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산골일기(170)
제170화 : 귀한 인연이기를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y 17. 2024
@. 오늘은 제가 쓴 생활글(수필)을 배달합니다.
* 귀한 인연이기를 *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그에 맞는 시를 고르려 인터넷을 뒤졌다. 이왕이면 스님의, 거기에 유명 스님의 시면 좋겠다 싶어 뒤지다 하나를 건졌다. 법정 스님의 「귀한 인연이길」. 수필만 쓰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시도 썼다니.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진심 어린 맘을 주었다고 해서 / 작은 정을 주었다고 해서
그의 거짓 없는 맘을 받았다고 해서 / 그의 깊은 정을 받았다고 해서
내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 깊은 사랑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를...”
“지금의 당신과 나의 인연이 / 그런 인연이기를...”
첫 연과 끝 연이다. 그런데 배달하기 전 작품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았더니 아무래도 전문적으로 (감성)시를 쓰는 사람의 시인 듯 여겨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름이 그리 알려지지 않은 유혜정 시인의 시였다. (‘길상사’ 홈에 들어가면 법정 스님의 글 아님에도 잘못 알려진 글로 나옴)
(노랑꽃창포)
비록 스님의 시는 아니었지만 그 속에 나오는 ‘귀한 인연’이란 시어에 한동안 눈이 머물렀다. 그래 우리의 만남 모두가 다 '인연' 아닌가. 직접 만남은 물론 간접 만남까지 통틀어 인연의 끈에 묶였다.
즉 (밴드나 단톡방이나 브런치)에 올린 글로 만나는 사람들도 다 인연의 끈이 이어져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리라. 내가 아침마다 글(‘월~목’엔 시를, 금요일엔 생활글)을 배달하는데 받는 사람이 아주 많진 않지만 조금 된다.
일단 밴드 댓 곳쯤, 단톡방 댓 곳쯤, 그리고 개인별 카톡으로 보내는 이들이 여든여 명. 이 가운데 개인톡으로 보내는 사람들과 인연이 참 재미있다. 왜냐면 그 여든여 명을 직접 만난다면 알아볼 수 없는 분이 반 이상이기 때문이다.
(작약꽃)
학교 동기, 옛 제자, 배움터에서 만난 분, 교사 동아리 회원, 직장동료, 성당 교우. 그래도 이분들은 얼굴이 떠올라 만나면 악수부터 청할 수 있다. 헌데 오래전 베트남과 캄보디아 여행 갔다가 같은 패키지 인연으로 만난 분, 일본 가는 여객선 객실에서 만난 분, 고속버스 옆자리 앉은 분...
이분들을 만나면 솔직히 얼굴을 잊어버려 알 듯 말 듯하리라. 특히 요즘처럼 기억력의 감퇴가 뚜렷하다 보니 자신 없다. 그래도 기억의 창고문이 잘 열리면 기억나는 분도 계시겠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도 스무여 분 된다. 이분들과 연결된 인연은 이렇다.
개인톡을 받는 분이 소개해 준 또 다른 분. 그러니까 아는 이를 통해 보내 달라고 해 보내줬을 뿐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럼 내게 인연의 비중 차이는 있는가. 학교 동기, 제자, 가톨릭 교우, 동료 교사, 여행 중 만난 분, 아는 이를 통해 소개받아 얼굴 모르는 분...
아니다, 다들 내겐 소중한 분들이다. 비록 댓글을 보내지 않아도 내 글 읽어준다는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가. 글 쓰는 사람 가운데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나 그냥 내 글 읽어줌 그 자체로 소중하고 고맙고 반갑다.
(늦영산홍)
요즘 우리 집 마당에 꽃들이 피었다 진다. 한창 짙은 붉은빛을 자랑하던 ‘올영산홍’은 지고 ‘늦영산홍’이 피고 있다. 요염한 작약꽃, 가꾸지 않아도 절로 피는 애기똥풀꽃, 너무 많아 솎아낼 예정인 자주달개비,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노랑꽃창포가 한창 이쁘다.
꽃이 활짝 피어남을 어떤 시인은 ‘한 하늘이 열린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해와 비와 바람의 인연에 힘입어 핀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인연이 성립함도 아니다. 반려견 반려묘를 키우는 분들에게 개와 고양이는 사람 못지않은 인연이라 여길 터.
산골에 사는 나에게 아궁이 창고나 우체통에 집을 짓고 알을 낳는 박새도 인연이요, 무시로 제 집 찾아오듯 드나드는 고라니도 인연이요, 이른 봄에 피어나는 노루귀 복수초에 이어 잇달아 피었다 지는 모든 꽃들이 다 인연이다.
뿐이랴, 사과 오미자 구기자 오디 살구 자두 매실 포도를 안겨주는 과일나무들도 다 인연이요, 한더위에 지칠 때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도, 애써 심어놓은 남새(채소)들이 목타 할 때 뿌려주는 비도 인연이다.
(자주달개비)
세탁 끝낸 옷들을 빨랫줄에 매달아 놓거나, 고추 양파 고구마를 늘어놓을 때 뜨거운 빛 보내는 해도 인연이요, 계곡 내려서자마자 들려오는 개울물 흐르는 소리도 인연이요, 숲길 지날 때 까투리 장끼 짝짓다 훼방 소리에 놀라 날으며 내는 소리도 인연이다.
그러고 보면 다 인연 아님이 없다. 마침 펜을 놓으려 하는데 우리 집 바로 아래 절에서 불경 녹음 소리가 들려온다.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하라.”
분명 다른 불경소리인데 내 귀에만 이리 들려오는 걸까?
*. 사진은 현재 우리 집 마당에 핀 꽃들로 채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