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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y 03.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69)

제169화 : 표티나지 않는 일

         * 표티나지 않는 일 *



  요즘 비 오지 않는 날이면 텃밭과, 집 들어오는 주변과, 언덕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잔일을 한다. 어제도 오전에 일한 뒤 옷이 땀에 젖어 샤워하고 나왔을 때 마침 밖에 일 나갔던 아내가 돌아와 보더니,
  “일 많이 하셨나 보네요.”

  점심 식사 후 아내는 열무 심으러, 나는 오전에 하다 끝내지 못한 일을 마저 하러 밭에 나갔다.
  “오전 내내 무슨 일 하였어요?”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지만 당장 대답할 말을 잊었다. 분명히 쉬지 않고 일했건만, 그래서 샤워도 해야 했건만, 내가 봐도 뭘 했는지 표티나지 않으니까.

  “그냥 밭에서 똥폼 잡고 서 있기만 했지.”
  머쓱하여 꺼낸 말이었다. 한 일을 자세히 설명하고 싶었으나 관뒀다. 그러면서 문득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아니다. 흔적은 없어도 - 사실은 없는 게 아니라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만 – 분명 일을 했다. 그것도 땀 뻘뻘 흘릴 정도로.

  한 일은 풀 뽑기였다. 풀 뽑기와 풀베기는 다르다. 잡초를 베야 할 때가 있고 뽑아야 할 때가 따로 있다. 지금은 뽑아야 할 시기다. 잡초 뽑는 도구는 호미요, 베는 도구는 예초기다. 뽑을 때는 쪼그리고 앉지만 벨 때는 서서 한다. 이런 점 말고도 일 끝낸 뒤 가장 차이가 난다.
  길가나 언덕 위 잡초를 예초기 한번 돌리고 나면 누구의 눈에든 일한 표티가 확 난다. 무성하던 풀이 싹 베어져 없으니까 당연한 일. 장발이던 사람이 단발로 했을 때와 똑같다. 허나 풀 뽑기는 베기만큼 힘들지만 눈으로 보면 일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아랫집 가음댁 할머니는 겨울을 빼놓고는 밭에 사신다. 사는 정도가 아니다. 밭이 방인 양 일하다가 어떤 땐 흙에 눕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할머니가 참 부지런하다고 여겼다. 그러다 이내 '일을 잘 못하는구나'로 변했다. 일한 표티가 나지 않았으니까.

  하루는 하도 궁금해 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밭에 가 둘러보니 무슨 일 했는지 눈에 선뜻 들어오지 않았다.
  날마다 밭에 붙어 사는데도 별반 달라진 건 없었다. 심지어 뙤약볕 아래 한여름에도 콩밭에 들어가 팥죽땀을 흘리며 일했을 때도.

  노상 하는 일은 풀 뽑기. 그랬다, 오늘도 내일도 풀 뽑기. 풀 뽑기는 일을 해도 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했는지 안 했는지 잘 모른다. 자세를 낮춰 살펴봐야 겨우 보일 뿐. 당연한 말이겠지만 풀을 뽑으면 베었을 때보다 훨씬 늦게 자란다. 이런 점 말고도 작물이 자리 잡기 전에 올라오는 족족 뽑아야 한다.
  어떤 작물이든 키가 쑥 올라오면 잡초가 쉬 머리 쳐들지 못한다. 평소 잡초 자라는 속도와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니 쪼그리고 앉아 호미를 들어야 한다. 하고 나서도 뭘 했는지 표티나지 않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엔 표티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계신다. 아침 출근 전인 신새벽 일찍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나와 일하고 들어간다. 그분들이 깨끗이 쓸고 가거나 쓰레기를 치운 뒤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늘 깨끗하다고만 여길 뿐 그 노력을 한 주인공은 생각지 않는다.
  모두가 잠든 밤에도 긴급전화가 올까 봐 비상대기 중인 119 대원들, 낮에 “삐뽀!” “삐뽀!” 소리 날 때만 일을 하는가 보다 할 뿐. 긴장한 채 비상대기하는 그 시간이 실제 활동하는 시간보다 훨씬 많건만 구급차 소리가 나지 않으면 지나쳐 버린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 우리는 낮에 장사하러 나온 그때의 아저씨 아주머니 모습만 본다. 허나 싱싱한 생선을 사기 위해, 신선한 야채를 공급하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나와 서두르는 걸 모르고 지난다.
  그리고 집안일만 하는 전업주부도 그리 말한다. 또래 직장 나가는 여성들은 하다못해 월급이라는 결과물이 있지만 하루종일 집안일 해봐야 표티 안 난다고. 알아주는 사람 없다고.




  퇴직하기 전 남녀공학인 중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당시 '방과후수업'은 정규수업이 끝난 뒤 시작했다. 만약 방과후수업만 없다면 청소 끝난 뒤 아이들이 하교하면 다음날 아침 깔끔하게 책걸상 정리된 상태로 수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청소 뒤 방과후수업이 있다 보니 아침에 일찍 와 둘러보면 엉망이었다. 한창 별나게 설칠 나이 아닌가. 한두 번 나 혼자 일찍 출근해 책걸상 정리하다 짜증 나 종례 시간에 특별히 강조했다. 우리 교실에서 수업하는 학생들이 책임지고 정리한 뒤 가라고. 그러지 않으면 혼날 거라고.
  (이동수업을 해서 여러 학급학생이 섞여 수업함)

  다음날 아침 교실에 가보니 한 애가 일찍 와 앉아 있고 책걸상은 반듯하게 정리돼 있었다. 나는 당연히 어제 종례 때 한 훈시의 효과라 여겼다. ‘역시 엄포를 놓으니 말을 잘 듣는구나.’ 하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책걸상은 잘 정리돼 있어 마음을 놓았다. 그러다 우연히 보았다, 한 학생이 일찍 와 책걸상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그 애는 자폐 증세가 있어 애들에게 따돌림당할 때가 많아 늘 주의를 기울이던 중이었다. 설마 하여 물어보니 여태 그 애가 한 일이란다.




  조례 시간에 전체 아이들에게 그 애가 한 일을 칭찬삼아 얘기할까 하다 그만뒀다. 그러잖아도 무시당하던 애인지라 혹 좋은 소리보다 나쁜 말 나올까 봐.
  다만 생활기록부에 이런 글만 남겼다.
  ‘표나지 않는 일을 하지만, 가장 표나는 일을 하는 소녀’

  *. ‘표티나다’는 ‘표나다’의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 새벽 도매시장 사진과 정리된 책걸상 줄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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