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산골일기(171)
제171화 : 영산홍? 연산홍?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y 24. 2024
* 영산홍? 연산홍? *
우리 집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울 때가 바로 이맘때다. 영산홍이 흐드러지게 피기 때문에. 아시다시피 다른 곳에선 영산홍이 피었다가 다 졌다. 그럼 우리 집은? 흔히 말하는 ‘늦영산홍’인데 산철쭉에 가까우며 해마다 이즈음 핀다.
일단 빛깔부터 다르다. 3월 말에서 4월 중순에 피는 ‘올영산홍’은 그 빛깔이 대부분 아주 짙은 붉은빛이다. 우리 집은? 옅은 붉은빛, 아니면 연분홍빛이다. 멀리서 사진 찍으면 짙은 빛으로 보이나 실제 눈을 가까이 대면 사진보다 연하다.
나는 우리 집 영산홍 빛깔을 참 좋아한다. 요즘 꽃집에 가도 짙붉은 빛이 대부분이라 이런 빛깔을 구하기 어렵다. 조금 연한 빛에 빠져듦도 천성인가, 잎 지고 난 뒤 꽃 피는 비슷한 성질의 ‘상사화’와 ‘꽃무릇’ 중에서 상사화를 훨씬 더 좋아하니까. 물론 마당엔 상사화와 꽃무릇 둘 다 있다. 그러니까 둘 다 좋아한다는 말이다. 함에도 상사화를 더 위로 친다.
(몇 년 전 찍은 우리 집 영산홍 - 실제 빛깔은 조금 연함)
영산홍이란 이름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나온다. 사실 현재 우리가 영산홍이라 부르는 꽃은 고려 때부터 써온 영산홍과는 다르다. 그러니까 토종 영산홍은 그냥 진달래 '속'에 속하는 꽃을 모두 가리키는 용어로 '철쭉, 산철쭉, 진달래'를 다 합쳐 영산홍이라 불렀다.
1982년 [한국농식물자원명감]을 작성하면서 일본의 ‘오월철쭉’에 영산홍이란 이름을 붙이면서 그 이름이 현재까지 사용돼 오고 있다. 허니까 요즘 전원주택 조경석 사이에 틈틈이 박아놓은 영산홍에만 국한된 이름이 돼 버렸다는 말.
‘철쭉 산철쭉 진달래’와 영산홍의 차이점은 앞의 세 꽃은 수술이 10개인데, 영산홍은 5개로 뚜렷이 차이를 보이니 그 점에 유의하면 누구나 쉬 구별하리라.
가끔 영산홍 대신 ‘연산홍’이라 쓰는 사람을 본다. 인터넷을 뒤적이면 연산홍도 영산홍의 딴 이름이라는 식으로 나오기도 하고. 허나 이는 잘못이다. 영산홍이 맞는데 연산홍이 발음하기 편하고 귀에 팍다 들어오다 보니 이 이름으로 불릴 뿐.
영산홍이 연산홍으로 불리는 데는 연산군이 한몫을 했다. 원래 이름은 영산홍이었으나 연산군이 사랑했다 하여 ‘연산홍’으로도 불렸다는 설.
아 참, 먹을 수 있는 꽃은 진달래가 유일하며 ‘영산홍, 철쭉, 산철쭉’은 못 먹는다. 그래서 이 셋은 모두 '참꽃'이 아닌 '개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제 찍은 우리 집 영산홍 일부)
사람이든 꽃이든 이름을 부를 땐 제 이름에 맞게 불러줘야 한다. 그래야 분명한 존재 의미를 가지니까. 헌데 딴 이름으로 불린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는 이 가운데 삼성 다니다 퇴직한 '이재경'이란 분이 계신다. 헌데 나는 한동안 그의 이름을 이재용으로 알았다. 연상기억법에 따라 그 사람과 연관지을 내용으로 외워두면 오래 기억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머릿속에 '삼성'을 넣어두었는데...
어느날 그를 가리키며 이재용이라 부르자 슬며시 다가와선 귀에 대고 '저는 이재용이 아니고 이재경입니다.' 하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라 사과했다. '삼성'이란 말을 연상기억법에 따라 기억한 건 나름 좋았으나 회사 직원을 회장 이름에 대입했으니...
조금 다른 얘기지만 내 이름이 잘못 불린 씁쓸한 경험을 풀어본다.
대학 2학년 어느 봄날, [국어음성론] 수업 마치고 나오는데 껄렁껄렁한 사내가 내 앞을 막아섰다.
“장만주 씨?”
내 이름이 아니라서 뒤돌아봤다. 다른 사람을 불렀는가 싶어. 그런데 사내는 나를 보고 있었다. 사내가 받은 정보엔 안경을 낀 데다, 깡마른 체구에, 170 정도 되는 키, 거기에 대학교와 국문과까지 완전 일치했다. 단 하나 이름만 다를 뿐.
주먹에 힘주는 걸 쫄린 심정으로 보는데 저만치서 한 여자가 사내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오빠, 아니야! 그 사람 아니야!”
(돌과 물이 함께 할 때 영산홍은 가장 빛난다)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를 아는 어떤 이가 나를 사칭해 그 아가씨랑 사귀었다가 적당히 빼먹을 건 다 빼먹고 날랐다고 한다. 아가씨는 깡패인 오빠에게 말했고, 사내는 내가 다니는 대학교 이름과 과를 알아내 그녀와 함께 찾아왔고. 아는 이가 나를 사칭하면서도 양심은 있었는지 이름 조금(?) 바꿨음을 다행이랄까.
장만주, 성과 이름 단 한 글자도 같지 않건만 어찌 들으면 내 이름과 거의 닮았다. 덕분에 한동안 나는 같은 과 동기들에게 ‘장만주’로 불리었다. 그리고 돈과 몸을 다 빼앗아 먹고 날아버린(?) 신파 영화의 주인공으로 놀림까지 받았다. 당시에 하도 그런 영화가 많았으니까.
영산홍과 연상홍의 이름에 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아는 이가 쓴 시 한 편이 생각난다. 그분은 본격 시인은 아니나 짬짬이 좋은 시를 쓰신다.
영산홍
이병민
내 이름은 영산홍
평양 기생 연산홍이 아니랍니다
내 언니는 *영산백
저보다 값이 좀 더 나가지요
행여 아이들이 연산홍이라 하거든
영산홍이라 알려주세요
내 이름은 영산홍
평양 기생 연산홍이 아니랍니다.
참 깔끔한 시다. 이 시 읽으면 영산홍과 연산홍 차이를 단박에 알리라. (참고로 ‘영산백’은 흰꽃이 피는 철쭉)
*. 마지막 사진은 김도훈 님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51)]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