에 반 애들 몇을 데려간 적 있는데 편지 주인공도 거기 갔던가 봅니다.
'얼간이의 변'이란 작품과 'O들원', 둘 다 참 오랫동안 추억의 서랍 자물쇠에 꼭꼭 잠겨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