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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n 07.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72)

제172화 : 누가 주인인가?

            * 누가 주인인가? *


  <하나>


  다른 집 오디는 다 끝났는데 우리 집 오디는 마을에서 가장 늦은 ‘늦오디’. 허니 오디 터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작년까지 크게 못 느꼈는데 올 들어 오디 털 때마다 훼방꾼이 나선다. 바로 까치 녀석이다.
  우리 집 오디 거두는 순서는 이렇다. 먼저 떨어지는 오디를 쉽게 줍고 흙도 묻지 않게 깔아둔 그물을 조절해 오디를 한 곳에 모은다. 그런 다음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 헌데 그럴 때마다 훼방꾼 까치가 어디선가 나타나 요란하게 악을 쓴다.

  ‘악을 쓴다?’ 아니 ‘울어댄다’ 아니라 ‘악을 쓴다’라니? 정말 우는 소리가 아니라 악쓰는 소리다. 왜? 오디 걷어가지 말라고! 어떨 때는 위협까지 느낄 정도로 바로 머리 위까지 와서 악을 쓴다.


(떨어진 오디가 모이게 깔아놓은 그물)



  하루는 화가 나 막대기를 들고 나섰다. 부리나케 날아 날아가는 녀석들 뒤에 대고 한마디 했다.
  “야 이놈들아! 이 뽕나무는 산에서 저절로 자란 게 아니라 이 땅 전 주인께서 직접 심어놓은 나무란 말이야! 알겠나, 이 새대가리들아!”
  그 말뜻은 내가 산에 그냥 자라는 야생뽕나무에 달린 오디 따먹는다면 몰라도 우리 집 뽕나무는 사람이 직접 심었으니 와서 방해하지 말라는 뜻.
  그러나 새 아닌가. 욕했다시피 흔히 '새대가리'라 하는. (요즘 얼마나 새가 영악한지 아는 입장에서 이 표현은 쓰지 않으려 했건만) 장대에 겁을 내 돌아갔던 녀석들이 다시 날아와 머리 위에서 난리다. 그만 두면 안 되겠다 싶어 장대로 뽕나무 가지를 후려쳤다. 효과는 대만족, 다 멀리 달아났다.


  우리 마을에는 뽕나무가 참 많다. 다 개량뽕나무가 아닌 토종뽕나무 - 다른 말로 ‘산뽕나무’ -다. 아마 단위 면적 당 전국 최다일 게다. 하도 많다 보니 여기 새들은 일반 새똥 아닌 오디똥을 눈다. 길가나 차 지붕에 듬성듬성 싸 퍼질러놓은 까치 똥빛이 딱 오디 빛깔이다.
  뿐이랴, 녀석들이 오디 먹고 싼 똥에 든 뽕나무 씨앗 때문에 뒷산 군데군데 뽕나무가 탐스럽게(?) 자란다. 산에만 자라면 그래도 괜찮으나 봄이면 잔디밭에도 텃밭에도 뽕나무 새순이 솟아오른다. 이 뽕나무 새순은 잘 뽑히지도 않는다. 정말 미칠 지경이다.


(어제 거둬들인 오디 세 대야 -  불량 오디 고르는 작업을 해야 함)



  <둘>


  우리 집 텃밭에 그물로 울타리를 쳐놓았다. 처음 온 사람들은 멧돼지 막기 위해서냐고 묻는데 아니다. 바로 고라니 때문이다. 텃밭에는 녀석들이 좋아하는 남새 -채소, 먹을 수 없는 풀은 ‘푸새’라 함 -가 많다. 고구마순부터 비트, 아욱, 양배추...
  울타리 쳐놓은 뒤 별 피해가 없어 안심했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오전 상추 뜯으려 텃밭에 들른 아내가 기겁을 했다. 세상에! 분명 사람 드나드는 문을 다 닫았는데도 고라니가 들어와 엉망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녀석은 가장 먼저 고구마밭에 들러 어린순부터 작살낸 뒤 한창 머리 내민 비트와 아욱과 상추밭까지 엉망으로 만들었다. 여태 상추를 건드린 적 없었는데 (19년만에 기록이 깨어짐) 상추까지 다 먹어 상추 부잣집이라 자랑했건만 졸지에 상추 가난뱅이가 됐다.


(저 정도 그물 울타리면 안심했는데...)



  출입문은 잠겼으니 1.5m 울타리를 뛰어넘거나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둘러보다 그 구멍을 찾았다. 울타리 만들 때 그물로 둘러치다가 한번에 다 두르지 못해 두 조각을 케이블타이로 연결해 두었는데...
  케이블타이, 참 편리한 도구이나 결정적 단점이 햇빛에 오래 노출되면 잘 터진다는 점. 녀석들이 어떻게든 들어오려고 여기저기 머리를 들이밀다 이음 부분이 터지자 그곳으로 잠입한 모양. 그 뒤 일은 난장판 그대로.

  참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맘때면 산과 들에 얼마나 먹음직한 풀이 많은가. 그걸 놔두고 사람이 심어놓은 남새를 노리다니... 달리 말하면 녀석들 입맛에 자연산 풀보다 사람 먹는 남새가 더 맛나다는 뜻 아닐까. 그러니 위험을 무릅쓰고 죽자살자 달려들지.


(조 귀여운 녀석이 애물단지라니)



  <셋>


  까치가 사람이 심은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자기 것이라 주장하고, 고라니는 사람이 씨 뿌려놓은 남새를 제 먹이로 알고 마음껏 먹고. 분명 오디와 상추는 우리 인간이 심은 식물 아닌가. 그럼에도 녀석들은 그걸 자기네들 것인 양 마음대로 처리하다니.

  참 괘씸하다. 생각할수록 밉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에 미쳤다.
  뒷산 참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를 다람쥐나 청설모 먹도록 놔두지 않고 주워 오고, 멧돼지의 주요 먹이인 칡도 캐오는 등 산에 나는 온갖 동물 먹거리를 주워 오고 따온 이는 누구인가. 바로 우리 인간 아닌가?
  보다 더 부끄러운 건 그들 삶의 터전인 산과 벌판을 밀어 집을 짓고, 논과 밭을 만들고, 도로를 내 그들의 통로를 잘라버리고... 이러고도 고작 사람이 심은 뽕나무에 달린 오디 조금 먹는다고, 고구마순과 상추 뜯어먹는다고 ‘죽일 놈들!’ 하며 욕을 퍼부었으니.




  우리 사는 이곳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내가 사는 달내마을 원주민 어르신들일까? 아니면 야생동물일까? 그럼 도시는 다를까? 지금 여의도는 국회의사당이 있고, 금융기업들과 높은 빌딩과 번화가로 자리했지만 그곳은 원래 삼각주여서 수생식물과 수생동물의 아지트였는데...
  누가 진짜 주인인가? 2000년 가까이 주인으로 지내던 팔레스타인 땅에 그 전 주인이랍시고 유태인이 들어와 내가 주인이니 나가라 할 때도 누가 주인인가? 인간은 수틀리면 싸우기도 하는데, 말 못하는 짐승이라 탱크도 미사일도 없어 인간과 싸우지 못하고 고작 악쓰거나 몰래 들어와 훔쳐 먹을 뿐인데...

  *. 마지막 사진은 월간 [산](2023년 9월호)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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